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쇼』 1991.01.에디토리얼

E D I T O R I A L B O A R D

독자라는 동지들에게 해피 뉴 이어!

로드쇼는 1991년을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두세가지 약속을 할 작정입니다. 우선 작가주의 노선을 통하여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들을 지원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당연하지만 자기 자신의 토대와 모순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감독들만이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촬영기사와 연기자, 시나리오 작가, 기획실 친구들의 리스트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관심은 영화와 함께 총체적인 의미로서의 영화현상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뿌리 뒤져나가기인데, 총체적 국면으로서의 사회구성체 내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며 뿌리 뻗어나간 리좀(Rhizome)으로서의 영화현상을 찾아나설 것입니다. 여기에는 비디오와 CATV, 음악과 만화까지도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잘난체 하는 엄숙주의(?)와 경건하리만큼 고상한 척하는 엘리트주의에 매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개처럼 버림받고 마치 우리 시대에 있지도 않은 것처럼 무시받고 있는 서브컬처(subculture)의 지하도로를 비판/지원할 것입니다.

상황테제 1; 우리영화는 아무 것도 잘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은 결코 협박이 아닙니다. 해외영화에서의 수상으로 얼핏 보기에는 겉포장만으로 그럴듯 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서 영화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의 독자들은 90년 10베스트 영화를 투표하는 자리에서 무려 36퍼센트가 '한국영화는 본 영화가 하나도 없으며 별로 보고 싶지도 않다'라고 떳떳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객에게 버림받고 해외영화제에서 보상받는다면 그야말로 비극적 코미디로 이어지는 악몽의 연속이 될 것입니다.

상황테제 2; 국내기업이 미국 오라이온 영화사를 사기위해 협상중이라는 기사가 실리면서 영화의 다국적기업으로서의 특수국면이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만일 이 뉴스가 기정사실화된다면 직배저지는 단숨에 무의미한 투쟁이 될 것입니다. 이제 서울 한복판의 극장에서 <로보캅>이 한국영화상영일수를 채우며 돌아갈 것이며, 헐리우드의 스타들이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내리게 될 것입니다. 꿈만 같은 사실이라구요? 그럴지 모릅니다. 그것도 믿기 어려울만큼 지독한 악몽의 묵시록이 될 것입니다.

상황테제 3; 영화가 전쟁터라는 사실에 대한 새로운 확인입니다. 1991년 세계영화에 관한 전망은 우선 동구영화의 몰락에서 새로 시작되는 10년이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입니다. 천하대란에 빠진 폴랜드, 경제적으로는 파산한 체코, 아무 것도 알 길이 없는 유고슬라비아, 전망을 잃어버린 헝가리 모두 영화적으로도 아무런 결산없이 새로운 90년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네아스트에게서 카메라는 진실입니다. 카메라는 역사 위에 서 있는 것이며, 휴머니즘이라 이름 지은 인간의 곁에 서서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 편을 들어 비인간적이며 때로 야만적인 착취와 공포의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만일 그 싸움으로부터 일보 후퇴한다면 그건 타협이 아니라 패배이며, 회색분자가 아니라 배신자인 셈입니다.

지금 충무로에서는 악마사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가 배신자이며 누가 매판 협력자인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속에서 맞고소와 함께 고발과 영장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영화예술에 종사한다는 의미가 현실로부터 면책특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야말로 자기시대에 참여할 것입니다. 만일 이 질문을 참여냐 순수냐는 식으로 비꼰다면 그건 국적을 물어야 할 반문일 것입니다.

상황테제 4; 영화의 최종심급은 바로 관객 여러분입니다. 만일 우리의 세기가 끝나기 전에 우리의 영화가 사멸한다면 그건 바로 관객자신들의 평가가 될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365일에 갑자기 난데없는 희망이 베풀어질 것이란 기대는 처음부터 갖지 마십시요. 희망은 반성하는자, 그래서 반성으로부터 실천하는 자의 그 두 손으로 획득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꿈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 꿈이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거짓이고, 협잡이며, 속임수입니다. 오히려 그 꿈 뒤에 가려진 고통과 절망, 슬픔과 좌절,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기대하십시요.

우리는 이제 새로운 365일에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사랑과 비판에도 언제나 귀기울일 것입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희망이며, 여러분에게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있는 힘을 다해서, 해피 뉴 이어!

<사랑과 영혼/고스트> 제리 쥬커 감독

지금 유령과 여자 사이에 벌어진 사랑이야기가 온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영화관 앞에서는 불법 복사테이프가 하루 종일 돌아가고 있고, 레코드 사에서는 오리지날 사운드트랙과 라이처스 브라더즈의 힛트곡 모음집을 따로 내놓고 서로 가짜라고 비난하고 있으며(그런데 무엇에 대한 가짜?), 충무로 한국영화인들은 직배저지를 외치며 맞은편 극장의 '시국선언' 입맞에 딱 맞게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다이하드2>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서울이라고 이름지은 도시에도 눈이 내리고, 이 포스트 모던한 악몽은 오늘밤에도 계속된다.

세르게이 미카이로비치 에이젠쉬쩨인「이미지의 모험」

25살에 영화사상의 고전「전함 포템킨」을 완성시켰고, 몽타즈 영화이론을 생각해낸 에이젠쉬쩨인은 진정한 시네아스트의 임무를 그의 전 인생을 통하여 증명시켰다. 그는 이론과 실천이 하나이며, 영화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변증법적인 총체적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영화사의 위대한 작가에 의해 연구된 '몽타즈' 이론에 관한 번역이 이제야 우리에게도 소개되었다. 물론 이 소중한 텍스트는 에이젠쉬쩨인 연구의 시작이며 그 일보전진일 것이다.

까이에 뒤 시네마, 1990년 12월 특별호

프랑스 영화평론지 까이에 뒤 시네마는 장 뤽 고다르 특집을 내면서 금년으로 누벨바그 탄생 30주년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프랑소와 트뤼포, 끌로드 샤브롤, 작끄 리베뜨로 이어지는 '새로운 물결'도 이제 재평가 받아야 할 시대에 온 것이다. 영화에서 새로운 출발이란 무엇인가? 고다르는 자기시대에 관해 끊임없이 새롭게 반성하는 문제제기라고 대답한다. 그러하다면 우리의 영화는 과연 새로운 영화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딕 헤브지「서브컬처」

문화가 물적토대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다는 이유 때문에 물신화된다면 그건 문화라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진지전을 수행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진지전을 수행하는 서브 컬처는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로드쇼는 이른바 컬트문화라고 이름지어진 서브 컬처를 지원할 것이며, 바로 그 곳에서부터 영화를 다시 한번 생각할 작정이다.

엘비스 코스텔로「금년의 모델」

펑크 로커 엘비스 코스텔로는 냉소적인 가사와 무표정한 보이스 칼라로 1976년 '키스따위는 원치 않는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걸작 LP를 발표하였다. 온 세상이 악당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만으로 모든 게 잘 될 것이냐고 반문하는 코스텔로는 그것이 76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15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앨범이 어울린다. 설마 당신도 사랑만으로 세상이 잘 되리라고는 믿지 않겠지만!

FINAL CUT

365일을 영화와 함께 산다는 건 일종의 행복이다. 그리고 영화를 이야기하며 친구들을 거듭 만날 수 있는 건 사랑이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해피하지 않다는 게 슬프게 한다. 왜냐하면 모든 영화가 진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독자들에게,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