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1995.01.19.(43호)작품

■ 숨은 비디오 찾기 10

<사랑의 묵시록>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주연: 재크린 비셋    잔찌엘 레오

영화인생들의 노래

영화 속 영화촬영, 그 삶의 현장 담아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일시적인 여흥이며, 주말의 잡담거리이며, 은밀한 구경거리이며, 싸구려 저널의 스캔들이며, 번쩍거리는 스펙터클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만일 정말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며 살아가는 현장을 담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사랑의 묵시록>은 마치 전쟁영화(!)처럼 보일 것이다. 이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는 '아메리카의 밤'(La nuit Americaine)이고 영어 제목은 '밤을 위한 낮'(Day for Night)인데, 이 말은 '낮에 밤장면을 촬영하는' 영화촬영 기술 용어의 다른 표현이다(그렇다고 이 말을 우리나라 현장에서 '사랑의 묵시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가 좋아서 국민학교때 가출한 불량소년이다. 그 뒤 소년원과 군대 감방을 전전하며 지내다가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의 도움으로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동인이 됐다. 그는 프랑스영화를 사정없이 비판하는 글로 '프랑스영화의 묘지기'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프랑스영화의 어떤 경향'이라는 선언문으로 작가주의 노선의 도화선을 당기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속의 극영화

트뤼포는 언제나 말버릇처럼 영화광에는 세단계가 있다고 얘기했다. 초보는 한 영화를 두번 이상 보는 것이며, 그 다음은 비평가가 되는 것이고, 진짜 영화관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말처럼 59년 <400번의 구타>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말 그대로 트뤼포는 영화광이었으며, 영화를 사랑했고, 영화가 자기 인생의 모든 것(자기 자신의 자서전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듯이 진심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그의 13번째 작품인 <사랑의 묵시록>이다.

프랑스 니스에 자리한 라 빅토린느 스튜디오에서는 영화감독 페랑(프랑수아 트뤼포 자신)이 '파멜라를 찾아서'를 촬영중이다. 시아버지와 아들의 약혼녀가 그만 불륜의 사랑에 빠지자(루이 말의 <데미지>와 같은 스토리?) 아들이 아버지를 눈오는 저녁에 총으로 쏴 죽이는 비극이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모여들고, 할리우드에서 스타 쥴리가 비행기를 타고 와 합류한다. 그러나 촬영 중에 계속 사고가 생기고 감독 페랑은 악전고투한다. 심지어 조연배우는 교통사고로 죽고 촬영일수는 단축되지만, 그는 그대로 한편의 영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한여름을 함께 보낸 이들은 서로 다른 영화를 찍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트뤼포의 관심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 영화를 연출한다. 하나는 영화 속의 영화를 극영화처럼 정교하게 담고, 또 하나인 영화 그 자체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인터뷰하듯이, 때로는 현장견학이라도 하듯이 그려낸다. 원래 기록영화 출신의 촬영기사 피에르 윌리엄 그렌과 작업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트뤼포는 이 영화의 중심에 영화감독 페랑을 두지만 정작 그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란 그저 교통정리를 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한다.

"영화는 낭만도 잡담도 아니다"

감독 페랑은 한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연민도 없고, 자비도 없다. 밤마다 영화관에 붙어있는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 스틸 사진을 훔치는 꿈에 시달리며, 매일 전쟁터에 나서는 기분으로 현장에 나간다고 독백한다. 할리우드에서 온 스타 쥴리는 정신병을 앓는 도중 유부남을 가로챈 노이로제 환자이며, 상대역 주연인 알퐁스는 세상에 사랑밖에 없으며 여자는 신비한 존재라고 떠벌리고 다니다가 실연당한다. 시아버지 역의 알렉상드르는 영화에서 은퇴할 생각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시어머니 역의 세브린느는 왕년의 인기에 연연하며 알코올중독에 빠져 있다.

정말 현장은 하나의 거대한 카오스와도 같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낭만이 아니며, 고상한 예술에 관한 잡담을 하기 위한 곳이 아니며, 꿈을 꾸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현장 속에서 100년 동안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든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트뤼포는 그것을 마음속으로부터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영화의 생일에 바치는 것이다. 해피 버스데이 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