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 1994.07.작품

영화 이야기

데드 링어(dead ringer)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라는 이름은 포스트 모더니즘 영화의 최전위 부대이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서 줄곳 남들에게 무시되었었던 공포영화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크로넨버그의 관심은 그저 화면에 붉은 페인트를 뿌려서 피를 위장하고, 정신병자들이 도끼를 들고 설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협박이 아니다. 그의 영화는 인간의 신체기관에 대한 사지절단과 해체로 밀고 나아간다.

실제로 그가 다룬 작품들은 모골이 송연하도록 섬짓한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크로넨버그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비디오 드롬>에서 주인공은 해적방송의 주파수를 추적하다가 그만 얼굴이 브라운관 화면과 뒤섞여버리거나, 심지어 배를 가르고 그 속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들기까지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개봉된 <플라이>에서 과학자는 물체 공간 전송 실험을 하다가 작은 실수로 자신의 신체가 파리의 신체조직과 유기적으로 합성되어 마침내 인간에서 파충류로 환골탈피(!)하는 자신을 지켜 보아야만 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여기서 악취미로 놀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 현대 사회의 미디어들과 과학의 이름을 내세운 공해들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시켜가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조사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신체조직의 파괴 속에서 새디스트적인 쾌감보다는 마치 고전적인 양식의 슬픔을 끌어낸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감독이 바로 그 세상에 대해 센티멘탈해지는 것이다.

바로 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도 슬픈 영화는 <데드링어>이다. 이 이야기는 정말 ‘피가 얼어붙는 것 같다’는 제임스 코버만이라는 이의 평가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날 산부인과를 찾아 한 여자가 차를 몰고 온다. 영화배우라고 자기 직업 소개난을 쓴 이 여자는 자신이 임신할 수 있는 지를 알기 위해서 머나먼 캐나다 토론토까지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녀가 찾아온 산부인과는 이 곳에서는 아주 유명한 병원이다. 쌍둥이 형제가 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병원의 주인은 바로 이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이 똑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성격은 정반대였다. 형은 아주 낙천적이고 신사적이며 비지니스맨 타입이지만 동생은 섬세하고 수줍고 신경질적인 타입의 일란성 쌍둥이였다.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들어가서 진찰하고 수속도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날도 예외없이 쌍둥이 형제는 미스터리한 여배우의 임신 가능성 여부를 진찰한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임신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문제는 두 형제가 동시에 이 여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러나 이건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란성 쌍둥이인 두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서로가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그 어떤 영적인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동시에 상대방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인간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무의식 속의 욕망이다. 형은 동생이 이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다는 사실을 느끼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질투심으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동생은 정확하게 형의 그 욕망을 읽어낸다. 사랑은 질투를 낳고, 그리고 증오의 감정만을 만들어낸다. 이제까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하던 쌍둥이 형제는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무서운 적이 되어 죽음으로 향하는 전율할 만한 계획을 서로 세운다. 결과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영화 전편을 둘러싼 공포 무드, 그리고 수많은 영화 팬들로부터 ‘그 해의 가장 소름 끼치는 체험’이라고 기립박수를 받아낸 라스트의 소파 수술장면은 정말 어떤 영화광도 관객석에 다운시켜버릴 만큼 엽기적(!)이다.

이 영화에서 <미션> <마담 버터플라이>로 우리에게 알려진 제레미 아이언스가 감쪽같이 1인2역으로 일란성 쌍둥이를 연기하면서 관객을 착란과 예리한 충격으로 몰고 간다. 공포는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