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 1994.04.작품

영화감상/ 쉰들러 리스트

이 세상을 구하는 것은?


지난 3월 22일 오스카 시상식에서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상을 발표하기 위해 나왔다. 그는 쟁쟁한 후보들을 부른 다음 예상한 것이 맞았다는 짧은 실망감(?)과 만족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수상자를 발표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스필버그는 이 상을 처음 받았다. 헐리우드의 수많은 흥행 성공작으로 월스트리트의 주식을 천정부지로 솟게 만드는 그가 정작 아카데미상에서는 언제나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질투일까 아니면 정말 그에게는 재능이 없었던 것일까?

지난 85년 <칼라 퍼플>의 악몽을 스필버그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전부문 탈락이라는 쓰디쓴 참패를 맛보면서 아카데미 최악의 기록을 세웠다.

스필버그는 그후 슬럼프에 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번 아카데미에 도전한다고 절치부심하며 만들었던 <태양의 제국>과 <사랑은 그대 곁에>에 아카데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결국 스필버그는 오락영화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인디아나 존스> 삼부작의 최종편 <최후의 성전>과 <후크 선장> 그리고 <쥬라기 공원>은 90년대 헐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흥행 전략을 주도하는 최첨병처럼 보였다. 모두들 스필버그는 ‘오스카와 인연이 없지만 돈 버는 데는 귀신’ 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93년 10월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포스터에 감독의 이름도 없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영화는 3시간 18분의 엄청난 장편이었고, 게다가 흑백필름을 사용한 작품이었다. 내용도 끔찍한 나치시대의 유대인 학살을 다루고 있었다. 마치 기록영화처럼 만들어졌고, 뛰어난 연출은 그 감독의 이름을 쉽사리 가려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 맨 마지막에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이 올라왔다. 영화광들은 당황했고, 영화평론가들은 아연실색했다. 이건 정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급소 찌르기였다. 헐리우드의 피터 팬이라는 스필버그가 이처럼 딴 모습으로 쏜살같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우선 도대체 이 영화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망설였다. 그러나 곧 바로 그런 망설인 자체가 ‘편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쉰들러 리스트>는 정말 아무나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토마스 케닐리의 동명의 논픽션 소설. 케닐리는 유대인으로서 2차대전 중 당했던 인종학살의 비화를 끈질기게 파헤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오스카 쉰들러라는 흥미진진한 인물의 자료에 접하게 되었다.

이 독일인은 나치 당원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전쟁 중에 한몫 잡으려했던 장사꾼이었다. 그는 수완이 뛰어나고, 그리고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군수사업에 뛰어들어서 군의 고위층을 매수하고 마침내 사업을 따낸다. 그는 낮에는 일하고 밤이면 술집의 환락에 몸을 내맡긴다. 여자를 좋아하고 부정을 저지른다.

그런 오스카 쉰들러는 전쟁 막바지에 갑자기 그의 태도를 바꾸어 목숨과 재산을 걸고 유대인 1천2백명을 구해낸다. 그리고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보내져 몰살당할 뻔했던 그들을 살린다. 오스카 쉰들러는 정말로 영웅인가, 아니면 시대가 만들어낸 휴머니즘의 마지막 보루인가?

만일 예전의 스필버그였다면 쉰들러의 무용담에 모든 노력을 경주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모험의 순간과 위기, 영화적 순발력과 끔찍한 장면들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여기서 절묘하게 변신, 전혀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쉰들러 리스트>는 결코 세련된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아우슈비츠와 유대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보기 좋게 포장하는 것은 범죄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유대인으로서의 스필버그는 오스카 쉰들러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대신 바로 그를 통해 역사의 현장으로 파고 든다. 그리고 온통 야망과 죽음의 그림자로 가득했던 바로 그 시대의 진실을 불러 세운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스카 쉰들러가 아니라 시대의 집단 광기이다. 그래서 인간을 죽이는데 모든 것을 바치는 인간들과, 그 인간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인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화면 앞에서 살려낸다. 스필버그는 여기서 카메라가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카메라 구도 바깥으로 종종 빠져나가고, 카메라는 거꾸로 그 인물을 쫓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죽는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있지만 아마도 <쉰들러 리스트>만큼 모골이 송연하도록 섬뜩한 영화는 쉽게 만나지 못할 것이다. 스필버그의 눈물은 흑백화면의 피처럼 번져나가고, 그 총소리는 우리 관객에게 양심의 존재를 묻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마게 나오는 감독적인 대사. 회계사는 쉰들러에게 말한다. 탈무드의 잠언.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스필버그 방식으로 다시 끌어보자. 한 편의 좋은 영화를 찍는 것은 헐리우드를 구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가 스필버그인 바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