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993.01.추천리스트

연말연시를 의미있게 해주는 비디오 6선

아름답고 처절한「우든 크로그」

물론 삶은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가끔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여전히 세상은 살 만한 것이라고 곁에서 보듬어 안아준다.

선거가 끝난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비디오를 고르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상영시간 1백85분의「우든 크로그」(화인 프로덕션)를 보며 산타할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려보자. 이 영화의 원제는「나막신의 숲」(L'albero degli zoccoli: The tree of wooden clogs)인데 도대체 이런 식의 우리말 제목은 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우선 이 비디오를 빌리면 참을 수 없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 맑고 고운 화면은 어디로 사라지고 온통 탁하고 어두운 화질뿐이다. 게다가 번역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속았다!'라고 생각한다면 큰 손해이다. 이 영화는 아마도 영화사상 농민들에 관한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리얼리즘 서사시일 것이다. 베르톨루치의「1900년」(대우)이 격렬한 항쟁과 혁명적 무드, 그리고 좌절의 역사를 그려냈다면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인 에르만노 오르미 감독은 끈질기고 서럽게 이시대의 저편으로 저편으로 밀려나는 농민과 그들의 대지를 있는 힘을 다한 사랑으로 지켜본다.

선거도 끝나고 이제 UR의 칼날이 목 끝까지 온 지금, 크리스마스 밤에 이 영화는 모두가 손을 잡고 보며 다시 한번 이를 악물기를 권하는 참으로 눈물과 감동의, 아주 '지루하리만큼' 느린 걸작이다.

새해 첫날을「아틀란티스」와 함께

그리고 연말에는「행운의 반전」(우일)이 있다. 이 영화의 감독 바베트 슈로더는 금년 가을「위험한 독신녀」로 그 특유의 '악취미'를 멋진 솜씨로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는 그 두배쯤 근사하고 섬뜩한 연출을 펼쳐보인다.

어느 날 하버드 법대 교수에게 한 사내가 찾아온다. 이 남자의 이름은 크라우스 폰 베로. 이미 일심에서 아내 살인미수 용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상태인데, 교수에게 그의 재심 변호를 부탁하러 온 것이다.

크라우스는 원래 빈털터리 귀족이었는데, 돈 많은 과부 서니가 명예를 위해 그와 결혼한 것이다. 크라우스는 돈 때문에 청혼을 받아들였으나 그 결혼생활이 온전할 리 없다. 알콜 중독자 서니는 기회만 되면 남편을 괴롭히고, 크라우스는 하루 빨리 아내가 죽기만을 고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서니는 인슐린 주사 때문에 식물인간이 되고, 서니의 전 남편의 자식은 이 모든 일이 크라우스의 음모라고 고발한다. 그리고 크라우스는 지금 일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보통 영화라면 여기서 교수가 법정 증거를 역전시키고 크라우스의 승리로 끝맺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는 물증 속에서 허점을 발견하면서 크라우스가 진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 돌아가자. 혹시 우리도 우리 자신이 응원하는 편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비판의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신정이 성큼 다가 온다. 새해 첫날만큼은 정말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 '기적적'으로 나온 뤽 베송 감독의「아틀란티스」(SKC)가 있다.

이 영화에는 아무런 대사도 없고, 아무런 드라마도 없다. 그리고 사람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꿈의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 바다 아래 깊숙이, 더 깊숙이 내려가서 그곳에서 희망과 사랑, 자유와 평화를 노래하려는 뤽 베송의 열광적인 해저에의 정열, 그리고 에릭 세라의 오페라와 같은 황홀한 음악이 1시간 20분 동안 세례를 내리듯이 우리의 영혼을 맑게 씻어준다.

맑은 공기, 투명한 물결, 그리고 해저의 속삭임 속에서 저 바다 깊은 곳으로부터 새해의 메시지를 듣는 일은 얼마나 유쾌한 것인가? 정말 지구는 하나이고 이것을 더럽힐 만한 권리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여기에 좀더 여유가 있다면 이례적으로 REM의 뮤직 비디오「행복으로 빛나는 사람들」(한덕 엔터테인먼트)이 있다.

록 그룹 REM은 80년에 결성된 이후 줄기차게 반공해운동 및 자연보호를 위한 노래를 불러왔고, 미국에서는 소위 '운동권 가수'의 칭호인 컬리지 밴드(college band)로 불리는 4인조 그룹이다. 특히 이들의 뮤직 비디오는 그 요란법석한 난동극(!)이 아니라 그 자체로 메시지를 담은 단편 걸작들이고 여기 모아놓은 작품들은 미국의 진보단체들과 환경운동 그룹에서 추천한 것들이다. 뮤직 비디오라면 딱 질색인 분은 그중에서「내 소중한 의무를 잃고」(Losing my religion)만이라도 가사와 함께(반드시 함께!) 보시기를.

앨런 파커의 미공개 출시작 두 편

93년에는 신정이 끝나기가 무섭게 설날이 오는데 이 연휴에는 앨런 파커 감독의 '비장'의 미공개 비디오 출시작 두 편을 동시상영으로 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선「커미트먼트」(콜럼비아-트라이스타 홈비디오)로 시작하는 것이 멋지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과 분노로 한이 맺힌 땅이다. 그래서 이곳 출신 가수들은 유난히 체제 비판적이고 게다가 절규하듯이 노래를 부르는 특징이 있다. 그룹 U2와 머리를 박박 깎은 여가수 시네트 오코네가 모두 여기 출신이다.

앨런 파커 감독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더블린의 엉터리 카페에서 소울과 로큰롤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모여 로큰롤 그룹을 조직한다. 목표는 성공이다.

그래서 이들은 목소리와 요란스러운 기타 사운드 하나에 승부를 걸고 성공을 향해 달린다. 그들의 노래는 영혼의 소리이다. 그들은 외치고, 하소연하고, 몸부림 친다.

그런데 그들이 목표로 한 것은 정말 성공 그것 하나뿐이었을까? 성공이 가까워질수록 왜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일이 싫어지고, 무대에 올라서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질까?

앨런 파커 감독은 그들 편에 서서 록 리듬에 실려보내는 젊은이들의 분노와 고독을 따뜻하게 감싸며 그들도 예술가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영화는 춤과 노래만 나오면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막내 동생과, 쇼 프로그램만 시작하면 채널을 돌리는 아버지가 함께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돌아 앉으며 볼 만한 '전천후' 로큰롤 영화이다.

그러고 나서 이 심각한「미시시피 버닝」(우일)을 본다면 앨런 파커의 팬이 될 것이다. 이 영화는 8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7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진 해크먼은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미국의 남부 작은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희생자는 모두 인권운동가이고,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한 FBI는 조사단을 파견한다.

시대는 1964년 여름. 그 전해에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했고, 이듬해에는 미국이 베트남전을 시작한다. 미국이 온통 썩는 냄새로 가득 차 있던 그 해 여름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스피디하고, 정력적이면서도, 모골이 송연한 장면들이 줄을 지어 나온다. 사건은 역사 속에서 늘어선 것이고, 앨런 파커는 더 큰 것을, 좀더 큰 것을 보라고 계속 우리를 부추긴다.

우리는 정말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까? 한 해를 시작하는 각오는 여기서부터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