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신문』 1996.09.05.작품

안토니오니 '구름 저편에'

불가능하거나 깨져버린 사랑, 덧없는 감정에 방랑하는 마음 그려

주연/ 소피 마르소, 존 말코비치, 장 르노

1960년대 모더니즘 영화를 이끌었던 이탈리아의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1995년 세상에 내놓은 영화「구름 저편에」는 영화의 제작과정 자체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83세의 고령에 접어든 안토니오니는 병의 후유증으로 10년 동안 거동이 불편하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동안 새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던 거장에게, 독일의 빔 벤더스감독이 조감독을 자청하고 나섰다. 촬영현장에서 안토니오니가 눈빛과 손짓으로 의사를 밝히면, 아내 엔리카와 벤더스가 스테프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영화는 만들어졌다.

영화의 골격을 이루는 네개의 에페소드는 1983년에 발표된 안토니오니의 단편소설「테베레강의 경사진 오솔길」을 영상으로 옮긴 것이다. 안토니오니가 데뷔작을 찍을 때부터 끈질기게 매달려왔던 주제 불가능하거나 깨져버린 사랑, 덧없고 거짓된 감정에 흘러 방항하는 마음의 풍경을 다루고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존재하지 않았던 사랑의 연대기」에는 욕망의 충족을 끝까지 유보하는 커플이 등장한다.

「여자, 범죄」라는 제목의 두번째 에피소드는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는 감독의 내밀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구상하려고 이탈리아의 포르토피노에 도착한 감독(존 말코비치)는 오솔길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여자(소피 마르소)에게 이끌려 그녀가 일하는 의상실까지 좇아간다. 바닷가 카페에서 여자는 감독에게 다가와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그는 갑자기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만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세번째 에피소드「나를 찾지마세요」는 깨져버린 사랑을 그리고 있다. 파트리지아(파니 아르망)는 3년 동안 바람을 피우는 남편 로베르토에게 실망하여 집을 떠난다. 그녀는 새로 옫은 아파트에서 부인에게 버림받은 남자 카를로(장 르노)와 마주치고,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면서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에 희망을 건다.

네번째 에피소드「타락한 육체」의 니콜로(뱅상 페레)는 우연히 마주친 젊은 여자(이렌드 자콥)에게 매혹되어 성당까지 따라간다. 밤이 다가오고 여자의 집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니콜로는 그녀가 매일 수녀원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쓸쓸히 돌아선다.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인물은 두번째 에피소드의 감독이다. 그는 내레이터로서 모든 인물을 관찰하고 관객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는 누구도 볼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실재의 마지막 이미지에 도달하고나서 비로서 이미지 뒤에 더욱 신뢰할 만한 실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마치 안토니오의 유언처럼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