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 1998.05.에디토리얼|엔드크레딧

해피 버스데이
또는 세번째 시작

키노의 5월은 3주년을 맞는 세번째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전면적인 위기 속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영화 친구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로부터 영화에 대한 의견을 들으면서 거기에 더해 지금 사랑하는 영화들의 편린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습니다. 이것은 키노가 그려내는 지금 우리들의 지도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들은 영화를 별다른 의심 없이 사랑하게 되었을까? 세번째 키노의 정책은 질문입니다. 위기 속에서 우리들은 그것을 물어볼 것이며, 그 질문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키노는 이번으로 창간 삼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누구에게나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힘든 시간이고, 우리는 위기 속에서 삼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들은 영화에 던져지는 지금의 수많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위협)들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타이타닉>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이렇게 경제적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한가하게 영화를 이갸기하는 것은 반동적인 아닌가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거기 섞여 들어가 있습니다. 동시에 현실로부터 일탈한 몽상에 빠져들었다는 비판(더 나아가 영화를 현실의 우위에 놓는 것은 아닌가라는 근본적으로 문화에 대한 의심에 더불어!)과 갑작스러운민족주의적 정서에(일백년이 지난 지금의 1998년판 외세배척!) 이르기까지 이상스러운 논쟁이 우리들의 영화 위로 떠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것이 가져오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중입니다.

우리들의 예;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에서 우리가 가장 크게 웃었던 것은 배가 물에 잠겨가는 순간에도 "우리들의 음악을 들려주자"라고 말하며 연주를 계속하는 현악사중주단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순간에 그렇게도 진부한 감상주의적 상상력을 발동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그 상투성에 매우 놀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의 침몰에 관한 실제자료를 보면서 가장 먼저 현악사중주단의 마지막 연주를 기록하는 대목은 잠시 우리를 아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배가 잠기고 있는 중간에도 정말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타이타닉>은 이제 우리 곁에서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들 주변에서 이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사라졌는가? 더 나아가 그런 관객들도 이제는 함께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그 장면에서 웃는 관객들과 우는 관객들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은 동시에 서로 다른 시대에서 날아온 관객들이 함께 영화관에서 만나는 순간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일년전 영화에서 작가주의와 관객, 그리고 영화와 세상이 만들어내는 긴장 사이에서 원칙을 가질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중 어느 하나에 경도되는 위험을 빠져 나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작가주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과도한 신화화, 관객에게 지나치게 이끌림으로써 가질 수 있는 타협과 선정주의, 영화와 사회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를 지나치게 줄이려는 과정에 사로잡힘으로써 갖게 되는 도그마를 모두 경계하려는 것입니다. 신화화와 타협, 그리고 도그마의 삼각형을 넘어서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유한의 이질적인 반복들 사이에서 무한의 차이를 찾아내는 의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삼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약속하는 것은 의지입니다.

우리들은 세번째 특집을 준비하면서 거의 모든 페이지를 완전히 외부에 공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영화친구들과의 앙케이트와 ('지금' 우리들이 사랑하는 영화들에 관한) 영화 목록을 만들면서 함께 이루어내는 지도를 통해 '우리에게 지금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 수많은 다양한 선택들 사이에서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면 우리들은 정말로 서로 다른 시대에서 와서 함께 살아가는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숨겨져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하나의 커다란 바탕을 이루어낼 수 있는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거기 그렇게 기대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의지를 통해서 교훈을 배우려는 것입니다. 왜 서로 다른 영화들이 선택되는가? 그것을 그저 취향이라고 물리쳐버리는 대신 그것이 그러한 선택을 통해서 서로 다른 시대로 스며들어가는 전략이라고 말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사이에서 우리는 시대정신에 대해서 중재하고 개입하고 간섭하며 기록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정보기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와의 싸움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명제입니다. 정보는 언제나 일방적이기 때문입니다. 정보는 항상 정신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악랄한 전염병이 되어왔습니다. 만일 키노가 다소 불친절하고 새로운 정보에 대해서 눈감는 척하고 있으며(솔직히 말하자면 정보만의 모자이크로 한권의 잡지를 만드는 것은 정말 쉬운 일입니다) 자꾸만 그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럴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욱 더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정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영화는 수많은 저널에서 진정 예술이 아니라 마치 (상품에 대한) 정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당신들의 의지야말로 정말로 우리를 응원하는 격려입니다. 우리의 세번째 생일에 희망하는 것은 바로 그 격려입니다. 감사합니다.


「3집」세바도

디노노사우어 주니어에서 뛰쳐나온 루 발로우가 말 그대로 '홈 메이드'로 만든 그의 포스트 너바나 펑크는 단 한마디의 구호, "인디에게 록을!"이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모든 록의 저항이 음반산업의 우산 아래 들어간 지금 새로운 미학으로 이끌어낸 로우-파이의 황당무계한 정신은 록의 리얼리즘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려고 한다. 정말로 우리는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지켜야하는 원칙이 있다. 이미 사라져버린 한명의 친구「로드쇼」를 위해 눈물 흘리며 우리들은 기꺼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다. 우리는 원칙을 약속하고 싶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약속해줄 수 있는가?


『이야기하여야 할 또 다른 이야기; 포스트모던 문화의 정치학과 내러티브』프레드 페일

프레드 페일은 대중문화의 유령과도 같은 데자뷔(deja vu)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한번도 오지 않은 곳에 그 언젠가 이미 와본 것 같은 그 알 수 없는 홀림 상태를 통해서 우리는 반영과 현실 사이의 이상한 관계를 목격한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들의 이미지가 현실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사이엔가 현실이 이미지를 닮고, 그 사이에서 현실이 이미지에 스스로 먼저 도착해서 거꾸로 현실이 이미지를 뒤쫓아가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이제 우리는 이미지와 현실이 그 자체로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역사를 경험하는 첫번째 세대가 된 셈이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 촬영현장, 이광모 감독

올해 깐느에는 네편의 한국영화가 방문한다. '주목할 만한 시선'에는 홍상수감독의 <강원도의 힘>이, '15인의 감독주간'에는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비평가 주간'에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리고 단편영화 경쟁부문에는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가 찾아간다. 아마도 이것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신호탄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결코 깐느영화제의 물신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동세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큰 영화 축제에 초대를 받는 일을 기분 좋은 일이다. 마치 지난해 일본영화들이 거의 동시에 수많은 영화제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처럼 우리는 지금 깐느를 새로운 하나의 좌표로 선정한 것이다. 이들에게 깐느에서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end CREDIT

앙케이트 리스트를 보면서 나도 어디 한번 뽑아볼까라는 유혹을 차마 떨치지 못했다. 여기 이 열편의 기준은 올해 98년 1월부터 4월까지 120일 동안 본 영화 중에서 지금 내가 가장 관심있는 영화들이다(그러니까 이 목록은 나의 '생애의 베스트 10'이나 '영화사상 걸작 리스트'와는 아무 관계없다. 또는 어쩌면 나의 '비밀' 리스트 중에서 제치고 뛰어들 영화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이하 무순. <범죄의 요소>(라스 폰 트리에), <키즈 리턴>(기타노 다케시 - 모든 남자들이 자기 자신의 고딩어 시절이라고 우기게 만들만한 힘이 있는 영화), <메이드 인 홍콩>(프루트 챈), <캘린더>(아톰 에고이앙), <어쩌면 악마가>(로베르 브레송), <스트롬볼리>(로베르토 로셀리니 - 진짜 '숨은' 걸작!), <어느 여름날 오후>(장 그레미용), <어머니와 아들>(알렉산더 소클로프), <산양좌 아래에서>(알프레드 히치콕- 다음 세대를 위한 히치콕의 최고걸작 중 한편), <잔다르크, 성처녀>(자크 리베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