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 1994.02.작품

영화감상/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

어머니와 딸


세상을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어려움일까? 웨인 왕 감독의 ‘조이 럭 클럽’은 그 삶의 역사를 따라 나서면서 어머니의 얼굴에 자리한 주름의 그림자가 만들어진 그 현장으로 딸들을 초대하는 영화이다.

미국 차이나 타운의 작은 집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화교들이 모여 만찬을 연다. 그리고 여기에는 네 명의 어머니가 모여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마작도 하고, 푸념도 늘어놓는 모임 ‘조이 럭 클럽’이 있다. 이 자리에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그 딸 쥰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녀들의 장성한 딸들도 모두 함께 자리잡는다. 영화는 그때부터 네 명의 어머니와 네 명의 딸들이 겪어온 인생 속으로 마치 수수께끼라도 풀어나가는 것처럼, 때로는 그 이야기를 엿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따라 나선다.

어머니 수유안은 중국에서 전쟁 중 피난가다가 그만 질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쌍둥이 딸을 버리고 간다. 그녀는 그것이 평생 마음에 걸린다. 그 후 미국으로 이민 온 수유안은 재혼해서 딸 쥰을 낳는다. 쥰은 항상 어머니의 무리한 기대 속에서 부담스러워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비로소 그것이 잃어버린 쌍둥이 딸에 대한 무게까지 더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언제나 강하게만 살아온 어머니 린도는 15살 때 강제로 시집간 기억이 있었다. 남편은 어린 아이였고, 시어머니는 왜 빨리 아들을 못낳느냐고 매일 괴롭힌다. 그 고통 속에서 린도는 결심한다. 여기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그녀는 미친 흉내까지 내면서 그 집에서 쫓겨나 미국으로 향한다. 그런 린도는 이민와서 낳은 딸 웨벌리가 자기에게 반항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서로의 증오는 웨벌리가 미국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는 결심을 듣고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웨벌리의 결혼식장에 가기위해 미장원에 간 린도는 이야기한다. 세상에 딸을 미워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느냐고, 그래서 사위에게도 잘 보이기 위해 여기 미장원에 온 것이 아니냐고. 그 이야기를 듣는 웨벌리는 자존심 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어머니의 사람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눈물 속에서 본다.

사람 좋아보이는 어머니 안 메이에게도 어두운 기억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자집 첩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집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안 메이는 어머니를 따라 그 집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세 번째 첩이었고, 그녀는 거기서 학대받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약한 어머니는네 곁을 떠나니, 너는 용기를 내렴’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다. 어머니의 말을 평생 신조로 살아온 안 메이는 똑똑하고 총명한 딸 로즈가 미국인 남편 때문에 삶이 망가지자, 비로소 그 숨은 과거를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로즈는 어머니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다.

섬세하고 차분한 어머니 잉잉은 항상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녀는 처녀시절 자기 앞에 나타났었던 거칠고 야성적인 남자에 이끌려 결혼한다. 그러나 그녀가 아이를 낳고 싫증날 때 즈음이 되자 바람을 피기 시작한다. 남편은 점점 도가 지나쳐서 이제 정부를 집에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참다 못한 그녀는 거의 실성상태가 되어서 그만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여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혼하고 미국으로 온다.

그녀는 딸 레나의 삶에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나의 집을 방문하고서, 그녀가 거의 남편의 사랑을 받지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용기를 내서 말한다. “이 집에서 나가렴. 나는 네가 이렇게 살게 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온 것이 아니란다.”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 2세 여류소설가 에이미 탄의 원작은 실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여덟명의 인칭을 오가면서 중국과 미국, 가부장제와 이민, 어머니와 딸, 이별과 만남을 서로 대비시키거나 때로는 겹쳐 놓는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너무 많이 등장하여 영화화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이다.

이것을 성공시킨 것은 무엇보다도 웨인 왕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다. 영화를 너무 좋아한 아버지가 존 웨인의 이름을 따서 웨인 왕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 영화광 2세는 그동안 꾸준하게 미국에 이민 온 화교들의 삶을 독특한 스타일로 따뜻하고 페이소스 있게 그려냈었다. 그리고 그의 여섯 번째 작품인 ‘조이 럭 클럽’에서는 말 그대로 그의 영화세계가 집대성되어 나타난다.

물론 때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면서 도식적인 이야기로 빠지거나 또는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인 결론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웨인 왕에게는 원칙이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단 하나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들이 아무리 다른 조건, 다른 어려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을지라도 결국은 하나, 즉 어머니와 딸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분명한 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을 웨인 왕은 오히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펑펑 울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건 지나치게 울리는 신파조의 멜로 드라마일까? 웨인 왕은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한다. 그러면 왜 안되지? 거기 진실이 있으면 되는 거지. 그건 사실이다. 그걸 ‘조이 럭 클럽’은 당신 손에 꼭 쥔 손수건이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