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쇼』 1990.01.에디토리얼

1990년, 한국영화는 전진한다

90년대는 참으로 이상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신상옥●유현목●김수용으로 대표되는 60년대감독들이 다시 현장으로돌아 온 것이다. 거기에 70년대 뉴 웨이브 이장호●김호선도 그 추격의 고삐를늦추지 않을 것이다.그 뿐인가. 이미 세계 무대에 올라선 임권택감독의 걸작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새로운 세대는 바로 자기 자신의 영화적 전통과 겨뤄야 할 운명을 맞이한것이다. 우리는 바로 지금이 그 전통과 영화 지층의 단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할 것이다.

로드쇼가 1990년대에 주목하는 영화 베스트
15 15MEILLEUR FILMS UNE CERTAINE REGARD de ROAD SHOW

● 마유미 (신상옥감독)
● 아메리카 드림 (김수용감독)
● 장군의 아들 (임권택감독)
● 청송으로 가는 길 (이두용감독)
● 양심선언 (이장호감독)
● 오세암 (박철수감독)
● 꿈 (배창호감독)
● 우묵배미의 사랑 (장선우감독)
● 그들도 우리처럼 (박광수감독)
● 우리는 날마다 일어선다 (강우석감독)
● 비오는 날 수채화 (곽재용감독)
● 회색도시 II (안재석감독)
● 꼴지부터 일등까지 (황규덕감독)
● 우리사랑 들꽃처럼 (홍기선-김동빈감독)
● 부활의 노래 (이정국감독)
● 네멋대로 해라 (오석근감독)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영화는 어디로 갈 것인가? 새로운 감독들은 드디어 더 이상 타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미 시사를 마친 <비오는 날 수채화>와 <회색도시II>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9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이름들, 황규덕●이정국●오석근●홍기선●김동빈을 그 목록에 추가시킬 예정이다. 이 페이지는 또 다른 10년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글●정성일차장 / 취재●김혜원기자

시사실에서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표정에는 때로 절망이, 때로는 희망이 엇갈린다. 지금 시사실에서는 새로운 감독들의 영화가 차례로 소개되고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영상을 대할 때 보다 더 행복하고 더 불안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렇게 1990년 한국영화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90년대에 데뷔하는 감독들은 우선 새롭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주제와 스타일의 문제, 그리고 화면(cadrage)과 공간(champs)의 문제를 지금까지 한국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첫번째 세대들인지도 모른다.

그 첫번째 예감을 이미 시사가 끝난 곽재용감독의 <비오는 날 수채화>와 안재석감독의 <회색도시 II>에서 발견한다. 이 두편의 영화는 무서우리만큼 극단적인 스타일리스트들의 영화이다. 더구나 두감독 모두 카메라에 대한 거의 본능적인 감각들은 아마도 이 새세대가 하이테크 '수퍼' 센스 모더니즘이라는 단어를 붙여야 할 만큼 철저하고 그리고 앞서 있음을 확인시켰다.

<비오는 날 수채화>는 '가짜'공간과 '진실'의 풍경들을 끊임없이 반복시키면서 멜로드라마에 관한 카메라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감동적인 우정과 절망적인 사랑의 세계 사이를 넘나들며 감독의 젊은 날의 그 가슴 설레이는 '작은 영화'시대의 감동과 열정을 거의 그대로 재현해낸다.

<회색도시 II>는 상상을 뛰어넘는 고도의 프로페셔널 '감각'영화이다. 여기서 안재석감독은 홍콩 포스트 뉴 웨이브의 감정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눈에는 폭력에 격렬한 움직임으로 바뀌고, 피와 육체가 난무하는 총격전과 칼부림의 세계는 활동사진적인 쾌감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거의 무감정한 이 영화의 정서세계가 드라이한 풍자정신으로 바뀌어 인간들은 끊임없이 죽어가고 카메라는 거의 홀린듯이 그 죽음의 끝까지 밀어 붙인다.

이 두 편의 영화는 1990년 시작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좀 더 놀라운 충격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우리는 1986년 두 편의 영화가 새롭게 등장했음을 기억한다. 그 하나는 이명세감독의 <개그맨>이었다. 꿈과 망상, 영화의 오랜 노스탈지아, 그리고 영화 스스로 자신의 개인적 역사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제도권내의 이 '황당무계'한(!) 야심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당혹한 나머지 평가를 주저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숨겨진 반란이었고, 불가능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미처 이 영화의 의미와 미래를 채 따져보기도 전에 배용균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등장하였다. 현란하리 만큼 극단적인 화면의 소우주들, 미쟝 센 없는 포토그램의 세계, 이야기없는 디스쿠르들 만의 공간으로 엮어낸 텍스트/회화의 이중구조망 앞에서 우리는 아연실색한 것이다. 어떤 비난도 이 영화를 걸작의 자리에서 내려놓지 못했고, 어떤 칭찬도 배용균 감독의 미래에 대해서 낙관론을 그려보이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중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게다가 1989년 한국영화는 아무 것도 잘 되어가지 않았다. 영화인들은 헐리우드의 상륙 앞에서 4분5열되어 마치 근대조선시대의 백가쟁명을 연상시키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드높이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한 쪽에서는 개방을 외치고, 또 한쪽에서는 폐쇄를 외쳐 이 사건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그 좌표를 잃어버렸다.

이 한해 동안 새로운 뉴 웨이브로 각광을 모은 <칠수와 만수>의 박광수감독과 <성공시대>의 장선우감독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들의 연출부 '아버지'였던 이장호감독은 <미스 코뿔소, 미스터 코란도>를 내놓고 흥행적 재난을 맞이했다.

비극은 그 뿐이 아니다. 이세룡감독은 <내 친구 제제>를 만들어 놓고 거의 숨어서 개봉되다시피 하고는 매장당했다. 아마도 한국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대사로 이루어졌을 이 영화가 관객의 눈물 대신 감독의 눈물로 댓가를 치룬 것이다.

게다가 박종원감독의 야심적인 '노동자 스펙터클'(이 영화는 틀림없이 운동영화나 민중영화와도 그 노선을 달리하고 있다) <구로 아리랑>은 검열에서 잘려 나가고 극장에서도 관객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소수 비평가들은 측은하다는 동정표를 던졌고, 영화인들은 말로만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89년 말 부터 시작되고 있는 이 새로운 바람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든다면 죽어도 좋다는 이 새로운 세대의 외침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끌어 모은 제작비로 직접 제작에 들어간 것이다.

제작자들은 '생존권'(이 얼마나 우스운 단어인가? 이 말을 제작자들이 한다는 가증스러운 사실이)을 내세우면서 예술영화 또는 사회의식이 있는 영화는 장사가 안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제도권 내에서 망가진 젊은 영화인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제는 망해도 내가 망한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이 절실한 표현은 지금 독립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자체 인력과 자본으로 우리영화 제작에 돌입하는 젊은 영화인들의 메시지이며 슬로건이다. 그렇다. 이건 기존 제도권의 제작자들이 감히 할 수 없었던 슬로건이었다.

영화제작소 '물결'을 세운 황규덕감독은 <꼴지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로 지금 촬영전쟁에 돌입했다. 그는 '얄개영화(!)를 찍지 않겠다. 지금 입시제도가 얼마나 살인적인지 당신들은 감히 알기나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대학생 시절 <전야제>를 통해서 작은영화 내에서 높이 평가 받았었는데, 지금 그 오랜간의 꿈을 화면 위에 담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그는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1년을 쫓아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1년이 피와 땀, 눈물과 이루어진 또 하나의 건강한 세계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말한다. 모든 등장인물은 실제 고등학교 학생들을 캐스팅하여 그들과 공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들겠다는 그 의도는 아마도 한국영화에서 오랜간 잊혀졌던 리얼리티를 부활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89년 파문을 일으킨 16미리영화 <오! 꿈의 나라>의 핵심인물 중의 하나였던 홍기선감독도 지금 김동빈감독과 함께 영화제작소 '파랑새'를 세워 <우리사랑 들꽃처럼>의 촬영에 들어갔다. 홍기선감독은 87년에 이미 농민문제 영화 <파랑새>로 정부로부터 구속 기소된 경험이 있는데, 더구나 이 시나리오를 쓴 김인숙씨는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자의 영광 이후 '노동소설'로 전향한 운동 소설가이다.

홍기선감독은 이미 16미리로 그동안 꾸준히 작업한 성과를 35미리로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겸손해 하지만, 지금까지 지하에서만 소개되던 그 성과가 공개적으로 제도권 극장 내에서 상영된다면 그 결과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제도권 내에서 근본적인 변혁의 싸움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하에서만 활동한다면 그건 언제까지나 일부 소수의 몫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이 원한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영화제작소 '파랑새'의 진지함은 그런 점에서 또 다른 맥락을 지니게 될 것이다.

새빛 제작소의 <부활의 노래>는 제목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광주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영화의 이정국감독은 공공연히 자신이 '광주'사람이기 때문에 이 영화로 자신의 출발점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는 이미 단편영화 시절 <백일몽>의 '인기'(!)있는 연출가의 한명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장편화되어 지금 강우석감독(<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 촬영중인 <우리는 날마다 일어선다>의 원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정국감독은 처음부터 코미디를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구체적인 체험의 역사현장을 다룬 <부활의 노래>에 이어 만들 다음 영화는 동학혁명에 관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세대는 꼭 심각한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철저한 프로근성의 상업주의도 또한 그들의 목표이다. 비디오로 승부하겠다는 영화공장의 오석근감독이 지금 완성직전에 있는 <네 멋대로 해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 영화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59)와 짐 맥브라이드의 <브레드레스>(83)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인데, 그들의 열정이 어느 정도냐하면 심지어 6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거물들인 박노식, 독고성, 장혁씨를 은퇴로부터 현장으로 끌어낼 정도이다. 이들은 그래서 우선 목표를 철저한 상업주의에 두겠다고 제도권에 공공연히 경고를 한다.

왜 경고인가? 영화공장 팀들은 바로 불철저한 상업주의 때문에 오히려 한국영화는 오늘의 나태하고 재미없고 진부한 도식에 빠졌다고 외친다. 어쩌면 그 지적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80년대에 들어 우리가 '진짜' 상업영화 한편 제대로 본 적이 몇번인가?

제대로 벗지도 못하는 '사이비' 포르노, 손발이 맞지 않는 액션, 슬프지도 않은 멜로, 그리고 말도 안되는 사회의식을 내세운 '분노를 일으키는' 영화들 만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국영화에서 잡귀를 몰아내야 한다.

여전히 사랑이야기. 이제는 그만 두자.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1990년 이 땅을 바라보자.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표상의 제국주의와 '신식 국독자'라는 이름의 물질적 조건 아래 세워진 한국영화는 도대체 무엇인가?

새로 시작하는 세대들은 피하지 않고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정직함과 진지함, 바로 그것이야말로 새로 시작하는 90년대의 뉴 웨이브들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영화는 더 이상 구경꺼리가 아니다. 사랑을 즐기러 오겠다고? 감히! 알지 못하는 이웃들이 끝도 없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팝콘과 함께 넋을 잃고 구경하러 오겠다고? 설마! 우리는 이 두 마디를 90년대의 관객에게 덧붙이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