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식』 1994.01.05.작품

과거의 향수를 현실로 복제
노라 애프론 감독의『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

이건 너무 달콤한 걸까? 노라 애프론 감독의『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은 헐리우드영화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로맨스의 포장지를 있는 대로 모두 끌어 내서 보여 주는 일종의 종합선물이다.

우선 첫번째 장치.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해서 발렌타인데이에 끝난다. 아마도 일반적인 로맨스영화라면 그 반대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연인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날이며, 발렌타인데이는 가족이 아니라 연인을 위한 날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확하게 관객을 계산하고 있다. 연인이 가족이 되는 이야기는 현실이고, 가족이 연인이 되는 것은 꿈이다.

두번째 장치. 이 영화는 정확한 시제를 알 수가 없다. 현재이면서 과거이고, 과거이면서 미래이다. 속임수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노라 애프론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공공연히 57년 레오 맛케리가 감독하고 케리 그랜트와 데보라 카 주연의『해후(An Affair to Remeber)』(원제는 레오 맛케리 감독의 38년 원작을 다시 리메이크 한 것. 그러니까『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은 리메이크를 다시 리메이크 한 것이다)를 참고하고 베꼈노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노라 애프론감독은『해후』의 열렬한 팬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그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빌려 온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해후』를 배제시킨다면 더이상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지도 모를 정도로 참고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놀라운 전략이 있다. 모든 것을 시침 뚝 떼며 쫓아가다가 그 라스트를 아주 '완전한' 해피엔딩으로 바꿔 놓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올드 무비의 고전적인 내러티브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영화 스스로 그 영화에 관해서 다시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중 내러티브영화이다.

세번째 장치. 누가 보아도 이 영화의 스토리는 황당무계한 '억지'이다. 그런데 노라 애프론 감독은 오히려 그것을 내새워서 '꿈'이라 부른다. 그리고 억지로 영화에서 통용되는 것을 보며 그녀 스스로 손뼉을 치며 기적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어떻게?

그녀는 이 영화를 논리적으로 끌고 가는 대신 감정으로 이끈다. 그리고 밑바닥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노스탤지어이다.『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의 주인공들은 현대에서 살아 가고 있는『해후』의 50년대 인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와 50년대가 서로 만나는 셈이다. 그 주인공들은 현대에서 사라졌지만, 우리가 기억 속에서 언제나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것을 이 영화는 다시 만나게 해준다.

말하자면 노라 애프론 감독은 과거라는 노스탤지어에 빠져들면서 현대라는 토대 위에서 기억을 현실로 복제해 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양손에 승부 카드를 들고 동시에 내민다. 그 하나는 가족의 복원이고, 또 하나는 운명적인 로맨스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멜로 드라마에서 무수히 보아온 방법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제시한 것은 전대미문의 해피 엔딩 게임이다.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결론은너무 뻔하고 목표는 서툴러 정체를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그와 정반대이다. 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를 노라 애프론 감독은 아예 처음부터 터놓고 고백한 다음 해피 엔딩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이다. 사실 관객도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