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998.06.시론

깐느영화제 출품작 네 편이 짊어진 과제

전 지구주의라고 불리는 우리들의 시대 속에서 서방세계가 극동아시아에 자리잡은 한국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5월 13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 51회 깐느영화제에 네 편의 한국영화가 초대되었다. 홍상수 감독의「강원도의 힘」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허진호 감독의「8월의 크리스마스」는 '비평가 주간' 부문에, 이광모 감독의「아름다운 시절」은 '15인의 감독 주간' 부문에, 그리고 조은령 감독의「스케이트」는 단편영화 경쟁부문에서 12일 동안 전세계에서 온 2백76편의 영화들과 함께 상영된다. 그 중 허진호 감독과 이광모 감독은 데뷔작이기때문에 자동적으로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황금 카메라상'의 후보에 올랐다. 깐느영화제에 한국영화가 초대된 것은 처음은 아니지만 네 편의 영화가 동시에 상영된 것은 아마도 기념할 만한 '영화적' 사건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서방세계 영화제의 물신주의에 사로잡힐 생각은 정말 없다. 아카데미상에서 오스카 작품상을 받는다고 해서 그 해 최고의 미국영화가 아닌 것처럼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다고 해서 그 영화가 그해 최고의 영화인 것은 아니다. 영화는 결코 올림픽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영화인들이 "세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영화제가 있다. 그 하나는 깐느영화제이고, 또 하나는 안-깐느영화제뿐이다" 라고 말하는 유머에는 일정 정도의 진실이 담겨 있다. 깐느영화제에 초대되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출품된 영화가 서방(유럽)세계 '아트 하우스' 영화관에서 팔려 나갈 만한 상품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서방세계에서 새로운 영화시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동시에 그러한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이 형성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기묘한 이중적 입장 사이에서 한국영화는 미묘한 시기에 깐느영화제를 방문한 것이다.

우리들은 90년대 이후 맹렬한 속도로 서방세계의 '아트 하우스' 영화들을 소비해 왔다. 그 이전에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설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부분 완전히 오해한 상태에서 받아들인 아주 예외적인 사건이었을 뿐이다. (이를테면 스탠더드 화면의 스티븐 소더버그의「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입」이 '국내 유일의 70미리 상영관' 대한극장에서 개봉되었다.) 그러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희생」을 시작으로 짐자무쉬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데오 앙겔로플로스가 차례로 소개되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국제영화제에서 각광을 받은' 영화감독들을 불러 들였다.「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일본영화 불법 비디오들은 한국에서 가장 열렬히 환영받으며 영화광들의 손을 통해 배급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인권영화제는 탄압 받았고, 퀴어영화제는 원천봉쇄 당했다. 올해 다큐멘터리 영상제는 취소되었으며, 부천판타스틱영화제는 시의회에서 부결되었고, 서울단편영화제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우리는 이 불균형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깐느는 왜 이런 불균형에서 탄생한 네 편의 영화를 끌어들였을까? 이 영화들이 다른 한국영화들보다 정말 훌륭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들이 지금 한국영화의 서로 다른 네 가지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나는 아직 아름다운 시절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논의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우선 가장 흥미 있는 지적. 이 영화 감독들은 고작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거나 아니면 데뷔작을 막 끝낸 신인들이다. 깐느가 일년 동안 한국영화를 관찰한 다음 내린 결정은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한국영화(의 균형 있는 작가주의 계보)를 소개하는 대신 깐느를 통해서 처음 알려지는 신인들(이만든, 미지의 미래를 안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을 각 부문에 배치하여 깐느가 한국영화의 미래를 '발견' 하였다는 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으로써 깐느에는 낯선 한국영화를 그 아버지가 없는 젊은 영화라는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들은 서방세계를 통해 역으로 아시아의 영화를 소개받으면서 첸 카이거나 장이모우의 제5세대 이전 사회주의 중국영화를 완전히 무시했으며, 80년대 후 샤오시엔이나 에드워드 양 이전의 대만영화의 역사를 전적으로 없는 것처럼 취급하였다는 사실을 환기 해야 한다. 이것은 주도권을 쥔 서방세계 영화가 그 나라 영화의 역사를 재편하고 자기 방식으로 서술하는 헤게모니의 전쟁터임을 보여주는 예다. 그리고 그 역사는 다시 우리에게 수입되어 제도권 교육을 통해 온갖 형태로 재생산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깐느는 왜 한국영화를 이 지점에서 마치 그 이전이 없는 것처럼 다시 시작하려는 걸까? 두 개의 질문은 여기서 하나가 된다. 서구 '아트 하우스'의 국제적 장터 확장을 통해 장인들과 상인들을 하나로 만드는 작업 중 가장 먼저 넘어서야 하는 것은 (역사가 만들어 내는) 차이이며, 팔고 팔리는 관계 속에서 동시대성이라는 이름 아래 균질적 시간을 부여하고 그 사이에서 우정(을 빙자한 경쟁과 포섭과 약탈)과 사교적인 대화와 문화교류(라는 이름아래 자행되는 거래)를 시작할 것이다. 영화제는 근본적으로 변장한 시장이다. 그건 깐느에서건, 안-깐느에서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 편의 영화는 볼모가 되어서는 안되며, 이것은 정말로 그들에게 우리의 아버지들과 형들의 영화를 알리는 시작의 좌표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