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 1994.03.작품

영화감상/ 펠리칸 브리프(Pelican Brief)

백악관과 미국 수뇌부,
대재벌의 어두운 음모


미국 대통령과 펠리칸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지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 셀러 소설작가 존 그리샴 원작의 <펠리칸 브리프>를 영화화한다는 것은 정치와 상업주의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다.

존 그리샴은 원래 변호사 출신이었지만 남의 자질구레한(?) 송사나 맡는 일은 정말 그의 적성에 안맞는 일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가 대학시절부터 그토록 꿈꾸던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는 헤밍웨이나 조셉 콘라드 같은 소설문학의 대가가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바로 1940년대 형사소설로 알려진 ‘하드 보일드’ 스타일의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야말로 그의 우상이었다. 존 그리샴은 법조계에서 쌓은 실력을 발휘해서 그 누구도 손대보지 않은 장르인 법정 미스터리를 그려나갔다. 물론 예전에 <페리 메이슨>이 있기도 했지만 존 그리샴의 주인공들은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오히려 법을 이용해서 그 구멍으로 빠져 나간다. 법망에 걸리지 않는 범죄소설을 한번 생각해보시라.

존 그리샴은 그의 네 편의 소설 중 이미 세 편이 영화화되었다. 그의 두 번째 소설 <그들은 바다로 갔다>는 하버드 법대 수석 졸업생이 일류 직장에 취직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게 마피아 돈 세탁소였다는 것이다. 이 놀랄 만한 함정에서 악전고투하는 수석 졸업생의 머리싸움을 영화로 담은 작품이 바로 톰 크루즈의 <야망의 함정>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촬영 중인 <의뢰인>은 어마어마한 현장을 본 꼬마 아이를 사이에 두고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는 검찰측과 없애려는 피고인 측의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진다.

<펠리칸 브리프>는 존 그리샴의 세 번째 소설이자 두 번째로 영화화된 작품이다. 시작하자마자 대법원장과 지방법원장이 그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 한 나라의 대법원장이 암살당했다는 것은 그건 거기에 무슨 엄청난 조직과 이유가 숨어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전 미국의 화제가 된다. 그래서 한 법대 교실에서 이 사건을 두고 모의 법정을 한번 구성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먼저 사건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법대 여대생 다비 쇼(줄리아 로버츠)는 일주일 동안 꼬박 도서실에서 밤을 새우면서 그동안 대법원장과 지방법원장이 맡았던 모든 사건 기록을 뒤진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록의 인과성을 찾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낸다.

모든 이유는 돈 때문에 벌어졌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것도 엄청난 이익을 둘러싼. 그 다음 두 사람이 이권에 관련된 재판을 맡은 것이 없을까를 뒤진다. 그 중에 한 사건이 걸려든다. 원래는 펠리칸 서식지였던 불모의 땅이 있었는데 여기서 유전이 발견된다. 말 그대로 엄청난 돈이다. 그러나 그것을 개발하면 펠리칸들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환경파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보호단체가 결사반대한다. 그런데 그 유전의 주인은 지금 대통령의 엄청난 재정적 후원자였다. 그렇다면 이제 재선을 앞두고 환경보호론자인 대법원장과 지방법원장을 제거하고 그의 유전지대 개발에 관한 안건을 통과시키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대생 다비 쇼는 그녀가 생각해도 억지 같지만 일단 여기에 ‘펠리칸 문서’(Pelican Brief)라는 이름을 붙여 교수에게 제출한다.

그러나 그녀가 세운 가설은 사실이었고, 우연히 FBI의 손에 넘어가서 백악관까지 그 리포트가 들어간다. 그리고 백악관은 두말 없이 그녀의 제거 명령을 내린다. 자, 이제 그녀는 백악관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는데.

존 그리샴은 그의 소설을 두 번째 영화화시키면서 그야말로 적임자를 찾아냈다. 그는 바로 알란 J 파큘라이다. 파큘라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정치적인 소재에 능숙하면서도 상업주의적인 감각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을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로 내세워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친 실화의 영화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로 아카데미상 5개부문을 석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때로는 진보적인 정치적 입장에서 미국 행정부의 무능함을 사정없이 비판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팽팽한 긴장의 끈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압권인 장면은 다비 쇼가 변장을 하고 사건의 단서가 되는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 대목. 파큘라는 그 상황을 오히려 더 느린 리듬으로 찍는다. 그 다급한 장소의 위기 속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영화는 한껏 늘어진다. 호랑이 굴 속에 들어간 다비 쇼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도 거의 숨이 멎을 지경이다.

법대 여대생 다비 쇼로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는 지적인 면은 좀 부족해서 초반에는 고전하지만, 그러나 쫓기고 달리고 뛰어오르는 추격전에서는 그 늘씬한 몸을 이용해서 스타의 멋을 한껏 발휘한다. 그러나 진짜 승부 카드는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흑인 기자역의 댄젤 워싱턴이다. 이미 그는 <말콤 X>에서 당대 제일의 연기파라는 것을 과시했는데 여기서도 근성있는 기자와 정의를 실현시키려는 그 의무감 넘치는 모습을 거의 완전하게 그려낸다. 만일 <펠리칸 브리프>가 정치적 독설과 추리소설의 재미를 더했다면 그건 알란 J 파큘라 감독과 댄젤 워싱턴의 덕일 것이며, 그저 구경꺼리의 따분한 영화였다면 줄리아 로버츠 탓일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카드를 들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