『한겨레』 1994.10.21.작품

영화관람석

내 책상 위의 천사 (An Angel at My Table), 1990

여자로 태어나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몇번이나 부서지고 망가진 다음에 다시 일어나야 할까? 온갖 것들이 가정과 사회와 남자들을 내세워 방해하고 무효로 만들기 위해 달려드는 폭력의 구조 속에서 뉴질랜드의 `여류'소설가 재닛 프레임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다. 그리고 `여자'감독 제인 캠피언은 그를 천사처럼 보호하기 위해 2시간 38분 동안 그의 자서전을 붙들고 늘어진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내 책상 위의 천사>는 이율배반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끔찍하지만 아름답고, 잔인하지만 따뜻하고, 신경질적일 만큼 섬세하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영화는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삼부작으로 구성되어 `섬을 향하여' `내 책상 위의 천사' `거울의 도시로부터 온 사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뉴질랜드의 가난한 가정에서 1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난 재닛 프레임은 수줍고 못생긴 데다가 빨간머리이다. 제닛은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하는 대신 책읽기에 몰두한다. 재닛은 대학을 졸업하지만, 성격 때문에 교직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오진으로 정신병원에서 8년을 보낸다. 그는 퇴원한 후에 유럽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만난 미국인과 짧은 사랑과 이별을 나눈 뒤 돌아와 비로소 창작에 전념하는 작가로 첫발을 내딛는다.

<피아노>에 앞서 완성된 제인 캠피언의 두번째 영화가 다루는 것은 언제나처럼 제 이름을 찾으려는 여자의 노력이다. 제인 캠피언은 심술궂게 보석상자를 엎질러 놓고 그것을 다시 주워 담으려는 소녀의 인생을 반짝거리면서도 망가진 채로 다룬다. 향수와 복고풍의 분위기가 줄곧 영화를 감싸지만, 두 명의 여자, 제인 캠피언재닛 프레임은 결코 그런 안일한 낭만주의로 이끌리지 않는다.

그 대신 제인 캠피언재닛 프레임의 상처받은 영혼을 그려내기 위해 아주 특별한 방법을 동원한다. 영화 전체를 16mm 코닥필름으로 찍은 다음 다시 35mm로 확대시켜 세상의 경계와 나의 내면을 서로 뒤섞어서 마치 파스텔 화면처럼 부드럽게 만든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이 결코 세상과의 타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는 세상을 용서하며, 자신을 미워했던 세상을 위해 기꺼이 변명하려 든다. 그래서 맨 마지막 순간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신발을 신고 우뚝 선 다음 타이프라이터 앞에서 쓰는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무도, 바람도, 바다도, 쉿, 쉿, 쉿. 이것은 소녀와의 결별의 시간이며, 천사가 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