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 1996.07.에디토리얼|엔드크레딧

모험으로서의 영화
또는 B급영화에의 애정만세!

키노의 7월은 한편으로는 대답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퀴어 시네마를 좀 더 가깝게 포옹하며, 바로 극동 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문화 속에 좌표를 그리고 지형도를 그려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욕망을 감싸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또 다른 어두운 시선에 관해서 동시에 질문합니다. 공포영화는 의례적인 여름특집이 아닙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B급영화에 대한 '오만불손한' 애정을 고백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답과 질문은 동시에 고해성사가 될 것입니다.

키노는 지금 모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저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모험이며, 그것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영화에 있기도 하지만 바깥에 있기도 한)에 대한 저항일 것입니다.

우선 첫번째 질문은 이것을 왜 모험이라고 불러야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영화는 그 자체로 순수하며(이상하게도 영화를 오락이건 또는 예술이건, 그 어느 쪽이어도 마찬가지로 빠져있는 흑백논리), 그래서 영화를 단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편리한 결정이며, 자기를 중심에 놓고 영화를 상대화시키는 단순명쾌한 전략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메타 텍스트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서로 다른 모순을 안은 영화(들)이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단 하나의 영화를 내세워 그것으로 해석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헤게모니의 진지를 놓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며, 항상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교과서적인 권위로 억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역사의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것입니다. 이미 이것은 세상에 만연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장치라는 제도를 통해 만들어진 지식이 이제 거리로 나서서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감히 거스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정말로 어느 누구에게도 영화에서 권위를 갖고 재판극을 벌일 수 있는 이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어버린 영화, 저주받은 영화, 사형당한 영화, 버림받은 영화, 사지절단한 영화, 너무 앞지르거나 뒤늦은 영화를 위해 기꺼이 그 영혼들을 부러낼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살려내고, 복원시키고, 교과서의 영화와 맞서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영화(들)의 사유에 귀기울이고, 그 소리의 기원을 찾아내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영화의 곁을 둘러보고, 교과서 바깥으로 나아가서,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번 영화(들)에 관해서 토론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번 표지를 '무모하게도'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헤드>로 결정한 까닭입니다.

우선 우리는 다시 한번 퀴어시네마를 물어봅니다. 키노의 많은 친구들이 기꺼이 지지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입장에 대해 장문의 이의제기를 하였고, 또는 단호하게 반대를 성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물어보는 퀴어시네마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아시아에서 '퀴어 노선'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관한 토론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단숨에 결론을 내릴 수 있는(심지어 우리가 반대하는!) 질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극동 아시아의 우리의 입장에서 퀴어시네마를 물어보며 이제 비로소 지금 여기에서 문제제기하는 그 첫걸음을 함께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욕망에 관해서 다루는 방식입니다.

두번째 모험은 B급영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입니다. 저예산 B급영화들은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거대한 대형 제작비의 영화들과 '고상한'(그런데 뭐가 고상한?) 예술영화들에 의해 능지처참당하고, 마치 거리의 죽은 개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가 다시 한번 거리에서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아무런 원칙도 없이, 그 어떤 규율도 지키지 않으면서, 문법을 무시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세상과 마주하기를 희망합니다. 다소 과격하고 아슬아슬한 이번 특집은 50년대 이후의 공포영화입니다. 공포 속에서 우리는 영화의 상식을 부수고, 따분한 이론을 파묻고, 다시 살아나는 망령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햄릿과도 같은 영화존재론적인 질문을 단져볼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회하여 앙드레 바쟁이 이미 했던 질문, 영화에서 발견하는 불결함 속에서 왜 영화언어의 진화와 마주치는가, 라는 그 가치전복에의 동의입니다.

영화를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는 정말로 꿈을 꾸기는 커녕 현실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왜 현실과 언제나 부정합하는가를 물어볼 때 비로소 이미지는 모순 생산의 의지를 갖는 것이며, 더 나아가 거기서 끌어낸 물질적 감정을 통해 모순의 직관을 얻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비가 아니라 생산으로 구별짓기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며, 그래서 영화를 보는 순간이 상품자본으로서의 유통의 최후가 아니라 오히려 과정전체를 전선으로 놓고 선전포고를 던지는 그 시작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함께 연대하는 것입니다.


「구린내에 굶주려서」L7

하드코어 펑크를 들려주는 4인조 여성밴드 L7은 마치 전쟁을 치루듯이 로큰롤을 부른다. 가출소녀들이 그들의 슬픔을 잊기 위해서 쉴사이 없이 위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맹렬하게 연주한다. 이 얼마나 위험한 감동인가? 이제 더 이상 거리의 로큰롤이란 없다. 장사꾼들은 이미 포위하였고, 정신은 포장되어서 거래되고 있다. 인디펜던트라는 말은 정말로 함부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포위 바깥에서 거리를 포위한 자들을 다시 포위하고 있는 마지막 수호천사들이기 때문이다. 유혹은 너무 가깝고, 타협은 너무 쉽고, 싸움은 너무 힘들다. 인디펜던트들은 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그 위기는 어디까지가 전선이며, 어디부터가 전쟁인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연대를 교란시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거기서 이끌어내는 감동은 얼마나 위험한가?


「미디어 스펙터클」매조리 가버, 잔 매트락, 레베카 L 윌코위츠(편)

아마도 이번 여름을 휩쓸어버릴 것은 유감스럽긴 하지만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일 것이다. 올림픽은 이번 여름의 이데올로기가 될 것이며,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너무 과장하고 있다고? 천만의 말씀. 우리는 너무 겸손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포츠 자체는 '순결'하다. 그러나 그것이 미디어에 휩쓸려 들어가서 승부의 미장센이라고 불리우는 엔터테인먼트 스펙터클로 바뀌고, 그 위에 매우 편향된 관점(아마도 필연적인!)의 보이스 오버 나레이션과 겹치면서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올림픽은 그것이 스포츠이며 '더 빨리, 더 빨리, 더 멀리'의 정신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운 정치적 선전수단과 결합한 대중들의 커뮤니티 환상극에 빠져 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우승이라는 승부 이데올로기의 토대로서 국가에서 보상하는(스포츠는 정말 국력과 아무 관계가 없다!) 신데렐라 동화의 자본주의적 재현이 포함될 것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스펙터클인가?


<트위스터> 얀 드봉

헐리우드는 80년대 이후 강박관념에 빠져든 테크놀로지의 히스테리를 올해 여름에도 계속한다. 이번에는 천재지변을 '발명'한다. SFX 특수효과와 컴퓨터 그래픽스를 총동원한 회오리 폭풍 '토네이도'는 하늘과 대지 사이게 거대한 기둥을 세우고 사정없이 달린다. 이 믿을 수 없는 버츄얼 리얼리티에 대해서 우리가 물어보아야 하는 것은 그 이상한 세기말의 하이퍼 리얼리즘에 대한 테크놀로지의 귀신들린 듯한 속도이다. 이제 이 속도는 더 이상 그 어떤 통제력도 상실한 것 같다. 그래서 마치 자율성이라도 지닌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말은 대중들의 스펙터클의 욕망도 이제 테크놀로지의 자율적인 속도 속에 말려 들어가서 설명할 수 없는 메카니즘을 따라가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트위스터>는 한편으로는 반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자체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헐리우드는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이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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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버티다가 기어이 사랑니를 뽑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뽑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에 두개를 뽑았고, 마감이 지나면 다시 두개를 뽑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병원에 가기를 너무 싫어하는 편이다. 우선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소독약 냄새가 나를 숨막히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들어서는 나를 스치고 지나가며 나가는 손님의 잔뜩 찌푸린 얼굴이 나를 더욱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치과의사 아줌마는 무자비하게 나를 붙들고는 사정 없이 두개를 뽑아들었다. 나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고, 입가에서는 구미호처럼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정신은 아득해지고, 그런데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들어서 순간적으로 아프다는 사실을 잊었다. 그런데 참, 이번달은 어떤 특집을 하지? 독자들은 정말 이런 사실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