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2003.04.작품

분단국가의 경계인, 송두율을 기억하라 -「경계도시」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누군가에 대해서 말하는 일상적인 행위가 ‘결단’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홍형숙의「경계도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영화는 독일 뮌스터 대학의 송두율 교수가 귀국을 시도하다 결국 포기해야만 했던 보름간의 이야기와 약간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물론「경계도시」는 이것만으로도 가슴을 저리게 하고,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그렇게 간단히 이야기할 수만은 없는 대목들이 사이사이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송두율 교수는 1944년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 이후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김지하 시인을 만났고, 1967년 (베를린을 무대로 유학생들이 간첩활동에 포섭되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은) 동백림 사건을 지켜보면서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에서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2세대인) 위르겐 하버마스를 은사로 모시고 공부했다. 한국의 유신정권을 망연자실 지켜봐야 했던 그는 1974년 3월 1일, 본의 뮌스터광장에서 55명의 한국인 유학생, 간호원, 광부들과 함께 민주사회건설협의회를 세우고 초대 의장직을 맡는다. 이때부터 한국 정부는 그를 반정부 인사로 규정한 것이다.

1990년 서울대 사회학과는 그에게 일 년간 초빙교수로 와줄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곧 이런저런 이유가 전달되며 날짜는 자꾸 연기됐다. 그러던 중 이듬해 3월 북한의 초청을 받아 학술대회에 참석한다.

그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북한에서 귀순한 황장엽씨가 1998년『북한의 진실과 허위』라는 책을 통해 송두율 교수가 북한노동당 정치국 서열 23위의 김철수이며, 해외 거주 간첩으로 활동 중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220회 6차 국회 본회의는 통일부장관을 불러 그 사실을 거듭 확인했고 그 과정에서 송두율 교수는 ‘간첩’이 돼 있었다. 송두율 교수는 즉시 명예훼손으로 대응했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창백한 냉전논리와 반공주의 국가였다.

세월이 흘러 2000년 늦봄 통일상 위원회는 송두율 교수를 수상자로 정하고 서울에 초대했다. 같은 해 6월 14일 베를린에서 (이 영화의 감독인) 홍형숙씨와 (그녀의 남편이자, 프로듀서이자, 베를린 부분을 촬영한) 강석필씨가 송두율 교수를 만났다. 원래 의도는 귀국을 준비하는 송두율 교수 부부를 디지털 카메라에 담고, 함께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서 7월 4일 수상식 대목을 찍을 생각이었다.

무엇이 그를 가로막는가

영화를 통해서 처음 만난 송두율 교수의 책상 위에는 등사 인쇄로 프린트 된 좬김지하 시집좭과 광장 팸플릿, 좬민주한국 사설집좭과 김일성에 관한 복사물, 그 자신의 논문을 담은 독일어 책자들이 놓여 있었다. 모든 사람의 책상은 그 사람의 머릿속인 법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돌아가고 싶은 조국과 통일과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그렇게 놓여 있었다.

그의 곁에는 아내 정경희씨가 서 있었다. 조국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어쩌면 더 가슴 설레하는 사람은 정경희씨인 것처럼 보였다. 카메라 앞에서 송두율 교수는 어눌하지만 담담하고도 차분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어요. 이제는 그 사람들이 통일을 위한 바톤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요. 아버지의 묘소에 가고 싶고 오랜만에 동지들을 만나고 싶어요.”

그는 어쩌면 당신 살아 생전에 통일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벌써 다음 세대가 궁금하고, 기대되고, 걱정되는지 모른다. 숨가쁘게 전화가 오가면서 송두율 교수는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경희씨는 홍형숙 감독과 함께 옷가게에 가서 33년 만에 가는 귀국길에 입을 새 옷을 준비했다. 아주 짧은 장면인데도, 거기서는 이상할 정도로 고국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사무친 정이 배어난다. 소풍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저 순진한 마음과 간절한 태도.

그러나 모든 것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준법서약서를 생략하고, 간단한 조사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타협을 했다. 송두율 교수도 그 정도는 받아들이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떠나려고 한 바로 그날, 국정원이 입장을 바꿨다. 그 전화를 받는 현장에서 카메라는 송두율 교수와 정경희씨를 바라본다. 막 고국을 향해 떠나려고 열어놓은 텅 빈 가방과 널려진 옷가지들. 전화를 끊은 송두율 교수는 그저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경희씨는 홍형숙 감독을 안고 흐느꼈다. 카메라는 그들과 함께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옛 이름들을 불러 보라

이 영화가 정말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송두율 교수와 정경희 씨 부부의 돌아가고 싶은 진심을 감싸안은 홍형숙과 강석필 부부의 정감 어린 카메라 때문이다. 홍형숙 감독은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면며, 그동안「전열」과「54일, 그 여름의 기록」과 같은 노동영화를 공동작업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침묵 끝에 자기의 이름으로 농촌공동체에 관한「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를 만들었을 때 일부는 비판했다. 어쩌면 그녀의 동료들이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겐 노동현장으로부터 농촌으로의 이동이 후퇴로 보였던 것이다. 그 이후 재일동포의 개명문제를 다룬「본명선언」은 원작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홍형숙 감독은 그때마다 힘겹게 그 자리를 넘어오면서도 자기의 자리를 끈질기게 지켜냈다. 적어도 그녀는 타협하거나 변절하거나 후퇴하거나 제도의 장안에 들어가거나 허황된 욕심을 부리거나 또는 자리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이를테면 장산곶매의 옛 이름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이름을 불러 보라. 또는 90년대의 저 수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던 힘 센 이름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들을 불러 보라.

홍형숙 감독은 마치 언제라도 거기가 자기의 자리였던 것처럼 거기서 그렇게 한 걸음씩 일보전진했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경계도시」는 홍형숙 감독의 (이제까지의) 최고 걸작이다. 그러나 그건 그녀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힘들게 싸우고 있는 그녀 곁에서 이제 부부가되어 함께 작업하는 동료이자 남편과 함께 송두율 부부의 곁으로 다가가 그들을 이해하고 동감하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교훈을 끌어내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홍형숙 감독은 강석필씨와 함께 처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냈다.

국정원의 전술, 빨갱이 색칠하기

이 영화가 정말 힘을 얻는 순간은 이 영화를 만들고 난 다음 찾아온 국정원 사람들과의 만남을 ‘몰래 카메라’로 찍은 장면이 몇 번이고 영화 중간 중간에 들어가 우리로 하여금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 때다. 2001년 6월 홍형숙 감독과 강석필씨는 서울에 돌아왔고, (자막에 의하면)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아이를 낳았고, 남편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다방에서 강석필씨는 국정원 직원을 만났고, 카메라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네들의 대화를 담는다. 그들은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송두율 교수를 체포할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당신들의 예술활동을 존중하지만(말로만!),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은 “송두율의 전술이며, 빨갱이들의 기본전략”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낸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남한이며, 일상생활이다. 세상이 이런데도 남한의 철없는 영화 소년 소녀들은 야한 장면을 자르지 말라며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들먹인다. 섹스 장면이 정치적 알레고리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따분하다. 이 칼날 같은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일상생활 속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논하는 중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송두율 교수와 정경희씨가 위대한 음악가 (나는 그의 곡을 들으면서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윤이상 선생의 묘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거기에는 끝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혼령과 살아서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피와 살을 가진 육신의 만남이 있다. 시종일관 이 영화에 흐르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4번과) 윤이상 선생이 만들어낸 선율은 자꾸만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그 대목에서 홍형숙 감독은 무표정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일러준다. 경계도시(境界都市)는 분단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던 시절의 베를린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이제 지구상에 경계국가는 유일하게 한반도뿐이다. 송두율 교수는 그렇게 33년째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송두율 교수님, 당신은 정말, 정말 건강해야 합니다. 살아서 이 땅에 돌아와야 합니다. 당신이 여기 돌아와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들려줄 때, 비로소 우리의 통일은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아서 선생님을 서울에서 뵙고 싶습니다.


당신에게「경계도시」에 대하여 알려드리는 두세 가지의 소식

「경계도시」는 4월 5일 토요일 오후 3시와 6시에 서울 석관동 (옛날 정보사 자리에 위치한) 영상원 시사실에서 상영된다.(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이다.) 두 번 모두 감독과의 대화가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백 마디로 지지하는 대신 여기서 한번 영화를 보는 것이 정말 지지하는 실천이라는 사실을 환기하자. 아마도 약간의 입장료를 받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실천하는 것은 혀가 아니라 자기 호주머니의 돈을 꺼낼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중요한 정보 한 가지 더. 지난 부산영화제 상영본에는 국정원 직원이 강석필씨를 만나서 ‘협박’하는 몰래 카메라 장면이 모두 빠져 있었다. 이번 상영본에는 들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부산영화제에서 보신 분들도 ‘진짜’「경계도시」를 보시려면 이 ‘검열되지 않은’ 감독판을 보셔야만 한다.

「경계도시」(와 상영일정)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분들은http://cafe.daum.net/indisider에 접속하면 ‘「경계도시」에 서다’ 사이트에 들어가실 수 있다. 이 사이트는 홍형숙 감독(과 서울영상집단)과 아무 상관없는 영상원 이론과 학생 서정혜영과 김희윤씨 둘이서 운영하고 있다. 이 영화의 특별상영도 이 두 학생의 아무 이해관계 없는 열정 덕분이다. 나는 이런 영화 친구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 진심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