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1995.08.31.(74호)작품

■ 숨은 비디오 찾기 31

<비디오 드롬>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주연: 제임스 우즈    데보라 해리

변신, 그 비극적 욕망

미디어의 의인화 과정 통한 '라이브 다큐멘터리'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시대를 인간의 감각기관이 '확장된 시대'라고 불렀다. 장 보들리야르는 미디어의 '묵시론적인 비전'속으로 인간이라는 개념이 재편된다고 말했다. 질 들뢰즈는 그의 동료인 펠릭스 가타리와 미디어의 자본주의 위에 기관없는 신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위의 포스트 냉전-자본주의의 요설에 관한 지루하고 기괴한 서적들을 모두 읽은 영화감독은? 아마도 캐나다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밖에 없을 것이다. 75년 <기생충 살인자들>로 '무시무시한 데뷔'를 한 크로넨버그는 아주 느리고, 그러나 누구와도 다른 방향으로 자신의 영화세계를 밀고나가기 시작했다.

크로넨버그의 영화적 관심은 신체기관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인간이 미디어와 섞이고, 곤충과 섞이고, 꿈과 섞이고, 쌍둥이와 섞이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로 기계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카프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크로넨버그는 거기서 인간의 비극,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 시대에 인간의 윤리, 인간의 숙명, 그래서 거기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의 마지막을 본다. 인간이 더이상 인간이 아닌 다음의 멜로드라마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크로넨버그는 흐르는 피와 찢겨진 피부에 집착한다. 그 속으로 바이러스가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은 세균이 아니라 언제나 기계장치다. 좀더 정확하게 크로넨버그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신체에서 다른 것으로 변신하려는 욕망으로 이끌린다. 그리고 소망이 이루어지지만 완전히 변신하지 않고, 인간의 흔적이 남아 머문다. 그래서 불균등 복합(!)된 신체는 그 자신과 자신 사이로 끼어든 타자 사이에서 사드-마조히즘의 관계로 빠져들고, 점점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 사이로 빠져든다.

<비디오 드롬>은 크로넨버그 영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시대를 알 수 없는 도시에서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를 기획하고 있는 맥스(제임스 우즈)는 좀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공위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송신되는 '잔인무도한 강간과 살인'에 관한 '라이브 다큐멘터리'에 반한다. 그리고 그 방송을 독점계약하기 우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송의 출처를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 정체에 다가가면 갈수록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맥스는 어느 순간 텔레비전 모니터에 빨려들어가기도 하고, 배가 가려워 긁다가 그 배를 가르고(!) 그 속에서 비디오 카세트를 꺼내기도 한다. 맥스는 이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멈추지 못한다. 그는 이미 '중독'된 것이다.

할리우드에 비한다면 '소박한' SFX테크놀로지에 크로넨버그의 과격한 상상력을 덧붙인 화면들은 경이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영화는 처음에는 추리영화(또는 하드코어 포르노?)처럼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포영화로 변신하고, 마지막 순간 인간이라는 신체조직의 기반에 관한 형이상학적 질문으로 바뀐다. 여기서 크로넨버그가 파고드는 세계는 인간으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져서 인간의 흔적을 하나씩 말소하는 과정이다. 거기서 바로 비극의 근원을 본다. 크로넨버그는 미디어의 의인화와 인간의 미디어화를 동시에 진행시킨다. 하나가 들어가면 하나가 사라진다.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하나씩 자리를 바꿔나가는 치환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접합이다. 이제 환경은 신체의 일부가 되고, 신체는 환경의 일부가 된다. 주체의 상호 텍스트화? 그러나 크로넨버그는 더 나아간다. 영화에서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의 시선은 사라지고, 그 텅 비어 있는 시선 사이로 미디어의 '훔쳐보는' 시선이 들어선다. 주인공은 소외되면서 미디어의 의인화를 통해 신체 절단당하고, 영화는 그 과정에 관한 '라이브 다큐멘터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 미디어 시선의 주체는 누구란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영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주인공을 보는 바로 '미디어화된' 영화관객 자신이다. 하물며 그것을 영화로부터 비디오로 전이된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란! 크로넨버그는 뛰어난 술래잡기의 명수다. 술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