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의 FM영화음악』 2004.01.07.본인인터뷰|시론

FM 씨네마떼끄 정성일편 - 씨네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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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FM 씨네마떼끄. FM 영화음악, 언젠가 '내 일기장 속 영화' 에서 어느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죠? 이 분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마치 간첩이 되어 암호문을 해독하는 것 같은 그런 비장함과 그런 심각함과 그리고 남모를 어떤 정서를 가지고 늘 방송을 들었다구요. 자, 다시 수첩들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리고 볼륨을 높이셨나요? 예. FM 씨네마떼끄, 이 달부터 한 달 동안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정성일

안녕하세요. 정성일입니다.

정은임

반갑습니다. 뭐,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애요. 많은 청취자분들이 기다리셨거든요.

정성일

어, 지금 저는 가슴이 미어져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될지 모르는 정말 벅찬 감격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정말로 만일 불러주시지 않으셨으면 저는 매우 오랜 시간동안 삐졌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정은임

사실 제가 정성일씨께서 많은 라디오방송이나 다른 방송에서 불렀는데 다 방송을 하지 않겠다고 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자리에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청취자 여러분들이 굉장히 많이 기다렸어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일단 목소리라도 듣게 되니 너무 반갑다 라고 하셨어요. 인사말 좀 해주세요, 다시 한번.

정성일

8년만에 돌아와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야기를 건네는 중입니다. 새벽 3시이긴 하지만 만일 제 말이 들리시면 속으로가 아니라 정말 여러분들의 작은 입술로, 작은 목소리로, '네 들립니다' 라고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정말 힘이 날 겁니다. 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오면서 가장 커다란 변화라면, 그러니까 정은임씨와 그리고 여러분들을 만나면서 우리들은 20세기에 헤어져서 21세기에 다시 만난 겁니다.

정은임

너무 감개무량하게 말씀을 해주셨어요. 자, 과연 21세기에 마치 이제 SF영화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21세기에 만나서 과연 정성일씨께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오늘 시간이 굉장히 기대가 되는데요. 어떤 말씀 준비해오셨나요?

정성일

오늘 제가 첫번째 준비한 이야기는 '씨네필 문화'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정은임의 영화음악실' 그러니까 줄여서 약칭 '정영음' 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응원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소 자랑삼아 이야기하자면 저 밖에 없을 겁니다. 저는 이 방송에 오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8년전의 정영음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은임씨가 돌아오기를, 그리고 정은임씨가 영화음악실을 다시 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해방구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방구라니. 저는 그것을 무엇으로부터의, 그리고 무엇을 향해서 해방구란 말인가, 그 대답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정영음은 제 생각에 두 가지 점에서 그 이전의 모든 영화음악 프로그램과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정은임씨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잘 모르겠지만, 그 하나는 정영음은 분명 정치적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영화적이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영음은 일종의 컬트 방송이었고, 이 말이 편집되지 않기를 저는 진심으로 바라는데, 방송국에서는 게토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해방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시간을 버텼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투를 빌려 말하자면 정영음은 그러니까 1992년 제 시간에 도착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바꿔보겠습니다. 편지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저는 라캉의 그 목적론을 믿어 의심치 않는 편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도착하는 곳이 목적지이기 때문에 던져진 편지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80년대 정치의 계절이 끝나고 90년대 문화의 백가쟁명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영음은 바로 그 시간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화의 백가쟁명이 시작되었었을 때, 그 어떤 다른 문화도 90년대를 껴안지 못했습니다. 문학도, 음악도, 더더군다나 회화나 연극, 무용은 정말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직 영화만이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하기 때문에 제가 드리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80년대 내내 지상에서 화염병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을 때, 지하에서 자생적 씨네필들이 성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씨네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쳤고, 그리고 그 속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말은 그들이 자생적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고생창연한 옛 선현의 말씀, 그러니까 '토대의 변화가 상부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는 말을 정말 믿는 사람입니다. 80년대는 사실상 여전히, 약간 말을 패러디하자면 '만인의 각자의 방에서 만인의 씨네마떼끄' 가 생산되고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이러한 상황은 정말 존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비디오의 등장이였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의 등장은 80년대, 그 거리에 나가기를 꺼리던 백조, 백수들의 천년왕국의 도래를 선언하는 것에 다름아니었었습니다. 이 새로운 기계, 그러니까 처음에 이 비디오라는 것이 신혼살림 기구에 쫓아가는, 항상 거기에 포함되었었던 그 품목을 넘어서서, 저는 여전히 이런 표현을 씁니다만 '아직 통일이 되지 않았으니' 이 남한 땅에 가져온 문화에서의 이 비디오는 그저 씨네필들의 도래를 예언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면이었다면 부정적인 면은 항상 공존하는 법인 것 같습니다. 즉, 비디오의 도래는 이 땅에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것, 그러니까 지구화라고 부를 수 있는, 세계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첨병으로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비디오를 통해서 문화의, 그 지구상의 문화들이 갑자기 그 어떤 통제할 수 없는 방법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은 저주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은 문화의 제국이 성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주의하셔야 될 것은, 저는 제국주의라는 말 대신에 문화의 제국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 비디오는 이 땅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허트가 얘기했던 바로 그 의미에서의 제국을 심는데 일조한 셈입니다.

정은임

네. 여전하십니다. 제가 끼여들 여지가 없습니다. 언젠가 사실 예전에 방송을 시작했을 때 장문의 항의편지를 받았었거든요. 그 때 말씀을 드렸었죠? MBC 인줄 알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더니 교육방송이더라, 처음에는 그런 항의를 받았으나 점점 정성일씨 특유의 방송에 빠져들고 말았는데, 똑같은 것은 제가 끼여들 여지를 안주시네요. 자, 오늘 정성일씨와 함께하는 FM 씨네마떼끄, 바로 씨네필 문화, 그 80년대의 자생적으로 지하에서 시작된 씨네필 문화가, 그 씨네필들이 어떤 변화를 거쳐서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21세기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를 주욱 아마 밟아올 것 같은데요, 잠시 쉬어가면서 음악을 듣고, 자 그 씨네필의 변화, 그 얘기들을 들어볼까요?

"Hooked on a feeling" perfomed by Blue Swede

정은임

안인경씨 듣고 계세요? 적당한 긴장감, 지금 느끼고 계세요? 정성일 아저씨의 말투, 적당한 긴장감, 그 어투가 기다려진다고 하셨었죠? 하면서 신청하신 곡, 바로「저수지의 개들」중에서 "Hooked on a feeling" 들려드렸는데요.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야말로 90년대 그 때 영화광들에게 가장 신봉받던 그런 감독이 아닌가 싶구요, 그리고 바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또 우리에게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죠. 그의 진가에 대해서요. 자, FM 영화음악 씨네마떼끄,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씨네필의 문화, 이 시대 씨네필의 문화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일단 80년대로, 그리고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는데요. 자, 이야기를 계속해볼까요?

정성일

아마 8년전에 정영음을 들으셨던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견해를 하나 수정하겠습니다. 8년전에 이 자리에서 저는 타란티노가 큰 감독이 되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랬었어요?) 예.「펄프 픽션」이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를 받은 것을 보고 비분강개한 나머지 '절대 그래서는 안되며 당연히 그 해 상은 키에슬롭스키나 키아로스타미가 받아야 됐었다' 라고 얘기했었는데「재키 브라운」을 보면서 제 견해를 수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때 정영음은 방송되지 않고 있었었고, 이제「킬빌」로 돌아온 타란티노는 하토리 한조의 칼로 저를 찌르며 '니가 틀렸지?' 라고 얘기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제 견해를 수정할 용의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90년대에 막 도착했던 그 영화애호가들에게, 씨네필들에게 타란티노는 복음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자생적 씨네필들은 그러나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바로 그 시기에 아마도 정치담론의 그 거대한 폭력 앞에서 지하에 숨죽이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담론들이 90년대에 갑자기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면서 돌연한 진공상태라는 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정영음은 제 생각에 이 순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주는 메세지, 이 순간에 바로 도착했다는 것, 그래서 이 자생적 씨네필들이 정영음을 통해서 그 어떤 해방구를 느꼈다는 그 메세지는, 저는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억압된 것의 귀환' 입니다. 그러니까 그 의미의 지평을 생각해보는 것이 돌아온 정영음의, 지금 2004년 정영음의 임무이자 이 방송을 그토록 열렬히 응원하고 기다렸던 열혈청취자 소년소녀 여러분들의 자문자답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씨네필이라는 말은 매우 오래된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맨 처음 시작되었었을 때, 영화의 최초의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루이 델릭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로 '씨네필'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러니까 좀 더 정확하게는 영화의 친구라는 말이 좀 적절한 표현일텐데, 사실 필리아(-philia), 그러니까 씨네필에 붙어있는 필(-phile)의 필리아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애호증'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영음이 껴안은 씨네필은 물론 열 명이면 열 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해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8년전에 정영음에서는 씨네필들에게 즉, 이들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주고 베풀어주고, 씨네필들도 이 정영음을 향해서 그들의 사랑을 바쳤으나 저는 그 사랑하는 태도에 어떤 자의식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여러분들의 부족함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남한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러니까 그 씨네필들에게 자의식의 태도가 있을 수 있는 영화문화의 환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날 씨네필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부채의식으로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임

자의식 없는 씨네필이라고 말씀하셨죠?

정성일

네.

정은임

자의식 없는 씨네필이라. (네) 좀 더 설명해 주세요.

정성일

남한의 그 자생적 씨네필의 가장 커다란 비극은 씨네필 문화에서 영화의 모더니즘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물론 이들이 모던 영화들을, 그러니까 누벨바그 영화들이나 펠리니, 베르히만, 브레송, 부뉴엘 또는 그 이후에 계속이어지는 장 마리 슈트라우프나 다니엘 유이레의 영화들 혹은 베르톨루치의 상업영화들, 이런 모던 영화들을 뒤늦게 보기는 했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 씨네필들이 그것을 동시대적 경험을 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영화가 고전주의와 결별하고 모던한 영화의 시대로 들어설 때, 그래서 영화가 고전주의 시대에 19세기 예술의 전통을 그대로 껴안고 오페라나 아니면 펄프 소설들이나 또는 보드빌 연극이나 만화나 인상주의 그림들이나 혹은 인상주의 음악들, 그 전통을 고스란히 껴안고 영화를 만들었던 그 시대의 고전주의, 그것에 대해서 영화는 끊임없는 무게를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가 아닌 것을 통해서만 영화를 이야기해야 됐었습니다. 그러나 모던 영화의 도착은, 질문했습니다. 영화에 대해서 영화의 자의식을 갖고 그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유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모던 영화의 도착과 함께 카메라가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들은 그 경험을 미처 갖지 못했습니다. 그걸 그냥 건너뛰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그 순간, 그러니까 영화의 모던함이 도착했었던 바로 그 순간, 남한의 근대사는 박정희를 맞이한 겁니다.

그 이후 좀 더 정확하게 1961년부터 광주를 거쳐 노태우의 올림픽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은 냉전이데올로기 속에 살아왔습니다. 물론 90년대가 저는 한국이, 남한이, 남북한이 냉전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토록 철저한 무게 속에 그 80년대까지 고스란히 살았었을 때 매우 유감스럽게도 씨네필들은 영화 그 자체를 성찰할 수 있는 동시대적 경험을 획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뒤늦게 도착한 것, 밀처져 도착한 것, 그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이 90년대의 자생적 씨네필 세대에게는, 자 이런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도착증의 증세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 기이한 합병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이 새로운 자생적 씨네필들은 세가지 증세 중에 하나를 하여튼 껴안아야 됐었습니다. 그 첫번째는 허기진 탐식증에 시달리는 씨네필입니다. 무조건 봐야겠다라고 닥치는대로 보고, 그 보다못한 것을 답답해한 나머지 빌려온 비디오를 데크에 걸고서는 패스트 포워드로 보고 그리고 편수 메꾸기에 시달리는, 그러면서 과거 영화들을 허기지게 뒤져나가는, 그 네크로필리아적인 시체애호증의 증세가 그 첫번째일 것입니다.

두번째 증세는 뒤죽박죽의 타임머신을 탄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체계없이 닥치는 대로 보는 겁니다. 그렇게 영화를 봄으로써 영화와 영화 사이에 놓여있는 상호영향관계라던가 인과관계나 또는 그 역사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하고 그것을 그냥 뒤죽박죽으로 마치 타임머신에 실려 이 시대와 저 시대를 건너뛰듯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영화담론은, 영화에 관한 지식은 거의 미친 상태가 되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비유법으로서가 아니라 아주 엄격하게 정신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이 자생적 씨네필이 앓고 있는 정신병은, 그러니까 그 영화를 쳐다볼 수 있는 타자의 자리도 없고, 내가 그 영화를 보고 있다고 나 자신의 자아를 성숙하게 느낄 수 있는 그 주체의 자리도 없는, 그러니까 오직 타자를 대신하는 가짜 타자, 소문자 타자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을 거기 세워놓고, 그것을 우상숭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거기에 호소하는 영화적 에고 사이에서 애매하게 버팀목을 설정하고 영화를 보는, 그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세번째 자생적 씨네필시대 세대들이 앓고 있는 병은, 사실 이게 가장 끔찍한 피해입니다. 컬트 증후군입니다. 성찰도 없고, 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이 영화를 다 보자니 자신도 없고. 백년의 영화를 다 보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댑니다. 그러다보니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기이한 영화만 골라서 찾아보면서 그걸 갖고 뽐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에는 상대에 대해서, 영화에 대해서 사랑하기는 커녕 영화를 상대로 환상적 새디스트가 되는 겁니다. 즉 자기 자신을 초자아의 자리에 갖다놓고, 영화가 아니라 자기를 초자아의 자리에 갖다놓고, 입법의 자리에 갖다놓고 그리고 자기가 법을 집행하고 싶어하는, 자기 멋대로 영화사를 쓰고 싶어하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영화에 대해서 사랑하고 있다라는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런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를테면 씨네마떼끄에서 고전영화를 할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존 포드의 위대한 영화들이나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이나 박스오피스의 영화나 히치콕의 영화를 할 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오시마 나기사나 파졸리니의 정말 보기 힘든「살로」같은 영화들을 할 때에는 미어터지게 몰려드는 이 기괴한 상황이야말로 저는 자생적 씨네필들의 비극이자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은임

90년대 한국사회에 자생적으로 태어난 그 씨네필들, 그러니까 영화 탐식증이라고 할까요? 아무 영화나 편수채우기로 닥치는 대로 보는 것, 그리고 타임머신을 탄 듯 뒤죽박죽 영화의 컨텍스트는 생각하지도 않고 보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좀 전에 말씀했었던 컬트증후군에 가까운 기이한 영화보기로만 몰려가는 정신병적인 어떤 경향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정말 맞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영화의 모더니즘을 경험하지 못해서 그래서 영화의 역사에 있어서의 한 시대를 그냥 건너뛰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한국 사회에 그 특수한 근대사가, 현대사가 만들어낸 그런 귀결인지, 아니면 그 밖에 어떤 다른 원인이 있는지 문득 우리나라의 이 씨네필이 왜 이러한 모습이었을까 라는 것에 대한 좀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정성일

다소 경박스럽게 표현하자면, 저는 역사는 반드시 게임 값을 치루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하의 식민지역사, 1950년에 우리가 경험했었던 그 한국전쟁, 1961년 군사쿠데타로 시작해서 30년을 냉전이데올로기에 몰아넣었던 그 억압, 이 모든 것들이 지난 백년 동안 한국의 역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게임 값을 고스란히 치루는 것입니다.

정은임

영화에서두요.

정성일

저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얘기해드렸었던 자생적 씨네필이 던지는 메세지는 단 하나라는 것, 그것이 '억압된 것의 귀환' 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귀환' 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정말 슬프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징후들이 나타날 때 정영음은, 그러니까 바로 이러한 징후들과 싸워야 될 바로 그 순간에 중단되었다는 겁니다. 즉 싸워야되는 바로 그 전선이 세워지는 순간 씨네필 문화에서 우리들은 매우 비극적으로 정영음의 마지막 방송을 들어야 됐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것입니다.

정은임

참. 뭐랄까요. 제가 여기서 드릴 말씀이 없는데, 음악이 일단 쉼표를 찍겠습니다.「베로니카의 이중생활」중에서 음악을 한 곡 들어볼까요. 이성민씨가 신청하신 곡이거든요. Zbigniew Preisner의 영화음악 "puppets" 입니다.

"The puppets" composed by Zbigniew Preisner

정은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중에서 "puppets" Zbigniew Preisner 의 음악이었습니다. FM 영화음악 씨네마떼끄, 오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씨네필의 문화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고 계신데 중간에 계속 그 FM 영화음악 말씀을 하시는걸 보니까 마음이 조금 불안합니다. 계속 언급되는 걸 보니 언젠가는 그 화살이 제게로 날아올 것만 같거든요? 여하튼 말씀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정성일

그래서 저는 질문해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씨네필은 누구인가? 모두가 지금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영화를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특권이 되는 것은 정말 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씨네필은 하지만 결국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씨네필과 노동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건 국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씨네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는 좋은 영화를 보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씨네마떼끄에서, 서울씨네마떼끄에서 저는 허심탄회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이 씨네마떼끄에 찾아오는 정말 관객은 몇 명입니까. 서울씨네마떼끄의 담장자가 저에게 얘기하기를 520명이랍니다.

정은임

520명이요.

정성일

인구 2천만명이 살고 있다는 서울, 경기 지역에서 씨네마떼끄를 찾아오는 사람이 520명입니다. 허 샤오시엔의「밀레니엄 맘보」가 개봉하였습니다. 저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영화를 보기 위해서 갔습니다. 토요일 날 개봉한 영화가 월요일 날, 첫 회에 단 한 명의 관객도 들지 않은 채 영화관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요일 날 오후에 프로가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서울의 영화문화의 현주소입니다. 반면에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서 고작 4700만 인구인 나라에서「친구」라는 영화 한 편을 820만 명이 봅니다. 그건 여섯 명 중에 한 사람이 봤다는 얘깁니다. 목욕탕에서 여섯 명을 만나면 '「친구」본 사람?' 그러면 누군가 손 든단 뜻입니다.「반지의 제왕」을 지금 420만명이 보고,「실미도」를 380만명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씨네필의 지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생각은 매우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 편의 영화를 몰려가서 보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뒤집으면 실제로 영화 선택의 폭이 거의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해 흥행 1위라는 말과 그 영화가 수십번 다시 보아도 또 볼 만한 영화라는 말은 서로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 씨네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 열정은 제 생각하기에, 그 열정은 잘못 유혹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씨네필들은 이상하게도 중심의 영화담론에 참여하는 것이 씨네필의 조건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도착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사이비 영화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영화산업과 영화저널이 서로 주고 받은, 서로가 서로를 끌어들이는 협잡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입니다. 즉 씨네필이라면 지금 정말 미쳐버리게 만드는 것은「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이나「실미도」가 아니라 정말 당신이 씨네필이라면 당신이 미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바다 건너 NHK BS2 프로그램에서 지금 거의 매일 공중파를 타고 날라들어오는 오즈 야스지로의 백주년 기념 전작 방영입니다. 만일 이 목록은 정말로 당신이 보기만 한다면, 씨네필이라면 두근거리는 심장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동경현대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당신이 서울에 있건 뉴욕에 있건 빠리에 있건 베를린에 있건 볼 수 없었던 영화 목록의 연속입니다. 오늘 밤에도 방영되고 있습니다. 정말 저는 위대한 오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오즈 영화 한 편과 맞바꿀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는 오직 존 포드의 영화 한 편 뿐입니다. 이건 제 말이 아니라 벤더스의 말입니다. 혹은 동경대 총장이였었던 그리고 불문학자로 잘 알려진, 여러분들께서 아마도 일부 팬클럽이 있으실 그레따니 고신과 한 번 맞겨룬 적이 있었던 하스미 시게히코는 아주 유명한 영화광이기도 합니다. 그 하스미 시게히코가 한 말 중에서 이 사람 정말 씨네필인 것을 새삼 마음 속에 느끼게 만든 순간은, 시게히코가 말합니다. 영화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사건 중에 하나는 2차세계대전 도중 왜 오즈가 헐리우드로 망명가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일본인인 하스미 시게히코 그렇게 말합니다. '프릿츠 랑이 무르나우가 망명가서 위대한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오즈가 그렇게만 했다면 우리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또 하나의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 이것이 씨네필의 마음이고 씨네필의 정신인 것입니다.

씨네필들과 대화하면서 제가 항상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영화를 잘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이것이 진짜냐 가짜냐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온갖 영화이론, 온갖 문화이론, 온갖 철학적 개념은 그 다음 문젭니다. 페미니즘이 됐건, 포스트식민주의가 됐건, 트랜스내셔널리즘이 됐건,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대한 분석이 됐건, 무엇이 되었건 그건 영화를 잘 본 다음에 해야될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지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영화 저널리스트 중에 한 명이 영화 자기 홈페이지에 '좋은 영화 글을 쓰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되나요' 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기를, '영화는 왠만해서 보이기 시작할 터이니 중요한 것은 그걸 잘 풀어낼 수 있는 교양을 쌓는 것' 이라고 대답하는 순간 전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안보이는데. 영화 7천편을 봐도 잘 안보이는데 무슨 재간으로 '대충 보면 다 잘 보이는 것이니 교양만 쌓으면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이라는 그 말을 어떻게 감히 할 수 있는지. 프랑스의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들뢰즈가 두 권의 영화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철학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정말 제게 신뢰를 주는 것은 철학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 철학자가, 들뢰즈가 정말 영화를 잘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은임

질문을 하죠. 영화를 잘 본다는 게 어떤 의미죠?

정성일

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그것을 듣고,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깨우쳐 거기에 대해서 소통하는 것입니다. 제일 중요한 말은 마지막 말, 소통에 있습니다.

정은임

소통이요? 가끔 영화감독들도 자신의 영화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법으로 여러가지 통로로 해석되는 것을 보고 그럴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 것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이 혼동이 되길, 과연 그럼 내 멋대로 영화를 봐도 된다는 말인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영화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혼동이 되거든요.

정성일

폴드망의 말을 여전히 저는 인용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모든 문학비평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였다' 는 그 말을여전히 저는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 이글튼이 말했습니다. 이글튼이 말하기를, 자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든 문학작품을 다 때려부시고 다 쓸모없는 것이며 위대한 작품이란 필립 K 딕의 SF 소설같은 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반문하고 싶어진다' 고 이글튼은 얘기합니다. 자, 모든 문학의 역사를 무효로 만들고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었을 때에도 결국 도스또옙스키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아내는 것입니다. 모든 음악을 무효화시키고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얘기해도 결국 위대한 것은 모짜르트나 베토벤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지성의 비극 중의 하나는 제가 존경했었던 이 문필가들이 정작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갑자기 바보 같아진다는 겁니다. 거기 동원된 철학적 개념은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정작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젼혀 보지 못하는 순간 그건, 그 글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온갖 개념과 이름들이 허우적거린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생각하기에 수많은 한국영화들은 정말 엉터립니다. 대부분 쇼트와 쇼트가 붙지도 않고 시선은 엉뚱한 데를 보고 있고 씬과 씬은 연결이 안되는데도 그냥 이어놓고 있습니다. 배우들은 더 가관인데 소리만 지르고 표정만 쓰고 있으면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텔리비전이 한국에, 이 땅에 영화관객들을 훈련시킨 결과입니다.

씨네필들은 여기에서 관심을 돌려야 됩니다. 혹은 관심을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 씨네필들은 무슨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라더라 이따위 정보는 정말 잊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발견입니다. 이것이 첫번째입니다.

두번째는 교양을 쌓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영화와 교양을 잡종교배시키지 마십시오. 그 대신 영화에 눈돌리고 영화에 귀기울여서 그 영화가 하고 있는 말을 깨닫기 바랍니다. 씨네필의 대화는 거기서 시작해야 됩니다. 테제로 말하는 걸 허락하신다면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경쟁하지 마라, 대신 소통하라.' 저는 이렇게 하소연하고 싶습니다.

세번째는, 세번째 저의 전언은 '영화의 저 미쳐버린 듯한 소비의 속도에 저항하라' 고 말하고 싶습니다.「반지의 제왕」이 성공을 하거나 말거나「실미도」에 손님이 들거나 말거나 그건 씨네필의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비의 속도를 늦추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 장사꾼들을 미치게 만들거나 또는 팔기 위해서, 영화를 팔기 위해서 저 미쳐날뛰는, 그래서 여러분들을 티켓 한 장으로 생각하는 저 악질적인 유혹과 맞서싸우십시오.

정영음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함께 손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새벽 3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듣고 있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정은임

네. 자 결국은 오늘 정성일씨의 말씀은 저희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제작진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하시는 얘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꼈는데요. 음, 씨네필. 자 정성일씨와 함께 이 시대 씨네필들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길 했는데 이야길 했다기보다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씨네필들의 문화라기보다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될지에 대한 테제를 말씀해주셨어요. 굉장히 투쟁적이 되는데요. 이 투쟁적인 기분이 오래간만에 들어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근데 마지막으로 아주아주 보통 청취자의 목소리를 빌려서 한가지만 질문을 드릴께요. 왜 씨네필이 중요한가요? 왜 씨네필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나요?

정성일

오직 그들만이 이 소비에 미쳐버린 영화 산업 속에서 영화가 예술임을 믿고있는 유일한 방부제이기 때문입니다.

정은임

네. 유일한 방부제. 씨네필. 근데 현재 씨네필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방부제가 아니거든요. 진정한 방부제가 되길 바라구요, 정성일씨께서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셔서, 우리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뭐가 뭔지 모르는 이 영화담론 한가운데에서 좀 다른 이야기, 정신 좀 버쩍드는 이야기 좀 계속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있다면.

정성일

『말』지 이번호에 정은임씨의 인터뷰가 실려있습니다. 아마 열혈 청취자분들께서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기에 제가 드디어 간택되었다는 기사가 실리자마자 제 이메일 앞으로 정말 80통이 넘는 신청곡이 왔었습니다. (그래요?) 그 중에 한 분을 제가 선택을 했습니다. 그 분의 사연이 제 심금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말씀인 즉슨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사랑에 실패하고 매우 괴로워 했답니다. 그 소녀의 이름이 '세영이' 라고도 하고 '화강암과무지개' 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소녀를 우연히, 하지만 제 시간에 만났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두사람은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8년 전 같은 시간에 잠들지 못하면서 같은 방송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운명이라는 모티브, 그러니까 그들이 긴 시간동안 그 사이에 개입하고 나섰던 시행착오가 결국 여기 이렇게 도착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 저는 이것을 이 두 분 뿐만 아니라 정영음을 8년동안 기다렸던 여러분들과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정영음의 두번째 도착의 의미는 이제 저는 분명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영음은 부채를 갚아야 됩니다. 정은임씨와 임재윤PD께서 정말 부채를 갚아야 됩니다. 그것만이 두 분을 기다렸던 이 정영음을 기다린 씨네필들의 기다림에 대한 부채를 갚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항상 편지는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하는 법입니다. 정말 여러분들과 행복하게 함께 있고 싶습니다. 신청곡은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입니다.

정은임

자. "해피 투게더" 들으면서 정성일씨와의 첫번째 시간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성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