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4.12.23.작품

영화관람석

젊은 남자, 1994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바이러스와도 같은, 우리 시대의 신화와도 같은, 또는 풍토병같은, 수입된 것 같은, 악의에 찬 저주이거나 매혹적인 풍경을 이끌어내는 신세대를 만나야 한다. 적어도 3년만에 다시 돌아온 배창호 감독은 그의 13번째 신작 <젊은 남자>에서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을 휴학하고 모델 에이전시에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 남자' 이한(이정재)은 멋대로 살고 있다. 가출한 애인 재이(신은경)와, 그를 유혹하는 손 실장(김보연)도 지겹다. 그런 그 앞에 미모의 화랑주인 승혜(이응경)가 나타난다. 그녀는 이한에게 자신의 젊은 날을 보상받기 위해 성공의 길을 열어주고 떠나간다. 그러나 이한은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원본 없는 복제에 관한 멜로드라마라고나 할까? 신세대라는 시뮬라크라 속에 들어가 거기서 시작하는 배창호는 자신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로데오 거리에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정광석 기사의 카메라는 세련됐고, 조연들은 빛난다. 게다가 악명 높은 배창호의 롱 테이크 미학도 여기서는 다행히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깊고 푸른 밤>을 떠올리게 만드는 예전의 상업영화 시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잠깐! 유감스럽게도 배창호는 이제 `젊은 남자'가 아니다. 그는 새로운 유행과 인물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마치 허깨비들을 부여안고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유령들의 성공에 대한 욕망과 꿈을 담아내려는 노력은 엉뚱하게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의 분신을 찾으려는 무모한 노력으로 이끌린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현실에 대한 풍속도이고, 또 하나는 현실을 벗어나려는 동화이다. 현실 속에서 젊은 남자는 유혹하고, 유혹받고, 버리고, 버림받는다. 현실은 성공을 가로막고, 아주 가혹하게 내리누른다. 바로 그 순간 배창호는 동화를 내민다. 그리고 마치 신데렐라를 파티장으로 데려가는 것과도 같은 비현실적인 멜로드라마의 기승전결을 지닌 성공으로 이끈다.

이것은 입체적인 드라마일까, 아니면 복고풍에 사로잡혀서 새 것과 낡은 것을 뒤죽박죽으로 뒤섞어 놓은 것일까? `젊은 남자'는 이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면서 현실로부터 허구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리고 신세대 주인공은 옛날 고전영화적인 방법으로 성공한다. 이 모든 것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배창호는 마지막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는 것처럼 무리하게 수습하려 든다. 현실과 동화의 통로는 느닷없는 살인과 작위적인 교통사고로 파산선고를 내린다. 교훈도 없고, 감동도 없다. 그래서 영화는 아무 선물도 없이 끝난다. 이것이 신세대에 대한 도덕적 결론일까? 안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신세대에게 메리 `엑스' 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