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1998.07.시론

어제의 컬트는 오늘의 컬트가 아닌데…

유령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피와 살을 갖고 있지 않은 이 말은 망령처럼 어슬렁거리면서 사람들을 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것은 매우 묘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언어 속으로 스며들었다. 여기에는 몽매주의와 계몽주의 사이의 기이한 타협이 있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이 말은 동시에 은어적인 지식의 일부가 되었다. 언제나 암호는 힘을 갖는 법이다.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비한 유혹을 일으키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결속감을 안겨 준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것은 안에 있는 사람들과 바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겨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컬트(cult)영화라는 말은 그 이상한 이름짓기의 주해가 만들어 내는 소란스러운 표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말의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이 힘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서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유포되기 시작한 데 있다. 그런 가운데 컬트라는 말은 제도에 대한 저항의 함의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일종의 비밀결사체와도 같은 자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저항과 자장은 유행과 광고카피로 전이되었다. 모두들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이 말의 몸을 빌려쓰고 스스로를 변장했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세했다.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두 개의 말은 잡종교배하였고, 컬트는 점점 더 많은 주석을 갖기 시작했다. 오래된 우화의 교훈처럼 너무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컬트는 그 모든 영화의 다른 이름이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이제 유행은 지나가고 컬트라는 말의 자장은 그 힘을 잃었다.

이런 마당에 컬트영화라는 말을 세상에 처음으로 만들어 낸 짐 셔만의「록키 호러 픽쳐 쇼」가 한국에서 개봉된다. 이 뒤죽박죽의 연대기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위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한국에서의 영화 현상이라는 특수성과 영화에서 한국이라는 상대적 자율성 사이의 짜임관계(Konstellation)를 다시 구성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컬트현상은 영화에서도 매우 예외적인 사건이다.

우선 컬트의 전사(前史):「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토미」로 시작된 락 오페라의 성공에 고무되어 1972년 리차드 오브라이언은「그들은 덴튼 하이에서 왔다」라는 또 한 편의 락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리고 완성이 된 다음 제목을 '록키 호러 쇼'로 바꾸었다. 그는 동료인 팀 커리와 16mm 영화감독이자 무대연출자인 짐 셔먼과 함께 작업하여, 73년 60석 규모의 런던 로얄 코트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의외로 이 무대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뒤이어 5백석 규모의 극장으로 옮겨갔다. 그 이듬해 이 락 오페라는 미국에서도 상연되었다.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화를 제안하자 처음엔 망설였던 짐 셔먼은 용기를 내어 메가폰을 잡았다. 그러나 결과는 끔찍하게 나타났다. 비평가들로부터 난타전을 당했고, 관객들은 완전히 외면하였다. 필름은 바로 창고로 직행했다.

이상한 역전극: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그야말로 너무 나쁘자 반대로 이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별미' 취향의 영화광들이 나타난 것이다. 비디오도 없었고 케이블 방송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다. 게다가 평가가 너무 나빠서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방영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일부 영화광들의 열화 같은 호기심 덕분에 이 영화를 중심가 외곽에 있는 작은 영화관에서 제한적으로 토요일 심야에 상영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의 발단: 1976년 뉴욕의 웨이벌리 극장에서 루이스 파레나 주니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평범한)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그만 영화 속의 주인공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야, 이 바보야 그걸 사면 되잖아!"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 예상치 않은 반응은 그 날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이제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이상한 영화감상을 한 셈이다. 그리고 다음주 이 경험을 한 관객의 일부가 다시 영화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관객들이 같은 대사를 외쳤다. 심지어 다른 대목에서조차 영화 속의 등장인물에 앞질러 대답을 하거나 다른 대답을 해 버리는 소란이 이어졌다. 이제 관객들은 영화와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적극적이 되어 갔다. 일부 관객들은 심야에 영화 속의 주인공과 같은 복장을 하고 나타나 무대 위에서 같은 동작을 해 보이고 립싱크를 하고 춤을 추기까지 했다. 이들의 행동은 순식간에 전염되어 갔고, 이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이교도 숭배(말 그대로 'cult')라는 의미에서 컬트영화라고 불렀다. 그래서 컬트영화를 발굴해 내는 것을 자기의 업으로 삼고 있는 비평가들은 창조하는 컬트 '현상'이 있을 뿐이며 준비된 컬트 '영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어제의 컬트가 오늘의 컬트일 수 있으며, 오늘 컬트가 아닌 것이 내일은 컬트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것은 전적으로 관객이 만들어 내는 문화인 것이다.

그런데 질문: 만일 그러하다면 저기의 컬트는 여기의 컬트가 아닐 수 있으며, 여기의 컬트는 저기의 컬트가 아닐 수 있다. (또는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컬트영화의 원조(이 기괴한 표현!)가 세월을 건너뛰어 수입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록키 호러 픽쳐 쇼」에 그들이 애정을 바쳤던 그 현상까지 수입할 수 있는가? 만일 우리가 컬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면 그것이 구태여「록키 호러 픽쳐 쇼」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어쩌면 이 모든 소란이 그 자체로 컬트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런 소란을 전세계 어디에서 본 적이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