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소식』 1994.02.09.작품

산산히 부서져 버린 아메리칸 드림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칼리토』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에 철학은 없지만 그 대신 그에게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건 그가 왜 헐리우드영화의 위대한 세 사람의 거장, 알프레드 힛치콕과 하워드 혹스와 프릿츠 랑 같은 걸작을 찍지 못하는 것일지라는 열등감이다. 유감스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는 평생 그 자신을 억누르는 거장들의 그림자를 뛰어넘기는 틀린 모양인 것 같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뛰어난 영화기술자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만의 예술적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신작『칼리토』는 그가 더 이상 현란한 테크닉과 종종 영화광들을 즐겁게 만드는 인용의 강박관념으로부터 사로 잡히지 않겠다고 선언하려고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그는 전에 없이 침착하고 진지하게 보인다. 총격전도, 훔쳐보기의 에로티시즘도, 황당무계한 슬로우모션도 모두 사라졌다. 그는 한 인간의 삶의 방식에 관해서 아주 진지하고 끈질기게 바라 본다.

푸에토리코에서 온 칼리토(알 파치노)는 헤로인 중개업자로 체포되어 30년형을 받았다가 극적으로 5년만에 출옥하게 된다. 그는 진심으로 이제 이런 생활과 결별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돈을 모아 바하마에 가서 자동차 임대업을 하길 원한다. 이유는 하나, 그러면 적어도 총에 맞아 죽지는 않을테니까.

그러나 세상은 그러도록 버려두지 않는다. 그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변호사인 데이브(숀 팬, 마돈나의 바로 전 남편!)가 그만 이탈리아 마피아의 거물과 그 아들을 죽이면서 일은 비극적인 방향으로 치달린다. 데이브는 죽고, 칼리토는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고, 어이없이 열차 앞에서 애인의 손을 꼬옥 쥐고 총에 맞아 죽는다.

영화는 총에 맞아 죽어가는 칼리토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건 이 영화를 처음부터 그 결말을 보여주고 결코 속임수를 쓰지 않겠다는 브라이언 드 팔마의 고해성사이다. 제목 그대로 (원제는『칼리토의 인생방식』이다) 칼리토가 어떻게 총에 맞아 거리의 개처럼 죽어갈 수 밖에 없었는가를 그려나간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관한 관찰이다. 칼리토의 꿈은 애인과 함께 바하마로 가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저 지하철에 '천국에로의 초대'라는 카피가 씌여진 바하마의 포스터를 보면서 죽어갈 뿐이다.

그건 프릿츠 랑 영화의 전통에 서서 90년대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주인공의 고민은 과거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한발 앞서서 미래가 된다. 그래서 주인공의 과거는 결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다. 언제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직 과거와 미래만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꿈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가혹한 비판인가? 프릿츠 랑이 브레히트와 루카치를 열광시킨 것은 바로 그 통찰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라이언 드 팔마는 그것을 장르로 이해한다. 그는 필름 느와르와 갱스터 무비의 전통에서 단 한걸음도 밖으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또는 못하면서?) 장르의 감옥에 갇힌 주인공의 운명과도 같은(마치 거역할 수 없는 법칙과도 같은) 죽음을 지켜본다. 브라이언 드 팔마가 프릿츠 랑과 같은 철학을 갖지는 못했지만 헐리우드가 꿈의 왕국이라는 비판을 해낸 것은 적어도 그가 이제 더이상 '유치한' 영화소년은 아니라는 증명을 해낸 셈이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대견한가? 그저 힛치콕 흉내나 내며『드레스 투 킬』이나『보디 더블』을 찍어 대던 시절의 허영심 가득한 허풍선이 영화들에 비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