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1995.04.14.작품

영화관람석

디바 (Diva), 1980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세 명의 프랑스 사람 자크. 한 명은 부유하는 편지를 따라나선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고, 또 한 명은 여백과 보충의 해체를 시도하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이고, 마지막 한 명은 그 논쟁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황당무계하게 번안한 장 자크 베넥스이다. 베넥스 자신의 말처럼 <디바>는 전적으로 추리와 세리 누아르, 그리고 철학적 패션과 80년대 파리의 기분에 관한 프랑스식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이다.

우편배달부 줄(프레드릭 안드레이)은 결코 녹음하지 않는 흑인 오페라 가수 신시아 호킨스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알프레도 카타라니의 오페라 <라 월리>의 공연 도중 몰래 녹음기를 갖고 들어가 아리아 `먼 곳으로'를 비밀 녹음을 한다. 그러나 그 테이프는 우연히 매춘조직을 고발하려다 살해당한 창녀의 테이프와 뒤섞이고, 이제부터 줄은 영문도 모르면서 신시아의 `유일한' 테이프를 노리는 음반업자와 매춘조직의 살인청부업자들에게 쫓긴다.

레오 카락스, 뤼크 베송과 함께 프랑스 누벨 이마주 삼총사라고 불리는 장 자크 베넥스의 데뷔작이자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디바>는 부유하는 목소리에 관한 영화이다. 두 개의 사운드가 뒤섞이면서 영화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한다.

오페라와 필름 누아르, 예술과 폭력, 무대와 도시 사이에서 주인공 우편배달부는 양쪽 세계를 떠돌면서 사운드의 기원이 아니라 순환을 따라 이제까지 만날 수 없던 두 세계 사이의 이미지를 배달한다. 그리고 여기서 배달되는 것은 유럽 고급문화의 패스티시와 대중문화의 할리우드에 관한 향수 사이의 뒤얽힘이다. 그 경계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신시아는 자신이 녹음을 거절함으로써 그녀의 녹음 테이프가 자신의 라이브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되어버려 진짜가 가짜에게 위협당하는 처지가 된다. 원본과 사본, 그리고 원판과 모조 사이에서 이제 가짜와 거짓의 포스트모던한 유희가 벌어진다.

여기서 장 자크 베넥스가 노리는 것은 철학적 토론이 아니라 이미지의 다채로운 문화적 지도이다. 파도를 멈추게 하려는 꿈을 꾸는 아랍청년 고로 디슈와 베트남 소녀, 라이브를 고집하는 미국인 `흑인' 오페라 가수, 대만의 해적음반업자, 아프리카에서 흘러들어온 매춘조직과 살인청부업자들은 파리에서 만나 패션쇼의 모델처럼 입고 행동하고 말한다. 그들은 이미지의 깊이가 아니라 표면에 집착한다. 바로 그것이 누벨 이마주의 정체이다. 장식과잉인 바로크 취향과 문화적 매너리즘은 영화를 이미지 과잉과 부패로 이끌고 간다. 거기에 방부제를 치는 방법은? 마치 19세기 말의 초현실주의자들처럼 다른 문화를 식민지로 욕망하는 것뿐이다. 참으로 위험한 세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