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 2003.07.에디토리얼

결국 다시 만나게 될 우리들은 전진합니다!

정  성  일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요. 저는 지금 비통한 마음을 안고 이 글을 씁니다. 저는 키노를 1995년 5월에 창간해서 그동안 (머물고 떠나가고, 그리고 제가 떠나가고 난 다음에도 남은) 여러 명의 영화 친구들과 함께 2001년 1월까지 키노를 만들었습니다(저는 지금 이 글을 글렌 굴드가 1955년에 녹음한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들으면서 쓰고 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키노 창간호에서 저는 그 음반을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수수방관하였습니다. 그건 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키노는 제가 주인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 스태프들, 배우들, 그리고 이 책을 기꺼이 지지하는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었고, 키노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키노는 새로워졌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칙을 버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키노는 항상 감독들의 진심 어린 고백으로 채워졌으며, 독립영화를 지지하였으며, 새로운 영화를 향해 애정 어린 수다를 늘어놓았으며, 영화 현장으로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키노가 그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엔키노' 사이트도 아닌 '오 마이 뉴스' 에서 읽었으며,「씨네21」의 지면에서 확인하였습니다. 정말 기괴하게도 엔키노는 키노를 끝장내면서(!) 마치 그런 사실이 없다는 듯 지금까지도 시침 뚝 떼고 있습니다(또는 이것이 키노와 엔키노의 이상한 관계를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것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엔키노는 키노를 그냥 고려장시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엔키노의 대표인 김대선 씨는 '효용가치가 다한' 키노가 '이제는' 마더(mother)브랜드가 아닌 그랜드마(grandma)브랜드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할머니를 내다버린 셈입니다). 자본주의는 냉정한 것이어서 죽으라면 그냥 죽어야 하는 것이 시장의 법칙입니다. 저는 문제의 쟁점을 그러니 자본주의가 잘못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을 준비론적 패배주의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로 패배는 우리들의 시행착오의 하나일 뿐입니다. (제 믿음으로는) '결국' 좋은 세상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뼈저리게 배워야 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키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내다 버리듯 개봉하는 영화들 속에서 소비를 멈춰 세우고 사유하게 만드는 방법은 스무 자로 요약될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잘난 척했습니다. 왕가위를, 차이 밍량을, 알모도바르를, 켄 로치를, 크로넨버그를, 팀 버튼을, 카우리스마키를, 소쿠로프를, 앙겔로풀로스를, 몬테이로를, 지아 장커를, 구로사와 기요시를 말할 때 그들이 정말 잘났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혹은 우리들의 글을 읽으면서 (고) 김현 선생을, 혹은 하스미 시게히코를, 혹은 세르주 다네를 내세우면서 그만큼 되지도 않는 주제에 나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정말 대가들입니다. 그런 글은 우리 세기에도 흔한 글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런 글을 흉내냈다는 '황홀한' 비난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그러니 그런 비난에 우리는 조금도 귀 기울일 생각이 없습니다. 만일 저희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백 번째 키노를 만들지 못한 것뿐입니다. 우리는 키노를 읽고 있는 당신에게만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다시 한번 첫번째 다음 일보를 내딛어야 할 것입니다.

키노는 정말 영화를 진지하게 생각하고자 하는 여러분들의 것이었습니다. 또는 영화를 예술이라고 믿었던 당신들의 것이었습니다. 브레히트는 할리우드를 떠나면서 참담하게 말했습니다. "예술은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영화는 예술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말은 아주 신중하게 읽혀야 합니다. 영화는 더욱 더 영화를 예술이라고 믿는 여러분이 필요한 것이며, 저 탐욕스러운 장사꾼들의 아귀다툼과 약육강식 속에서도 무모하게 영화는 예술이나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당신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키노는 전선을 세웠고, 거기 서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키노는 분명히 패배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있는 힘을 다해 부를 때, 여러분들이 간절하게 소망할 때, 그저 막무가내로 기다리면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들을 결국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은 전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