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992.05.추천리스트

한국 정치병 해소용 비디오

대권집착의 독설,「대통령 후보자」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기 위해서는 보통 이상의 인내심과 강심장을 갖지 않고서는 어림도 없다. 아마도 이 아수라장은 대통령선거까지 계속될 전망이니 곤혹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채널의 선택권도 없는가? 이 달에는 9시 뉴스를 보고 놀란(?) 가슴을 달래기 위해서 볼 만한 비디오를 추천한다. 물론 비디오를 보는 것만으로 현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대통령선거일(심판의 날)까지 브라운관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역시 브라운관으로 해독하는 것이 적격이다.

우선 대통령후보라고 저마다 나서며 선거야 요식행위이고 후보만 되면 대통령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최근 '인기' 연속극을 보신 다음에는「대통령 후보자」(CIC)를 추천한다.

혹시나 주면 배우가 로버트 레드포드여서 이것 또 뻔한 스토리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전하는 게 아닐까라고 의심한다면 안심해도 괜찮다. 마이클 리치 감독은 시의회 선거에 나선 얼떨떨한 청년이 어떻게 무시무시한 대통령 후보자로 변해가는지를 경쾌한 독설로 펼쳐보인다.

주인공 맥케이브는 하버드 대학 출신에 스캔들도 없고 게다가 무엇보다도 얼굴이 카메라에 잘 받아서 유권자들의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이유로 시의회선거에서 후보가 된다. 맥케이브는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또한 '당선되면'으로 시작하는 연설로 많은 약속을 한다. 특히 여성 유권자들은 그가 유세장에 나타나면 로큰롤 스타가 나타난 것처럼 열광한다.

맥케이브는 허수아비로 시작하지만 점차 인기도 얻고, 게다가 정치 흥정이 무엇인지도 깨닫는다. 그를 밀던 정당 내에서 위치가 올라가고,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표 차이로 압승한다. 이제 그의 역할은 끝났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자기를 후원하던 거물을 함정에 빠뜨리고, 정당대회에서 유연한 웃음과 함께 나타나 연설을 당당하게 마치며 돌아선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다음 목표는 대통령이야."

정치코미디,「독재자 파라돌」

뉴스를 보고 나서 만사가 답답하면 한번쯤 웃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비디오는 다소 찾기 힘들어서 구석구석까지 뒤져야 나오는데 만일「토마토 공격대」(대우)라는 제목을 발견하면 만사 제치고 빌려볼 만하다.

어느날 갑자기 미국에 토마토가 습격해온다. 정부는 발칵 뒤집혀서 온갖 수선을 떨고 매스컴은 큰일이 났다고 떠들어대며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런데 정말 무슨 큰일이 난 것일까?

존 드 벨로 감독은 무명의 배우들과 낮은 예산의 제작비, 그리고 토마토 과일만을 갖고 정부의 무능함과 매스컴의 침소봉대식 옐로 저널리즘, CIA로 상징되는 비밀경찰을 말 그대로 싸잡아서 마음껏 비웃는다.

얼핏 보면 황당무계한 아이디어와 싸구려 화면(요즘 유행하는 특수촬영은 한 장면도 없고 토마토가 굴러오면 사람들은 시침 뚝 떼고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닌다)으로 삼류 영화처럼 보이지만 존 드 벨로는 오히려 그런 식으로 반문한다. 지금 이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이 바로 삼류가 아닌가라고! 1시간 27분동안 한참 웃고 난 다음에 용기를 내서 다시 11시 마감뉴스를 보시라.

만일「토마토 공격대」가 영화적인 완성도에서 너무 미흡해서 좀 수준있는 웃음이 필요하다면「독재자 파라돌」(CIC)이 있다. 이 영화는「적, 그리고 사랑 이야기」와「결혼 기념일」(드림 박스)로 이미 안목이 있는 팬들에게 평가받은 폴 매저스키 감독의 야심작이다.

남미의 가상국가를 무대로 한 미국인이 그만 죽은 독재자를 대신해서 그의 역할을 떠맡고 만다. 맨 처음에는 이를 어쩌나 하지만 독재국가에서 진짜 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할리우드 영화가 남미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악취미에 대한 역겨움을 잠시 접어두고, 말 그대로 영화만을 쫓아가며 그 속에 나타난 독재자와 정부 각료들, 그리고 숱한 횡포가 너무 황당해서 깔깔거리며 웃다가 어느 한 순간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 벌어져 모골이 송연하게 만든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봐야 할 코미디. 역설적이긴 하지만 놓칠 수 없다.

군의 생리를 추적한「레들 대령」

지금 군 부재자 투표에 관한 논쟁도 연일 뉴스에 오르는 메뉴 중의 하나인데,「레들 대령」(금성)을 보고 있으면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이미「메피스토」가 텔레비전 명화극장 시간에 수차례 방영되어 실력을 인정받은 헝가리의 이스트반 자보 감독이 찍은 이 영화는 앞서 소개한 영화와 달리 심각하다. 주인공 레들은 어렵게 커서 군 부대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맡은 임무는 장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국가안보에 관련된 감찰을 실시하는 일. 레들은 충성스럽게 일을 처리해서 대령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군대 내의 부정은 복잡하게 얽혀 있고, 타협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레들 대령은 눈의 가시가 된다. 마침내 그는 음모에 말려들고 결국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이스트반 자보 감독은 한 대령이 산 삶의 궤적을 통해서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의 힘의 관계를 추적해 나가는데, 그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이 파괴적인 결론 외에 또 다른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다. 무겁지만 엄숙하고, 다소 지루하지만 진지하게 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뉴스를 냉소적으로 그저 방관자처럼 보고 계시다면 다른 관점에서 꼭 한번 볼 만한 작품이다.

다만 다소 흠이라면 어찌된 까닭인지 2시간 36분의 오리지널 대신 1시간 52분의 단축판이 국내에 수입되었고, 이 비디오는 그 단축판을 따르고 있어서 부분적으로 모호한 부분도 있다.

재판에 관한 뉴스도 심심치 않은데「프론트」(대우)는 멋진 반격이다. 감독은 할리우드 내의 양심파라고 불리는 마틴 리드(그의 문제작「노마 레이」(대우)를 보신 분들이라면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이며, 주연은 그 큰 안경의 우디 앨런이다.

시대는 1950년대. 바야흐로 '빨갱이 사냥'이라고 불리던 매카시 선풍이 인다. 멀쩡한 사람이 빨갱이가 되고, 조금만 실수해도 법정에 서야 한다.

그러나 "그게 모두 조용히 사는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어!" 라며 우디 앨런은 마음 턱 놓고 있는데 그만 그도 법정에 서고 만다. 이미 재판부는 결론을 내렸고, 우디 앨런은 온갖 변론을 늘어놓지만 그게 모두 헛고생이었음을 깨닫는다.

기념비적인 마지막 명장면. 재판부는 우디 앨런에게 판결문을 낭송해주는데 그는 그냥 앉아서 듣는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재판장을 향해서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고 한마디 던진다.

"엿먹어!"

모든 사람이 놀라 벌떡 일어나면서 화면은 스톱 모션이 걸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디 앨런은 뒤돌아서 유유히 걸어나간다. 모든 사람은 얼어붙은 듯 서 있는데.

정말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일까? 정말 자기 의지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마틴 리드 감독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단 한 장면으로 자기의 시대와 그 시대 속을 살아간 양심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