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1994.12.작품

헐리우드의 이단아 -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지금 헐리우드에서 가장 ‘낯선’ 감독이라면 그 영광을 팀 버튼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낯설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의미에서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그 다양한 스펙트럼에 있다. 공룡과 유태인 문제에 동시에 매달리는 스필버그, SFX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제임스 카메론,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만 골라서 건드리는 올리버 스톤을 잠시 떠올리기만 해도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조차 팀 버튼은 아주 ‘희귀한’ 예이다.

우선 팀 버튼은 아주 복잡한 계열에 서 있다. 그는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상상력을 종횡무진으로 발휘한다. 그 상상력의 뿌리는 그림 형제의 동화와, 독일 표현주의 회화와, 40년대 유니버설 영화사의 공포영화와, 60년대 텔레비전 소프 오페라와, 월트 디즈니 만화에 걸쳐 있다. 그는 자기 내면세계 속의 그 복잡한 이미지를 아무런 질서도 갖지 않고 섞어버린다.

팀 버튼은 그런 의미에서 무정부주의자에 가까운 예술가이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취향은 놀랍게도 90년대를 통과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배트맨>과 <배트맨2>는 <쥬라기공원>이나 <터미네이터2>에도 비견할 만한 흥행에서의 박스 오피스를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비틀 쥬스>와 <가위손>은 그해 뉴욕 영화제에 스파이크 리와 코헨 형제의 야심적인 영화들과 나란히 개봉되어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그가 모든 사람들을 꿈꾸게 만드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대부분의 영화관계자들은 동의한다.

그는 1958년 8월 25일 미국의 바방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시절 그는 친구가 전혀 없어서 혼자서 텔레비전을 종일 보거나 아니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의외로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대신 거의 병적으로 장난감 수집에 열을 올렸다. 남학생이 장난감을 모으는 게 취미라고 소문나면서 팀 버튼은 인근 고등학교 여학생들에게 기피인물 1위로 손꼽히기도 했다.

세 편의 단편영화 만든 뒤 <피위의 대모험>으로 데뷔, 격찬 받아

팀 버튼은 졸업하자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에서 3년 간 만화그래픽을 전공하고 월트 디즈니사에 입사했다. 당시 디즈니는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에 실패하고 있었고, 게다가 방만한 경영과 철저한 분업화 그리고 관행적인 관료체계 때문에 질식할 듯한 분위기였다. 팀 버튼이 꿈꾸던 그런 만화 주인공들의 천국이 아니었다. 그는 곧 자기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월급이나 받으며 안정된 직장에서 한달 동안 같은 그림을 수백장씩 그리며 인생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위험하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인가? 팀 버튼은 자신의 꿈이 이끄는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 이름도 알 수 없는 디즈니 만화영화사 출신의 신인에게 선뜻 돈을 내주는 사람은 없었다. 팀 버튼은 색다른 전략을 택했다. 단편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세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하나는 기괴하고 변덕스러운 사내의 별난 소동에 관한 <빈센트>이고, 또 하나는 프랑켄슈타인 ‘강아지’에 관한 코미디 <프랑켄위니>이고, 마지막 하나는 텔레비전 단편드라마 <알라딘과 마법의 램프>이다.

그 가운데 마지막 단편이 텔레비전 개그맨 피위 허먼의 눈에 들어 드디어 85년 <피위의 대모험>을 만들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벌어지는 피위의 엉뚱한 모험담을 테크놀러지 없는 SFX로 그려내어 그 해의 가장 독창적인 데뷔라는 평가를 얻어냈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로부터 별넷 만점을 얻어냈다.

팀 버튼의 두 번째 영화 <비틀 쥬스>는 흥행과 비평 모두로부터 성공한 드문 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혼부부가 죽어서 유령이 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악당들이 우글거리면서 자신들의 허락도 없이 집을 처분하려는 것이 아닌가. 분개한 유령부부는 악당들을 몰아내려고 하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고민하던 유령 부부는 고민 끝에 저승에서 제일 못됐다는 유령 비틀 쥬스를 모셔오기로(!) 결심한다. 비틀 쥬스는 나타나자마자 소동을 부려 악당들을 혼내주는데,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집 전체를 부술듯이 난동을 부린다. 이제 유령 부부는 비틀 쥬스를 쫓아내기 위해 고민에 잠긴다.

영웅의 활극 아닌 ‘어둡고 쓸쓸한’ <배트맨>으로 놀라운 흥행 성공

팀 버튼은 여기서 ‘착한’ 유령과 ‘나쁜’ 유령이라는 기발한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유령을 통해서 인간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이 뒤집힌 세계가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비판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과 유령 사이를 조화롭게 화해시키는 동화처럼 유쾌하고도 밝은 마음으로 본 적이 없는 인공세트를 세운다. 팀 버튼은 바로 이 ‘인공’ 세트 속에서 인간세계 바로 곁에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이 영화의 성공으로 워너 브라더즈로부터 <배트맨>의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그리고 제작비 4천5백만 달러로 그의 ‘개인적인’ 어둡고, 음침하며, 쓸쓸하고, 폭력적인 묵시록적 비전을 만들어냈다.

팀 버튼은 여기서 영웅담을 그려낼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 대신 콤플렉스에 가득 찬 이중인격자 배트맨의 불안과 고독이 음울하게 담긴다. 그는 낮에는 백만장자이며, 밤이면 박쥐 갑옷을 입고 도시를 감시한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헐리우드 영화라면 여기 악당이 나타나고, 모험이 벌어지고,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팀 버튼은 오히려 그 악당에게 애정을 갖는다.

배트맨을 괴롭히는 악당 조커는 타고난 예술가이며, 가치의 전복자이고, 퍼포먼스 해프닝의 대가이며, 모던 댄스의 진수를 깨달은 인물이다. 그는 배트맨이 천박하며 속물근성의 귀족이라고 빈정거리기까지 한다. 이제 영화는 배트맨과 악당 조커 사이의 대결이라기보다는 누가 이 시대에 어울리는 인물이냐고 묻는 쪽으로 나아간다.

워너 브라더즈는 근심스럽게 이 ‘황당무계’한 대작을 89년 여름에 개봉시켰고, 그 결과는 놀랍게도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운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열렬하게 응원하였고, 팀 버튼은 새로운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의 성공을 즐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예술가이다. 팀 버튼은 성공을 외면하고 그 후 아주 소규모 제작비를 요구하는 세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손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가위손을 갖고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닌 인조인간 소년의 슬픈 사랑 이야기 <에드워드 가위손>, 스톱모션 촬영기법으로 유령마을의 크리스마스 소동을 그린 <크리스마스 악몽>, 그리고 50년대 컬트영화 제작자 에드 우드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에드 우드>를 연출하였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주인공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 영화들이 의도한 세계는 모두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마주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다. 팀 버튼의 주인공들은 모두 고아의식에 시달린다. 그래서 버림받고 다시 구원받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 몸부림은 종종 악의 편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몸부림을 가로막는 것은 주인공(!)이다.

성공 외면하고 반(反) 헐리우드적 작품 제작에 몰두

이제 버림받은 주인공은 영화의 주인공과 맞서 싸우기까지 한다. 그래서 두 주인공 사이에서 관객들은 마치 심판이라도 받는 것처럼 그 어느쪽 손을 들어야 할지 난처한 지경에 빠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짓궂은 내기인가?

그러나 팀 버튼은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그가 성공을 외면하면서 선택한 주인공들은 분명 철학적이며, 때로는 깊은 근심을 잠기고, 근원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파우스트적 인물들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그래서 일종의 무거운 화두처럼 우리를 내리 누른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관객들은 좀 더 가벼운 것을 찾아 떠난다.

팀 버튼은 자신의 무거운 문제의식과 가벼운 형식을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지만, 그는 점점 더 자신의 영화를 어둡게 만드는 쪽으로 돌아세우고 있다. <크리스마스 악몽>에서는 인형극의 형식을 빌려 산타클로스를 납치하자는 유령 마을의 ‘무시무시’한 음모를 뮤지컬로 펼치지만, 노래와 인형들의 춤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를 감싸는 분위기는 음침하고 잔인하다. 그는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에드 우드>는 흑백 필름으로 만들었다. 마치 그의 관객들에 대한 결별선언처럼.

그래서 팀 버튼은 원컨 원치 않건 헐리우드의 이단아로 출발해서 이제는 저주받은 작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가 앞으로도 헐리우드를 떠나지는 않겠지만, 더욱 더 반(反)헐리우드적인 영화를 만들어낼 것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