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임의 FM영화음악』 2004.01.21.본인인터뷰|시론

FM 씨네마떼끄 정성일편 - 아시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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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네. FM 씨네마떼끄, 영화평론가 정성일씨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성일

안녕하세요.

정은임

감기 걸리셨어요.

정성일

네.

정은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가지고요. 괜찮으세요?

정성일

청취자분들께 이런 목소리로 만나게 된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은임

제가 좀 전에요, 그래도 오늘은 말많은, 제가 말많다고 청취자 한 분으로부터 질타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들을 말이 많은 그런 순서니깐 기대하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자, 오늘은 어떤 이야기들...

정성일

지난 8년동안의 저의 가장 커다란 관심은 '아시아 영화' 였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제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서구 영화에 관심을 가졌었고, 그 서구 영화의 역사를 뒤져나가던 중, 무언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였고 그리고 그 다음, 그러니까 서른이 넘은 다음부터, 그리고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에 나오는 그 순간부터 제 관심은 아시아 영화쪽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8년동안의 저의 노력은 이 아시아의 동세대 감독들을 직접 만나는 것에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의 영화를 한편으로는 쫓아가면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과 만나서 이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생각을 배우고 그 생각을 통해서 거꾸로 한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과정의 반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아시아 영화를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시아의 낯선 감독들 또는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잘 알지 못하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그런 의미의 시간이 아니라 이 아시아 영화들을 통해서 한국영화는 어떻게 좌표를 설정할 것인가 그리고 한국 영화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인가, 그것이 그 질문을 통해서 어떻게 한국 영화를 동세대의 아시아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영화라는 그 영화의 커뮤니티 속에서 우정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해야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이제 씨네필의 이야기를 거쳐 그리고 현단계의 영화에 대한 우리들의 질문을 거쳐서 이제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그 과정에 있는 시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물론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에 이어서 다음 시간에는 바로 한국 영화, 우리들에 대한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정은임

그런데 서구 영화를 보시면서 무언가 빈 부분을 발견을 해서 아시아 영화로 눈을 돌리셨다고 했잖아요. 아시아 영화들을 주욱 찾아 보시면서 그 빈 부분을 채우셨나요? 무엇이 비었으며...

정성일

그 질문은 사실은 우리에게도 돌아오는 것이였었는데 한국 영화를 보면서 항상 불안한 부분, 우리들을 근심하게 만드는 부분은 영화의 역사 속에서 즉, 제가 맨 처음에 드렸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근대화의 시간이 갖고 있었던 어떤 기형적 체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서구의 영화들이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이 차곡차곡 쫓아간 것을 아시아의 영화들은, 한국의 영화들은 그야말로 그것을 점핑하듯이 뛰어들어감으로서 그 긴 시간을 하여튼 메꿔야된다라는 그 기형적 체험이 있는 것, 그 안에서 저는 아시아의 영화들이 함께 우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동시에 함께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들은 서로 서 있는 그 토대가 다르기 때문에 남한의 영화가 겪는 그 고통의 시간이, 홍콩의 그 유령의 시간과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박정희의 시간이 고스란히 장개석의 시간과 겹치기는 하지만 그래서 장개석의 그 독재의 시간이 박정희의 독재의 시간과 겹치기는 하지만 그러나 대만의 고통이 남한의 고통과 고스란히 겹칠 수는 없었습니다. 혹은 60년대 전공투의 시간을 지나면서 70년대의 좌절 그리고 80년대의 그 분산, 어떤 그 영화적인 시대의 동시대성을 찾지 못함으로서 완전히 길잃어버린 그 일본 영화의 고통이 또한 우리들과 동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회주의 중국이 관료적 사회주의로부터 새로운 자본주의를 맞이하는 그 고통의 시간이 남한의 시간과 겹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을 함께 아우르는 것은 서구라는 거대한 시간의 그 전진 앞에서 근대화를 고통스럽게 떠안아야만하는 그 고통에 대한 공유였었습니다. 저는 그 경험의 공유 속에서 아시아의 친구들, 아시아의 형들로부터 영화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었고, 그리고 사실은 한편으로는 저는 아시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 사람들과 만나면서 새롭게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말 말뿐으로서가 아니라 이 사람들의 영화를 보면서 이 사람들의 영화를 통해서 제 사고가 비로소 피와 살을 얻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영화를 사랑하시는 여러분들, 영화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유폐되시거나 여러분들이, 벤더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여러분들의 영화적 경험이 식민지의 영토가 되어서는 안된다' 는 것입니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저는 여러분들이 역설적으로 아시아의 친구들과, 아시아 영화들과 어떻게 함께 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임

어떻게 들으면 이 시간의 그 정성일씨의 아시아 영화 현대를 만나면서 아픈 역사의 경험들을 우리가 딛고 일어서서 어떤 자긍심까지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될 것도 같은데, 그러면 한번 따라가보죠.

정성일

제 생각에 아시아의 영화에 있어서 가장 큰 형은, 제 생각에는 허 샤오시엔인 것 같습니다. 허 샤오시엔의 영화를 제가 맨 처음 본 것은 1989년 12월 둘째주 화요일 오후 4시 프랑스 낭뜨 영화제에서 였었습니다. 저는 「비정성시」를 처음 보면서, 그러니까 그 이전까지는 이 감독에 대해서 그저 기사만 읽고 '음, 대만에 새 감독이 나왔군' 정도였었지만, 이 「비정성시」를 보면서 정말 영화가 너무나 훌륭해서 저는 그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였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가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에 정말 걱정됐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에 이 감독의 나이를 보았더니 고작 마흔두살이였었습니다. 그렇다면 마흔두살에 생애 최고의 걸작을 찍은 이 감독은 도대체 앞으로 어쩔려고 이러시나 라고 정말 걱정이 될 정도였었습니다.

「비정성시」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프로의 많은 분들이, 정영음의 많은 청취자분들이 이 영화를 이미 보셨겠지만, 역사와 개인의 만남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이 영화는 전혀 새롭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라는 그림자, 그 역사의 주어진 상황 안에서 가족이 어떻게 부서져 가는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이것이 새로운 것은, 물론 이러한 주제를 다룬 영화들은 영화사에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나 허 샤오시엔이 새로웠었던 까닭은 그것을 허 샤오시엔은 집을 중심에다 놓고 사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 샤오시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 샤오시엔 영화를 볼때 여러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은 창문입니다. 허 샤오시엔은 영화를 찍을 때에 언제나 창문을 열어놓고 그리고 창문의 너머에 보이는 저 세상과 창문 안에 있는 이 집의 세상을 그려나가면서 언제나 집 안에 있는 그 카메라가 집 안을 바라볼 때 그 조명은 언제나 세상의 빛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바깥의 빛이 이 집에 미치고 있는 그 힘의 영향관계 안에서 영화를 찍기 때문에 그 집은 언제나 어둑어둑하고 그리고 형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속에서 허 샤오시엔은 생각합니다. 허 샤오시엔 생각에 집은 하나의 우주적 질서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거기 가족이 있기 떄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허 샤오시엔은 결국 집과 세상을 찍는다는 것은 우주와 세상의 대결인 겁니다. 그리고 이 우주는, 가족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그 손자로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습니다. 마치 원처럼 순환하고 있지만 세상은 어느 한 방향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순환하고 있는 우주와 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세상은 서로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부딪힘 속에서 세상은 언제나 우주를 통역적으로 부서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허 샤오시엔은 롱 테이크와 쇼트의 반복으로 찍어내고 있습니다.

허 샤오시엔 영화를 볼 때 가장 여러분들이 주의해서 보아야 될 것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장면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쇼트가 거듭 반복될 때, 그 반복 속에서, 그러니까 거듭 돌아오는 그 쇼트 속에서 같은 장소에로 계속 돌아오고 있는 그 쇼트에서 그 장소의 내용이 무엇이 변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비정성시」의 똑같은 처음 시작했던 그 장면이 영화 속에서 여덟번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반복될 때마다 우리들은 할아버지가, 형이, 동생이 또는 그 아내가, 사라지고, 맞아서 병신이 되고 그리고 불구자가 되고 이런 모든 어떤 변화들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같은 쇼트 속에서 반복될 때 왜, 그 쇼트는 평화롭게 반복될 수 없는가 라고 질문하는 허 샤오시엔의 그 세상에 대한 분노와 마주하게 됩니다. 허 샤오시엔의 그 쇼트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성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허 샤오시엔의 영화를 보는 것은 그 영화를 쫓아가는 것이 매우 힘들어집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의 영화에서 영화의 화면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왜. 영화의 쇼트가 다음 쇼트로 다시 돌아올 때 그 사이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떄문입니다.

그 「비정성시」를 보면서 저는 정말 새롭게 영화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 제 걱정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비정성시」 다음에 찍은 「희몽인생」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정말 영화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 이 영화 속에서 저는 어떤 매너리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허 샤오시엔의 영화를 보면서 결국 당신도 여기까지인가 라고 질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영화 「호남호녀」를 보았었을 때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가 망가져버렸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분명히 허 샤오시엔의 잘못이 아니라 허 샤오시엔의 의도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의 영화를 자기 스스로 부수고 있었습니다.

그 허 샤오시엔이 그리고 마침내 「남국재견」을 가지고 등장했었을 때 저는 정말 탄식하였습니다. 허 샤오시엔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영화는 그의 두번째 데뷔작이었던 겁니다. 그는 이 영화 안에서 자기의 새로운 위치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정성시」를 만들면서, 「희몽인생」을 만들면서, 「호남호녀」를 만들면서 허 샤오시엔은 줄기차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니까 중국에서 쫓겨내려와서 대만에서 그 독재정권하에 살았던 아버지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호남호녀」로 끝내고 「남국재견」으로 옮겨온 허 샤오시엔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이제 허 샤오시엔은 불현듯 자기가 질문했었던 그 아버지의 자리에 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그리곤 물어봅니다. 너희들은 이제 어떻게 할 참이니.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부터 「남국재견」으로부터 불현듯 허 샤오시엔은 자기의 아이들에 대한 근심을 갖고 얘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남국재견」에서 그가 10년 전에 찍었던 「펑쿠이에서 온 소년들」 에서 그려냈었던 그 향수, 그리움, 후회 이런 것들을 그 똑같은 이야기를 완전히 다르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남국재견」에서는 역설적으로 고향상실, 패배 그리고 자기 자리에 대한 질문이 있습니다. 즉, 이 영화의 첫 시작은 고향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렇게 가고싶어했던 고향의 첫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고향에 돌아와서 완전히 끝장나는 이야기로 이 영화는 처참히 마무리지어버립니다. 그 속에서 허 샤오시엔은 다음 세대에게 희망이 있는가 라고 질문하는 겁니다.

허 샤오시엔의 「남국재견」바로 다음 작품인 「해상화」가 놀라운 것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는 1시간 58분 동안 영화 전체의 쇼트가 스물 네 쇼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스물 네 개의 장면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상해에 있는 한 창녀촌에 있는 이야기를 영화는 찍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허 샤오시엔은 만들면서 끊임없이 단 한번도 이 영화에는 흔히 사창가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그런 난잡한 장면이 단 한 쇼트도 없습니다. 오직 손님들이 그 기생들과 앉아서 밥을 먹는 밥상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저 영화를 보면 무슨 얘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밥 먹는 장면을 아주 유심히 봐야합니다. 그 밥상에 누가 앉아있는지를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밥상에 맨 처음에는 온갖 고관대작들과 그리고 19세기 중국의 마지막 귀족들이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잡담을 늘어놓습니다. 새로 온 그 창기가 누구라 그랬지 부터 시작해서 그런 허접한 얘기들 뿐입니다. 영화는 스물 네 쇼트가 밥상에서 밥상으로 이어지는데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넘어갔을 때의 어떤 장면은 이틀에서 삼일 간격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저 장면으로 넘어갈 때에는 때로 6개월에서 7개월을 건너뜁니다. 그러면서 이 밥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바뀝니다. 그리고 영화의 스물 네번째 쇼트에서 끝날 때에는 이 영화 처음 장면에 나왔었던 귀족들과 고관대작들은 다 사라지고 장삿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19세기 중국에서 20세기 중국으로, 그래서 봉건제 사회가 끝나고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의 중국으로 넘어가는지 그리고 결국 이 중국이 어떻게 타락을 시작하고 있는지를 허 샤오시엔은 그 작은 상해의 창녀촌 집안 안에서 말 그대로 역사를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은임

「비정성시」의 그 집이, 이 「해상화」에서는 밥상이 되었네요. 자, 그 다음 영화는 아무래도 「밀레니엄 맘보」겠죠. 우리 음악을 듣고 허 샤오시엔 감독의 다음 영화 얘기를 계속 해볼까요. Lim Giong, 한문으로는 林强이네요. "A pure person" 들어봅니다.

"A pure person" written by Giong Lim

정은임

허 샤오시엔 감독의 「밀레니엄 맘보」중에서 림강, 임강의 "A pure person" 들어봤습니다. FM 씨네마떼끄 오늘은 '음산하게 뭔가 강요하는 듯 하면서 거기에 앞서 뭔가 말하고 싶어죽겠다는 말투' 라고 정훈씨가 말씀하셨죠? 예, 바로 그 분,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난 8년간 아시아 영화의 변화 상들 혹은 아시아 영화에서 발견한 것들을 말씀을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자, 그럼 「밀레니엄 맘보」이야길 하겠죠?

정성일

「밀레니엄 맘보」는 제 생각에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함께 영화가 나아가 볼 수 있는 그러니까 현재로서 영화가 나아가 볼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가 본 영화가 아닌가 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은임

어떤 의미에서 가장 멀리인가요.

정성일

이 영화가 놀라운 것은 미래의 시간에서,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회상하면서 영화가 시작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10년 후로부터 지금을 회상하면서 이 영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정말 이상한 것은 시간이 그야말로 어떤 난반사 구조처럼 이루어져 있어서 장면이, 이 장면이 앞일 수도 있고 뒤일 수도 있는 것을 그야말로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10년 동안 가장 이상한 시간구조를 가진 영화라면 제 생각에 두 편인데 하나는 왕가위의 「동사서독」이고, 이게 앞인지 뒤인지 알 수가 없는 그리고 또 한 편은 「밀레니엄 맘보」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타이페이와 일본의 유바리를 오가는 한 소녀, 비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시작하면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10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 때, 21세기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라는 그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는 이미 망가져버린 한 여자, 비키의 십대의 삶을 영화는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좀 전에 들으신 그 테크노 비트를 쫓아서 카메라는 달려가는 그 비키를 카메라는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 비키가 무언가 아쉽다는 듯이 거듭해서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타이페이, 유바리 두 군데에서 찍었지만 정말 신기한 것은 타이페이의 모든 장면들은 거리가 단 한 쇼트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타이페이에 있고 이 실내장면에서 문을 열고 바깥을 나가면 바로 일본 유바리인 겁니다. 그래서 두 장소를, 두 개의 공간을 그냥 하나의 장면처럼 허 샤오시엔은 아무 거리낌없이 연결했습니다. 마치 문열고 나가면 바로 유바리인 것처럼. 그래서 두 개의 공간 사이에 차이가 사라지고 그 속에서 허 샤오시엔은 새로운 영화적 영토를, 미래의 시간 그것을 아시아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말 그대로 확장시켜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비키에게 허 샤오시엔은 아버지의 자리에서 정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키는 이미 행복해지기 불가능해져버린 소녀입니다. 하지만 그 불가능을 허 샤오시엔은 영화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소녀에게 행복을 주고 그리고 새로운 천년이 희망이라는 것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잘못 시작한 것을 10년전으로 거꾸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밀레니엄 맘보」에 담겨있습니다.

이 허 샤오시엔을 저는 너무나 만나고 싶어서 여차저차한 사연으로 대만에 갔었을 때, 타이페이에 갔었을 때 정말 이 사람이 만나고 싶어서 허 샤오시엔 오피스에 연락에 연락을 거듭했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셨어요?) 허 샤오시엔은 사람을 잘 만나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를 만나러 간 것은 2월달의 아주 축축한 그 비가 음산하게 내리고 있었던 그 오후 저녁이 막 다가오는 시간이였었습니다. 허 샤오시엔 오피스는 매우 높은 언덕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거기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허 샤오시엔은 결코 친절한 답변자가 아닙니다. 그는 매우 짧게 답변하고 그리고 간략하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이런저런 질문을 했었지만 제가 그에게 들을 수 있었던 얘기는 대부분 제가 책에서 이미 확인했었던 얘기였었습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저는 그래서 무언가 이 사람에게 지혜를 훔쳐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자하는 심정으로 아주 단순무식과격하게 질문했습니다. 감독에게 절대 해서는 안되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영화감독에게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자 통역을 하던 친구는 눈을 뚱그렇게 뜨고 정말 이렇게 질문해도 되냐는 듯한 얼굴을 지었습니다. 저는 정말 듣고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질문을 하자 허 샤오시엔은 잠시 저를 보더니 잠깐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풍경을 지금도 정말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비가 내릴 준비를 하고 창문 저 멀리서 번쩍하고 번개가, 저 타이페이 산 저편에서 번쩍 쳤었을때 그것을 무심코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허 샤오시엔은 느리게 얼굴을 돌리더니 저에게 짧게 한마디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결국 영화란 세상에 대한 예의와 같은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들었었을 때 이렇게 위대한 예술가와 한 시대에 함께 살고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정은임

그 장면이요, 그 자리에서의 그 장면이 영화 같네요.

정성일

이 허 샤오시엔이 제게 큰 형과 같은 사람이라면 제게 한편으로는 친구이자 막내형 같은 사람들은 왕가위와 차이밍량 입니다. 왕가위가 점점 시간에 이끌리는 동안 차이밍량은 점점 공간에 더 이끌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지만 왕가위의 관심은 결국 시간 안에 살아가는 방식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간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려는 것이 왕가위의 테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주제는 시간이기 때문에 사실상 왕가위에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속도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왕가위로 하여금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영화에 있어서의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고정점을 포기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강조점을 찾아가는 것으로 왕가위의 관심이 매우 빠른 속도로 옮겨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왕가위는 시간 속에서 이미지를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 생각에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대부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 이미지가 아니라 제 생각엔 빛인 것 같습니다. (빛이요?) 그래서 그의 영화의 대부분은 카메라에서 그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명에서 나오는 것이며 촬영이 잘 된 것이 아니라 편집이 훌륭하다는 것이 제가 왕가위 영화를 수없이 다시 보면서 결국 내린 결론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표현이 허락된다면 왕가위는 영화에서 말하자면, 회화에서 인상주의가 해냈던 역할을 그는 영화에서 해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놓치고 있는 사실 중의 하나인데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타락천사」, 이 네 편의 영화는 모두 미완성이라는데 사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영화들은 다 찍다만 영화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또는 왕가위 자신은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왕가위의 생각으로 시간은 어차피 완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나 전체 시간을 놓고 그 중간 시간의 아무데나를 자르고 들어갑니다. 즉, 그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왕가위는 종종 시간을 나무에 비유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그 나무를 잘라내서 자른 면의 나이테를 보는 것이 영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사실상 주인공은 언제나 두 명 이상의 복수 이상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객관적으로 같은 시간에 서 있기는 하지만 그의 관심은 이 시간에 서 있는 이 사람의 시간과 이 시간에 서 있는 저 사람의 시간, 그러니까 지금 방송을 하고 있는 저의 시간과 정은임씨의 시간과 또 이 프로그램을 지금 듣고 계신, 정영음을 듣고 계신 청취자 당신의 시간이 우리가 이 시간에 우연히 만났지만 이 우연히 만난 이 시간의 매듭이, 어떤 고리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 있는 것입니다. 즉 정은임씨께서 지금 힘들어하는 어떤 고통의 시간에 그 고통의 느낌이, 혹은 이 정영음을 듣고 계신 청취자 당신의 연애에 실패한 고통의 시간과 같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다른 시간에 있는 둘이 이 공간에서, 이 공간에 매듭 속에서 잠시 부딪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시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시간에 교차의 순간을 왕가위는 영화가 다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 결론에 도달한 가장 중요한 것은 왕가위가 제 생각엔 홍콩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왜. 홍콩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도시이니까. 홍콩은 그러니까 1997년 갑자기 자기가 살고있는 땅이 다른 영토가 되었음을 깨닫는 그 시간 속에 살아야 됐었던 이 유령의 시간 이외에는 가져본 적이 없는 홍콩에서 살아가는 삶의 속도를 사유하는 방식, 그것이 왕가위가 시간 속에서 바로 고민하는 그 태도일 것입니다.

자, 그렇더라면 저는 질문하고 싶은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영화에서는 누가 영화 속에서 시간을 사유하냐는 겁니다. 말하자면 유령의 시간을 왕가위가 고민한다면 대한민국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언제나 절반의 시간일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한반도 속에서 분단되어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간이 절반 밖에 없을 때 그 절반 안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저는 한국 영화가 역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은임

네. 청취자 분들께 잠시 생각의 쉼표를 드리는 의미에서 음악을 들어보죠. 아시아의 맏형인 허 샤오시엔에 비해서는 막내형격으로 생각된다고 하셨던 그 왕가위 감독의 영화입니다. 「화양연화」중에서 "Yumeji's theme" 들어보죠.

"Yumeji's theme" composed by Umebayashi Shigeru

정은임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중에서 "Yumeji's theme" 였습니다. 이 곡을 들으니깐 느릿느릿 스쳐지나가던 양조위와 장만옥의 모습이 그냥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정성일

그 양조위에게 제가 한번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양조위는 신기하게도 오우삼, 허 샤오시엔, 왕가위 다 작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우삼 영화의 「첩혈가두」, 허 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왕가위에는 물론 「아비정전」에서 최근 「화양연화」까지. 세 사람 도대체 어떻게 다른 사람입니까. 그랬더니 양조위가 대답하기를 잠시 생각하더니 오우삼은 아버지 같은 사람입니다. 현장에서 모든 일을 자기가 책임지려고 합니다. 허 샤오시엔은 큰 형 같은 사람입니다. 언제나 잘못되어도 자기 탓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왕가위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자 잠시 생각하더니 막내형 같은 사람입니다. 가출을 했다가 금방 돌아와서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는요. (아주 재치있는 답변이네요) 그 질문을 제가 「첩혈가두」때 했었고, 그 대답을 들었었습니다, 현장에서. 시간이 많이 지나서 양조위가 「화양연화」로 깐느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다음에 그 말이 혹시 기억이 나냐고 양조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양조위가 대답하기를 아, 제가 그때 그렇게 대답했군요. 그러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왕가위는 이제 가출할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홍콩 영화를 지키는 마지막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말하자면 왕가위는 그 유령의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콩에 계속 머물러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허 샤오시엔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의 다음 세대 감독 중에서 당신이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러자 대답했습니다. 왕가위 그리고 지아 장커. 왕가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의 다음 세대 중에서 중국 화어권 감독 중에서 가장 주목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망설이지 않고, 지아 장커. 부산영화제에서 장 이모를 만났을 때 물어보았습니다. 중국에서 다음 세대 감독 중에서 누가 가장 주목할만 하십니까. 장 이모 대답했습니다. 지아 장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직 지아 장커 만이 중국을 아름답게 찍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맞아요) 티안 주앙주앙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의 다음 세대 감독 중에서 누가 가장 주목할 만합니까. 대답은 지아 장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오직 그만이 이기적이지 않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정은임

이기적이지 않다는 게 어떤 의미죠?

정성일

아마도 이제 이 에피소드가 그 지아 장커를 가장 잘 설명할 것 같습니다. 이 지아 장커는 「소무」라는, 그러니까 펜양의 한 소매치기 이야기를 16mm 카메라로 찍은 이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으면서 27살의 나이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아 장커는 「플랫폼」이라는 3시간 40분짜리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를 찾아왔었고 그리고 세번째 영화 「임소요」를 찍었습니다.

저는 「임소요」의 에피소드를 설명해드리는 것이 아마도 이 지아 장커를 설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인 것 같습니다. 임소요를 만들기 전에 지아 장커는 신문을 보고 있었답니다. 신문을 우연히 보고 있었는데 한 두 소년에 관한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인즉슨 지방의 수많은 소년들이, 지금 중국에는 수많은 소년들이 한탕하기 위해서, 돈벌기 위해서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도시에 모여온다고 해서 갑자기 돈버는게 아닙니다. 당연히도 지구상의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이 소년들은 북경에 올라와서 무언가 어떻게 해서든지 노력해봤지만 아무 것도 되지 않았습니다. 두 소년은 그저 매일같이 굶는게 일이었었고 소매치기나 하면서 국수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그 날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텔레비전을 이러고 보고 있었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뉴스인 즉슨 한 노동자가 아무 일도 되지 않고 실직까지 당하자, 사회주의에서 실직을 당한 겁니다. 실직을 하자 너무나 분개한 나머지 공장에 찾아가서 폭탄으로 자살을 해버렸다는 겁니다. 그걸 지켜보던 소년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얘기했습니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군. 우리 은행이나 털어서 돈을 벌면 어때?' 라고 얘기한 겁니다. 이 두 소년은 평소에 그렇게 열심히 B자 홍콩 액션 영화를 그렇게 열심히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제폭탄을 만든 다음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두 소년은 열심히 편지를 썼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소년은 별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두커니 있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건 대만가수 임현제가 부른 "임소요" 라는 노래였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할 말이 별달리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그 가사를 베끼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는 '어떤 후회나 슬픔이라도 사랑만 있다면 상관이 없다네. 어떤 괴로움이나 고통이 있다해도 나는 바람처럼 자유롭지. 영웅은 출생의 미천함에 대범하다네. 높은 야망으로 내 가슴은 자긍심으로 가득차 있지. 그러나 사랑만은 잊을 수 없네. 평생동안 간직했으니 이룰 수 없었지. 영웅은 초라한 태생을 두려워하지 않지. 내 마음은 야망과 자존심으로 가득차 있네. 그러나 내가 잊지 못하는 건 바로 사랑. 평생동안 헛되이 간직해 왔건만.' 이걸 어머님께 써서 보냈답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이 소년이 고향에 보낸 마지막 편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폭탄조작을 잘못해서 은행에 뛰어들었던 두 소년은 그 자리에서 폭발해서 즉사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지아 장커는 이 기사를 읽고 도시로 도시로 흘러든 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를 찍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즉 이 노래 가사 그대로, 이 노래 가사는 동시에 장자의 서 이기도 한데 이것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갖고 깐느영화제 경쟁부문에 왔습니다. 경쟁부문에서 공식상영되던 날,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만장하신 그 관객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보내고 지아 장커 일어나서 답례하고 있었습니다. 답례하던 지아 장커는 틀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서 부산영화제에서 다시 지아 장커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은 깐느영화제 경쟁부문에 간 것이 그토록 감격스러웠습니까. 지아 장커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제가 운 것은 그래서가 아닙니다. 저는 그 순간에 죽어버린 두 소년이 생각났습니다. 그 두 소년이 이 지구 반대편에 와서 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박수를 받을 때 그 두 소년은 죽은게 아닙니다. 저는 이 두 소년이 바로 이 순간 그 자리에서 그 박수를 들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하고 싶은 겁니다.

이것이 서른네살 먹은 영화감독의 생각입니다. 저는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 곁에 사는, 한반도에 사는 여러분들의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을 갖고 함께 사십니까. 지아 장커는 그렇게 중국에서 전투적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또한편으로는 자기의 동생들, 자기의 이웃들을 생각하면서 끈질기게 그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아시아의 영화들은 결국 어떻게 함께 살 것이냐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제 마지막 전언. 여러분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실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속에서 제 심금을 울린 한 마디는 이겁니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시해지는 거라는 겁니다. 대통령이 되었건 혹은 사장님이 되었건 교수님이 되었건 결국 어렸을 때 그 사람의 꿈과 희망에 비하면 시시해지는 거랍니다. 자기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이유는 단 한가지. 시시해져버린 당신이 어린 시절, 하지만 빛나는 꿈과 비전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꿈을 잃어버리셨습니까.

정은임

자, 우리가 잃어버린 꿈에 대해서까지 질문을 하셨어요. 여러분 지금 곰곰히 생각하고 계시나요. 오늘 FM 씨네마떼끄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 우리 아시아 영화 감독들, 우리와 공동이라고 하면 공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 시공간을 겪어온 그 역사를 겪어온 아시아 영화 감독들의 영화들을 쭈욱 훑어봤는데요. 자,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우리에게로 그 질문이 넘어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애요. 그렇죠? 다음 주에는 분명히 그런 얘기겠죠?

정성일

네. 물론입니다.

정은임

자. 다음 주에 정성일씨와의 만남을 또 기다리면서요. 오늘 시간은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성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