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 2000.04.작품

Berlinale2000

50 Internationale Filmfestspiele Berlin

Signs and Wonder 징후와 불가사의

[mise-en-scène ; Jonathan Nossiter ]

감독 조나단 노시터

각본 제임스 래스던, 조나단 노시터

촬영 요르고스 아르바니티스

주연 스탤론 스카스가르드, 샤롤로뜨 램플링, 데브라 웅거

▶프랑스, 1999년, 35미리, 컬러, 1시간 48분

경쟁부문 선댄스에서 97년 <일요일>로 발견된 조나단 노시터의 두번째 영화는 무대를 유럽으로 옮긴다.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시작하여 스위스로 옮겨가면서 한 미국인 남자의 알 수 없는 정신감응 상태를 뒤따르는 이 영화는 장르영화의 미스터리와 형이상학적인 정신의 이미지에 대한 윤곽의 붕괴에 동시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다루고 있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충동적이지만 그 안에서 알 수 없게 작용하는 욕망의 위기가 기이한 과정을 밟아나가면서 가족의 붕괴를 가져온다. 법칙이 욕망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예고하는 징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언제나 매우 격렬한 아이디어와 논쟁적인 주제를 끌어들여 전투를 전개하는 영화들을 선호하는 선댄스영화제가 97년에는 매우 예외적인 선택을 했다. 조나단 노시터는 그해 선댄스에 <일요일>을 들고 도착했고, 이 조용하고 백일몽 같은 이야기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유언장이라 불러야 할 빅터 누네즈의<율리스 골드>와닐라뷰트의악랄한풍자극<남성전용회사>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았다. 뉴욕을 무대로 IBM간부에서 어느날 갑자기 부랑자 신세가 된 중년 남자와 우연히 만난 이혼소송중인 실직여배우와의 오해에 얽힌 이 영화는 나이 든 낙오자들을 위한 일요일의 위로와도 같은 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조나단 노시터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다소 이상하게 보였다. 10년 전 그 해 박스 오피스 1위의 영화였던 애드라인 라인의 <위험한 정사>의 시나리오를 썼던 조나단 노시터의 <일요일>은 너무 착하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예술적(!)이었다. 어느 쪽이 정말 그의 얼굴일까? 그러니까 그의 두번째 영화 <징후와 불가사의>는 거기서 시작한다.

3년전, 미국인 사업가 알렉 펜튼은 그의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그리스의 아테네로 이사를 왔다. 알렉은 그의 딸 시리와 매우 특별한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그들은 전조(前兆)와 사전경고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징후와 규칙들에 기반을 둔 세상을 지각하는 특별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대사관에서 일하는 그의 아내 머조리는 심리학을 공부한 여자이다. 그녀와 열살 난 마커스는 남편과 딸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들은 서로 행복한 가정이다. 마치 깨지기 쉬운 섬세한 그릇처럼.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알렉은 그의 아내에게 캐서린이라는 회사동료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자백한다. 머조리는 당장 그 관계를 끝내기를 요구하고, 남편은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다음 날 모든 것을 정리한다. 모든 것은 예전처럼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가족들이 스위스로 휴가를 가던 날 알렉은 갑자기 캐서린에게 달려가서 그들이 마치 서로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인 것처럼 매달린다. 모든 것은 끝났고, 알렉은 그것으로 그의 아내와 가족을 버린다. 그런데 몇주후 알렉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우연하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혹시 이 모든 것은 예고되었던 일이 아닐까? 알렉의 의심은 캐서린과의 생활을 망가뜨리고, 알렉은 다시 머조리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머조리에게는 새로운 동반자가 생긴 다음이다. 그 새로운 남자는 안드레아스 티미스라는 그리스 저널리스트이다. 그리고 그가 머조리와 그의 아이들에게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어떤 인상을 남겨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나단 노시터의 새로운 영화는 정신적 위기의탐구이다. 그는 단순히 이 영화를 미스터리로 풀어나가길 원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명백히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영향권 아래에서(의도적으로 고스란히 가져온 <크래쉬>의 데브라 웅거가 연기하는 캐서린의 페르소나) 작업하고 있으며, 그러면서 이 모든 서구의 기원이라고 할 그리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는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촬영감독 요르고스 아르바니티스를 끌어들여서 사색적인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말 그대로 정신감응상태에 대한 탐구라고 할 이 영화는 <샤이닝>과 <안개속의 풍경> 그 사이 어디엔가 서 있는 작품이다. 마치 잘못 진행되어 가는듯한 이야기의 실타래, 그것을 풀어나가면서 결국 마지막 순간 가위로 잘라버리기 전에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