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의 FM영화음악』 1993.02.07.영화이야기

정성일의 영화읽기

영화를 두배 재미있게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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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새로운 영화 읽기를 가르쳐 주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 오늘 이 시간에도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정은임

안녕하세요.

정은임

제가 소문에 듣기로는요, 정성일씨가 오늘 아주 비법을 가지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정은임

비법이라면 좀 이상하고요, 영화를 2배 더 재미있게 보는 법, 정도라고 생각하면 좋겠는데요.

정은임

과연 무엇일까요.

정은임

우선 그 제가 이 프로를 통해서 꼭 이 프로의 청취자들 중에서 특히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한테 드리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습니다.

영화에 관한 가장 커다란 미신 중의 하나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물론 영화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또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더 알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만약에 바쉴라르였다면 프로메테우스 콤플렉스라고 부를 법한데요, 이 행복한 욕망을 근거로 해서 비평 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을 추리소설로 읽으셔도 상관없고 또 마르셸 프로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멜로드라마로 읽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룹 U2를 NEW KIDS ON THE BLOCK과 같이 들으셔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화는 다른 상품과는 달리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을 거듭 벗어나거나 배신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율배반적으로 대중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능있는 감독들이 삼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는 영화사 100년 속에 무수히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능 있는 감독들은 대중을 만족시키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하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됩니다.

정은임

청취자분들이 굉장히 궁금하실 것 같아요. 과연 오늘 무슨 얘기를 해주실지.

정은임

우선 첫 번째 조항입니다.

정은임

어. 무슨...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법......

정은임

예, 맞습니다.

정은임

아... 정성일씨가 보시는 그런 영화 읽기 법, 그 비법을 가르쳐 주신다고요.

정은임

첫 번째 조항은, 영화 재미있게 보기는 '한 영화를 두 번 볼 때' 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은 제 얘기가 아니라 프랑소와 트뤼포라는 감독 얘깁니다. 트뤼포감독은 영화광의 3단계가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한 영화 두 번 보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 쓰기,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 찍기, 이것이 최고의 단계라고 얘기합니다. 또 아무리 위대한 영화 평론가도 삼류 감독만큼 영화를 알지 못한다. 이것도 제 얘기가 아닙니다. 고다르라는 감독의 얘깁니다.

저도 50번 이상 본 영화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은 장 르노와르의『게임의 규칙』이라든가 막스 오피스의『롤라 몽떼』, 임권택 감독의『길소뜸』, 로베르 브레송의『무쉐뜨』, 알프레드 히치콕감독의『새』, 이 영화들은 제가 50번 이상 보면서도 여전히 대단한 영화다 라고 무릎을 꿇게 만드는 영화들입니다.

두 번째 조항, '영화 자막 끝까지 읽기'. 이건 아마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 중에 하난데요. 그것은 무식한 영화관 영사 기사와 관객들이 야합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영화가 끝나고서도 앉아 보십시오. 뒤이어 다음회 손님 달려와서 내자리 왜 안 비키냐고 눈에 도끼질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무서워서 어떻게 앉아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디오 때문에 이제는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스텝과 캐스트를 끝까지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끔 아주 의외의 이름들이 등장해서 영화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 퀴즈 시간이 돌아왔습니다.『매드 맥스』2편과『늑대와 춤을』과『파워 오브 원』의 공통점은?

정은임

무엇이죠?

정은임

촬영기사가 동일 인물입니다. 딘 세밀러. 또『미드나잇 익스프레스』,『미션』그리고 오늘부터 개봉한『집시의 시간』의 공통점은?

정은임

우연히 제가 아는 것이군요. 제작자 데이빗 포트냄 아닙니까?

정은임

네, 맞습니다.

정은임

그리고『케이프 피어』와『배트맨 2편』과『최종 분석』의 공통점은?

정은임

(작은 목소리로)『케이프 피어』,『배트맨2편』,『최종 분석』..... 모르겠네요.

정은임

예, 같은 시나리오작가 웨슬리 스트릭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다이 하드』와『붉은 시월』과『블랙 레인』과『토탈 리콜』과『원초적 본능』의 공통점은?

정은임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애요.

정은임

네, 같은 촬영기사 얀 드봉입니다. 이런 것들을 자막으로 여러분들 한 번 보시면서 쾌감을 만끽해 보십시오.

세 번째로 '뒤의 영화로 앞의 영화 다시 생각하기' 가 있습니다. 감독들이 만든 영화 중에서 두 가지 선택의 고민에 빠져듭니다. 첫 번째는 내가 속은 것은 아닐까? 두 번째는 걸작인데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질문이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을 보면 명백히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코엔 형제인데요,『분노의 저격자』, 우리 나라 비디오 출시명이고요,『블러드 심플』과 두번째 영화 『아리조나 유괴 사건』은 그 영화만 갖고 보자면 B급 상업 영화입니다. 그런데 혹시나 이 영화 속에 담긴 이 현란한 재능이 그저 깜짝쑈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평론가들 사이에 늘 붙어 다녔습니다. 그런데『바톤 핑크』를 보니 말끔히 씻어질 뿐만 아니라 『블러드 심플』과『아리조나 유괴 사건』에서 정말 코엔 형제가 하고 싶었던 그 유머가 무엇인지 오히려『바톤 핑크』를 보면서 그 앞의 영화들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라면 지금 이 프로 청취자들과 영화광들의 가장 궁금한 것.『첫사랑』은 실패작인가, 성공작인가? 여러분들, 그것을 판단하시기 전에『첫사랑』을 보시고『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다시 보십시오. 그 다음에『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진짜 걸작이었나, 아니면 우리는 혹시 평을 과장한 것은 아니였을까를 판단해보십시오.

그리고 네 번째입니다. '영화에서 카메라를 발견하는 것' 이 중요합니다. 영화에서 늘 눈앞에 있으면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카메라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눈에 보이게 쓰는 감독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게 쓰는 감독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카메라 스타일이라면 물론『좋은 친구들』의 마틴 스콜세지,『바톤 핑크』의 코엔 형제 그리고『광란의 사랑』의 데이빗 린치 같은 감독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게 쓰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대부』의 코폴라,『양들의 침묵』의 조나단 드미 그리고 우리 나라에 비디오가 꽤 많이 출시되어 있는 영화광들의 비밀 목록, 우디 알렌의 영화들.

어느 것이 더 좋으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스타일 감독들이 오히려 화면 속에, 카메라가 아닌 화면 속에 자신들의 스타일을 배치하기 때문에 더욱 꼼꼼한 읽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정은임

카메라가 보이는 스타일과 안 보이는 스타일의 영화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정은임

네, 이를테면 데이빗 린치같은 감독은 카메라를 자기의 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등장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극단적으로 앞까지 다가간다던가 또는 공포의 표현을 하기 위하여 카메라가 도망치듯이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나단 드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카메라는 자꾸 눈앞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는 뒤의 소도구들, 주인공의 옷색깔, 또는 주인공 사이로 오가는 등장 인물들의 가로세로 줄긋기, 이런 것들을 통해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합니다. 말하자면 똑같은 것을 표현하지만 어떤 감독은 카메라로, 또 어떤 감독은 화면 속에 담겨 있는 카메라를 제외한 요소들로 영화를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영화는 항상 영화 이상으로 존경해야 한다' 는 것입니다. 다소 엉뚱하죠. 영화평을 읽으면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에이, 설마 영화감독들이 거기까지 생각했을려고." 또는 "그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거 아냐" 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평론가를 욕보이는 것이 아니라, 욕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문제는 바로 영화감독을 욕보이고 경멸하는 것입니다. 영화감독들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세대 문화의 파수꾼입니다.

히치콕의『현기증』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Sight and Sound' 라는 영국영화잡지에서 92년도에 전세계 영화 평론가들에게 추천을 받으면서 여전히 가장 훌륭한 영화의 한 편으로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저 단순히 드릴러라면 왜 그렇게 평가 받았겠습니까? 왜 여기서 50년대 냉전 이데올로기의 정신분열증을 읽어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디킨즈와 발작의 소설에서는 자본주의를 읽어 내면서 왜 코폴라의『대부』가 미국 자본주의의 기업의 병적 증후군에 관한 비판으로 읽어내면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습니까? 또 바그너를 파시즘과 연관짓는 것에는 침묵하면서『로보캅』을,『블레이드 러너』같은 SF영화를 신약성서의 메타네러티브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영화 관객들은 자신이 보는 것만을 믿으려고 합니다.『바톤 핑크』『반 고호』그리고 첸 카이거의『현위의 인생』같은 영화들은 그 모호한 스타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러한 낯선 읽기를 꾹 참고 있습니다.

정은임

그러니까 영화 속에 나타나는 감독의 또 다른 의도들을, 숨어있는 것들을 우리가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인거죠?

정은임

그렇죠. 그런데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사실은 그 정반대이거나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밝혀질 때 이상하게 관객들은 거부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은 혹시 그 거부감의 밑바닥에, 첫 번째, 영화 정도는 나도 잘 알고 있고, 두 번째, 영화감독이 뭐 그렇게까지 생각할 수 있겠느냐라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자문해 봐야됩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영화는 항상 문화현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며 거기서부터 정치적 입장과 이데올로기적 논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정은임

네, 영화라는 것이 하도 대중화되어 있으니까 조금은 낮게 취급하려는 그런 생각도 많이 있죠. 하지만 우리 문화의 대표적인 현상 중에 하나니까 우리도 그 영화 속에 숨은 뜻, 그 뒷얘기를 잘 읽자는 그런 말씀이시네요.

정은임

정확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입니다. '명장면을 쇼트 바이 쇼트하는 습관' 을 가지시면 아주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한데요. 첫 번째, 4헤드 비디오데크를 구입하실 것. 두 번째, 좋은 화질의 비디오를 구입할 것.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이 어떻게 찍혀진 것인지, 또 평론가들이 명장면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어떻게 찍은 것인지 비디오로 정지시켜가면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한 번 눈여겨보십시오.

정은임

자본이 좀 들겠네요.

정은임

아마 이 프로에 홍콩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특히 홍콩 느와르 영화들 중에서 총격전장면들을 보며 "야,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실겁니다. 그런데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뜯어보면 엉뚱한 것이 보입니다. 즉, A쇼트와 B쇼트를 연결할 때 홍콩 느와르 영화는 꼭 점프컷으로 연결을 합니다. 그런데 이 점프컷은 보통 점프컷처럼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건너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간적으로 늘려놔서 1.5배 쇼트 길이와 1.5배 쇼트 길이로 겹쳐놓고 편집합니다. 그래서 이 총격전장면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심리적으로 긴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시각적 착시현상을 이용한 것이라는겁니다.

정은임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점프 컷이라는 것은 한 장면을 갑자기 다른 장면으로 뛰어넘는거잖요. 그런데 1.5배 겹쳐진다는 그 부분이...

정은임

이를테면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제가 정은임씨의 뺨을 때립니다. 뺨을 때리는데 때리는 장면을 찍고 그 다음 장면에 찍을 때 보통, 그것을 그 다음 장면에 그것을 보는 표정을 탁 잡는다던가 아니면 다른 장면을 잡는 것이 일반적인데,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따따불로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는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뺨을 때리는 장면이라면 눈에 분명히 보이지만은 총알이 수십발이 튀어나가면서 쏟아붓기 때문에 이것이 겹쳐놓아도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넘기면서 보지않으면 눈으로 속임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한 번 보십시오.

정은임

네, 참 설명은 구체적이고 좋았는데 그 대상이 좀 안 좋았네요. 저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정은임

예, 죄송합니다.

정은임

일곱 번째요.

정은임

그리고 일곱 번째는 '번역 자막을 믿지 마시라' 는 것입니다. 한국 영화는 큰 문제가 없으나 외국 영화를 볼 때, 극장에서는 통계가 있습니다. "당신이 영화를 볼 때 자막을 읽으십니까?" 라는 설문 조사를 했는데요, 10명 중에 몇 분이 읽지 않으실 것 같습니까?

정은임

글쎄요. 영어 실력이 뛰어나야 될 것 같은데.

정은임

자막을요.

정은임

자막을요. 아... 한 3명? 4명?

정은임

10명중 5.7명이 자막을 읽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한데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유난히 이야기가 복잡한 영화보다는 액션 영화가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객을 무시하고 엉터리 번역으로 관객을 종종 혼란에 빠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겁니다.

아주 고전적인 예로는 우리 나라에 수입된『졸업』에서 수입을 통과하기 위해서 앤 밴크로프트가 캐서린 로스의 어머니가 아니라 갑자기 이모로 오역된 경우는 대표적인 경우지만 최근에도 숱한 예가 있습니다.『어퓨 굿맨』의 경우에는 심지어 '이다'가 '아니다'로 되어 있고 속어가 순화되는 바람에 악당의 성격을 종잡을 수 없고,『원초적 본능』처럼 미스테리를 더 미스테리로 만들어버리기 일쑤이고『바톤 핑크』는 아예 개작을 한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고 화면에서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막은 그저 두 줄 나오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은임

그렇죠. 이런 경우도 봤어요. 'Fuck You'라는 욕이 있잖아요. 그걸 '뻐꾸기'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정은임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가 더 문젭니다.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하겠습니까? 만일 등장 인물이 '확실히' 를 갖다가 줄기차게 '학실히' 라고 발음할 때는 그것은 감독은 다른 의도가 것입니다.

『JFK』에서 케빈 코스트너의 억양이『로빈훗』,『꿈의 구장』,『늑대와 춤을』과 다 다른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어퓨 굿맨』에서의 잭 니콜슨의 액센트가『배트맨』의 액센트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걸 알 길이 없으니 관객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그저 이야기를 통해서 추론할 뿐입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아카데미상을 못 받는 이유는, 첫 번째, 그 연기보다는 그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액센트가 바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로버트 드니로의『좋은 친구들』과『미션』과『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디어 헌터』를 빌려서 보십시요. 완벽하게 다른 영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헐리우드에서 가장 잘 사용하는 배우는 메릴 스트립이라 합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 '좋은 영화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꼭 다시 한번 보십시오'. 자신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성숙했나를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정은임

책이랑 마찬가지일꺼예요.

정은임

예, 맞습니다. 좋은 소설, 좋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좋은 영화도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 '영화 평론가는 교과서가 아니라 참고서' 입니다. 한 영화에 대해서 평론가들은 서로 견해를 달리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히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좋은가 나쁜가를 가리는 것은 평론가가 해야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관객의 특권입니다. 평론은 정답을 제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영화감독들 중에 누가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가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냐가 정답인 것처럼 수많은 영화평론가 중에서 좋은, 자신이 좋아하는 평론가의 글을 그저 참고삼아서 읽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같은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빌리지 보이스」의 짐 호버만이나「롤링 스톤」의 피터 트레비스, 그리고「까이에 뒤 씨네마」의 세르쥬 다네 같은 사람의 글들은 정말 좋아합니다. 반면에「뉴욕 타임즈」에 쓰는 빈센트 캠비, NBC TV에 나오는 그 로저 에버트와 진시스 케이라는 뚱뚱이와 홀쭉이 콤비 평론가가 있습니다. 아주 이 사람들 글이라면 저는 딱 질색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견해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늘 제가 갖고 있는 좌우명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자끄 데리다라는 평론가가 한 얘기인데요, "글쓰기에는 시작이 없고 텍스트는 끝이 없다" 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영화는 아무리 창조적인 영화라도 이미 그 앞에 있는 영화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며 비평은 매시대 매세대에 따라 같은 영화를 다르게 읽게 만드는데 그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처럼 능력 없는 삼류 평론가가 위안으로 삼는 말이 있습니다. 폴드망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모든 비평의 역사는 잘못 읽기, 즉 오독의 역사였다" 는 얘길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평론가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그 유일한 문건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영화에서 유일하게 권위를 갖는 사람은 바로 여러분, 관객 자신' 입니다. 감독이 여러 가지 의미를 숨겨 놓고 복잡한 문화 현상을 다루며 가장 이상적인 정치적 함축성을 영화에 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관객이 못 읽어 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관객의 잘못이 아니라 감독의 잘못입니다.

채플린의 가장 위대한 점은 그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가난한 자들의 꿈을 담고 희망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영화평론가들은 아주 복잡하게 딥 포커스의 공간과 미디엄 쇼트의 영화적인 화면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다라고 격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 필요없이 그저 어떤 영화 관객들도 그것이 그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어떤 용어로 표현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누구나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이 그 자체로 역사를 지니게 되고 또 역사를 통해서 누적됨으로써 일정한 지식 없이는 읽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론가는 바로 그것을 읽는 일을 도와주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읽기를 통해 더 다양하고 더 풍요롭고 더 건전한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영화 감독들이 관객들에게 진정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정은임

예, 오늘 정성일씨한테 규화보전 하나 얻은 것 같애요.

정은임

네, 그래서 나오는 얘긴데 문제는 이 내공을 쌓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겁니다.

정은임

예, 그럴 것 같네요. 많은 수련을 거쳐야 될 것 같습니다. 자, 정성일씨 고맙습니다.

정은임

감사합니다.

정은임

안녕히 가세요.

음악 : 휘트니 휴스턴의 [ I have Nothing ] (잠깐의 사연 소개 뒤에....)

정은임

자, 조금 전에 영화계의 고수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가 비법 10가지 정리해 주셨죠.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법. 간략하게 정리해 드릴까요.

  1.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기.
  2. 자막을 끝까지 읽기.
  3. 한 감독의 뒷 영화를 보고 앞 영화를 다시 생각하기.
  4. 영화에서 카메라를 발견하기.
  5. 영화에 숨어 있는 감독의 뜻을 집어내기.
  6. 명장면을 한 컷 한 컷 뜯어서 분석해볼 것.
  7. 번역은 믿지 말 것. 여러분이 되도록 될 수 있으면 한 번 듣는 습관을 가져 볼 것.
  8. 좋은 영화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번 볼 것.
  9. 평론가는 참고서라고 생각할 것.
  10. 영화는 그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바로 관객,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입니다.

자, 유익한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