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996.03.추천리스트

단편영화 모음집「이상한 영화 I」

지금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우리 영화는 희망이 있는가. 이건 일종의 '아마게돈'이 아닌가. 종말론적인 분위기, 패배의 무드로 가득 찬 현장,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는 제작비, 영화사 사장이 되어버린 영화감독들, 마치 영화의 시대가 온 것처럼 환상을 불어넣는 수다스러운 매스컴이 뒤엉켜 서로 위로하고 타협한다. 이것이야말로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현상이 아닌가. 영화관객들은 '백번 양보해서' 양해하며 우리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드는 '현장의 예술가들'은 타성에 젖어 그걸 마치 '프리미엄'의 권리인양 누리고 있다. 이건 무언가 잘못 되어도 정말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리 영화의 희망을 찾아서

그렇다면 우리 영화는 도대체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인가. 아무리 진부해도 계속 걸어야 하는 희망이 있다.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 엇갈린 희망과 패배 사이에서 갑자기 비디오로 등장한 여섯편의 단편 영화 모음집 「이상한 영화 I」(태일영상 출시,  구입처  영화마을(539-0311)는 매우 미묘한 지점에 서 있다.

이 비디오의 제목은 우리 사회의 단편영화에 대한 편견을 순진할 정도로 그대로 담고 있다. 우선 제도권 상업영화 이외의 그 어떤 영화도 현실적으로 상영되기 어려운 획일화되고 통제당한 그 끔찍한 우리들의 경험이 여기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라는 말은 언제나 35미리 필름으로 스타를 주인공 삼아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스펙터클 하게 펼쳐지는 구경거리, 즉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영화'라는 아주 특별한 영화가 거꾸로 여기서는 영화 일반으로 정식화되었다.

이제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은 예술영화라고 부르고(우리나라에서는 영화제에서 상만 받으면 모두 '예술'영화로 둔갑한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컬트영화(그런데 정말 컬트는 뭘까?)라고 '손쉽게' 분류된다. 남한의 제도권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영화답기 위해서 할리우드 영화의 틀을 강요당하고, 그것을 부정하면 제도권 시스템에서 배급하지 못하고 아주 소수에게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보여진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고작 10분에서 20분 전후의 16미리, 또는 35미리 영화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영화문화 속에서 단편영화는 매우 중요하다. 그건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을 그대로 옮겨도 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단편영화는 거의 대부분의 '미래의 영화감독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이었던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는 영화평론가 시절 단편영화를 만들며 미래영화를 '발명'하였다.「대부」의 프란시스 코폴라는 8세 때 첫 단편영화를 만들었고,「쥬라기 공원」의 스필버그는 12세 때 첫 번째 단편 '전쟁' 영화를 만들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제3영화를 선언한 진보적인 영화전사들도 단편영화를 통해 시작하였다. 레오스 까락스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서태지 처럼) 18세에 16미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거기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영화는 꿈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것은 현실이며, 그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서 영화는 전쟁터라는 것을 배운다. 이기면 자신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지면 '주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빌어먹을!

「이상한 영화 I」에 담긴 여섯편의 영화는 매우 흥미 있는 선택이다. 우리에게는 이미「결혼 이야기」「그 남자, 그 여자」「총잡이」로 유명한 김의석 감독의「창수의 취업시대」는 매우 당혹스러운 발견이 될 것이다. 이 로맨틱 코미디 '전문' 영화감독의 단편영화가 이렇게 가슴 저미고 마음 아픈 소매치기들에 관한 리얼리즘이라는 사실은, 혹시 김의석 감독이 지금 재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염려마저 불러일으킨다. 맹세코 이것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김의석 감독의 모든 영화 중에서 최고 걸작이다. 여기에 비하면「결혼이야기」 따위는 정말 하찮은 성공이다.

변 혁과 이재용, 두 사람의 공동연출인「호모 비디오쿠스」는 '단편영화의 칸느영화제'라고 알려진 클레르몽 페랑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유쾌한 걸작이다. 매일 텔레비전 모니터로 비디오를 보던 소년은 마침내「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처럼 전투적인 모호크 인디언들의 머리를 하고 서울 도시를 헤매인다. 정지된 흑백화면 앞에서 거의 멈춘 것과도 같은 인물이 침묵하고 있는 장시간 촬영의 롱 테이크로 시작해서 영화는 점점 빨라진다. 그리고 마침내는 컬러화면에 혼란스러운 정신상태의 주인공 내면을 반영이라도 하듯 질주하는 카메라가 광란에라도 빠진 듯 흔들린다. 텔레비전과 비디오 캠코더, 영화를 넘나드는 영화 속에서 두 명의 감독은 미디어에 사로잡힌 세대를 말 그대로 '가볍게' 풍자한다.

유감스런 영화선택

이 두편에 비하면 나머지 네편은 영화적 상상력이나 완성도라는 점에서 다소 결함을 안고 있다. 허진호, 유영식 공동연출의「고철을 위하여」는 평범하고, 자신이 죽은 존 레논의 부활이라고 믿는 한 청년의 혼란과 좌절에 관한 몽상극을 연출한 장준환 감독의「2001 이메진」은 그 기발한 출발이 누구라도 예상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단편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뛰어난 완성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은 김태균, 김형구 공동연출의「잠시 멈춰서서」는 땅 투기 부동산업자가 어느 하루동안 새로운 투기지역에서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로 고향을 상실하고 도시로 밀려온 희생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자기성찰주의다. 아름답지만 관념적이고, 매우 날카로운 문제의식이지만 가슴을 울리지는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지리멸렬」은 웃음 속에 담긴 비수이다. '펜트 하우스' 도색잡지를 탐독하는 대학교수와, 술에 취해 남의 집 밥솥에 방뇨하는 검사와, 아침 조깅을 하면서 남의 집 우유를 훔쳐 마시는 신문사 논설위원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섞는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모음집에 담긴 단편영화들이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완성도도 있지만, 그러나 단편영화의 독립영화 진영에서 나온 성과물은 모두 빠지고 영화진흥공사 내 부설 영화아카데미 작품들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음집「이상한 영화 I」는 정말 '이상한' 모음이 되었다. 아마도 이 모음집이 그 첫 번째라는 것에 '희망'(다시 한번!)을 걸고 두 번째「이상한 영화」 모음집에는 80년대의 전설적인 꿈의 걸작 들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상한 영화'들은 더 이상 '이상한' 영화여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