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 1993.06.작품

영화속의 여성들

광란의 사랑


새로운 시대에는 언제나 새로운 연인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연인들은 공공연하게 권위에 도전하고 그리고 세계의 중심에 자신들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건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다소 괴팍스럽고 기괴한 스타일이긴 하지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광란의 사랑〉은 폭발적이고 격정적인 진실을 보여준다.

떠돌이 청년 세일라(니콜라스 케이지 분)는 무도회에서 롤라(로라 던 분)를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롤라의 어머니도 그만 세일라에게 반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세일라와 롤라를 떼어 놓으려는 음모는 그만 우발적인 살인이 되고 세일라는 5년간의 형무소 생활을 한다.

그리고 형기를 마친 세일라가 뱀가죽 재킷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온다. 이번에는 결코 놓칠 수 없다고 결심한 롤라는 어머니 몰래 짐을 싸들고 나와서 세일라와 함께 도망친다. 보통 영화라면 여기서 끝이겠지만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오히려 여기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세일라와 롤라는 로큰롤을 부르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들은 해방된 것이고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롤라의 어머니는 사립탐정이자 숨겨놓은 정부까지 끌어들여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찾아내라고 요구한다. 롤라의 어머니는 질투에 몸을 떨면서 이제 분노의 화신으로 바뀐다.

세일라와 롤라는 자신들을 쫓아오는 추적자들을 피해서 고속도로 저편 세상의 끝까지 달려간다. 황량한 사막과 건조한 모래바람, 그리고 우울한 울음소리의 멕시코인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여긴 결코 연인들에게 어울리는 천국은 아니다. 아니, 천국이기는커녕 차라리 지옥이라고 부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두 사람만이 된 세일라와 롤라는 행복하다. 여기서는 아무도 방해하지 않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콧수염을 기른 음침한 사내와 요염하면서도 살인적인 귀기를 뿜어내는 여인이 접근한다. 사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롤라를 탐욕스럽게 바라보고, 여인은 노골적으로 세일라 앞에서 교태를 부린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아, 그러나 이것은 함정이었고 불쌍한 연인 세일라와 롤라는 그만 무장한 은행 강도단에 말려든 것이다.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폭력이 이어지고, 그들을 지켜보는 끈적거리는 여름의 권태로운 햇살은 잔인무도한 악몽처럼 쫓아다닌다. 이제 그들의 사랑은 결국 좌절하고 마는 것인가?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롤라를 사랑할 자신이 없는 세일라는 쓸쓸하게 떠나간다. 제발 내게 엘비스의 그 ‘부드럽게 사랑해 줘요(Love me tender)'를 불러달라고 롤라가 울부짖어도 세일라는 떠나간다. 그런데 바로 그때 세일라 앞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마녀가 나타나서 이제 모든 저주는 끝났으니 그녀를 사랑하라고 일러준다. 정말 마녀가 나타난 것일까, 아니면 세일라의 마음속에 백일몽이 나타난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좋다. 세일라는 돌아서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며 롤라를 꼬옥 껴안는다.

이 마지막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감동적이다. 그건 세일라와 롤라가 얼핏 보기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하고 그것을 나누지만 그러나 사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엘비스 프레슬리의 50년대 로큰롤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연인들은 바뀌었지만, 사랑하는 방법은 바뀌었지만,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일이라는 사실 만큼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들려주는 것이다.

컬트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이비드 린치는 이 영화로 90년도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았으며, 그 쇼킹한 장면들로 젊은 신세대의 영웅이 되었다. 자, 이제는 당신이 그것을 공감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