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 1994.06.작품

영화감상/ 마이 라이프(My Life)

영원히 사는 법


조만간에 첫 아이가 태어나는데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만일 당신이 그런 운명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밥의 경우는 태어날 아이에게 비디오 만들기에 매달린다. 마이클 키튼과 니콜 키드만 주연의 ‘마이 라이프’는 생명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애잔하게 남고, 아릿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난 후에는 반드시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게 하는 영화이다.

‘나의 이름은 밥’. 혼자서 비디오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PR회사를 경영하는 밥 존스(마이클 키튼).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그는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비디오 만들기를 생각해낸다.

고작 4개월의 시한부 인생. 그 사실을 안 아내 게일(니콜 키드만)은 중국 한의사 호(하인 S. 뇰)에게 그를 데리고 간다. 일종의 심령치료로 효과를 올리고 있는 호. 그러나 중증의 암에는 손을 쓸 수 없어 대신 밥의 마음을 치료하려고 시도하지만 밥은 그곳을 뛰쳐나와 버린다.

어느 날 밥의 비디오를 우연히 본 게일은 충격을 받는다. 비디오 건을 비밀로 하며 그가 고통을 혼자서 짊어지려고 하는 것에 게일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렇다. 밥에게는 다른 사람의 애정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 같은 일면이 있었다. 밥이 부모에게도 병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게일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비디오는 좋은 아이디어였기에 그녀도 돕기로 한다.

밥의 동생 폴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이들은 밥의 고향 디트로이트를 방문한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에 간 밥은 아버지 빌(마이클 콘스탄틴)이 서커스에 데리고 가기로 했던 약속을 어긴 일을 떠올린다. 사실 그날부터 밥은 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가족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한편 빌도 러시아계 출신임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반비치라는 이름까지 버린 밥에게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과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은 채 이들은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온다.

게일의 초음파 검진에 입회한 밥은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태아의 모습과 조그만 심장이 뛰는 모습을 보고 짜릿한 감동을 느낀다. 아들임을 안 이들은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수염 깎는 법에서 악수하는 방법까지 가르치는 비디오를 만들면서 충실한 시간을 보낸다.

브라이언을 키우며 분주하게 보낸 행복한 나날. 하지만 밥의 암은 이미 뇌에까지 퍼져 걸어다니는 데도 지장을 준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 그의 뇌리에 아버지와의 부드럽고 따스했던 광경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난다.

그렇다. 아버지는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 동생 폴이 용케도 “아버지와 형은 아주 닮았다.”고 말했듯이 아버지도 밥처럼 일에 쫓겨 애정 표현이 서툴었을 뿐이었다. 아버지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리고 사랑하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디트로이트에서 달려온 양친과 동생 부부와의 애정 넘치는 재회. 그 다음날 정원에 겨우 나온 밥은 그곳에 서커스 단원이 있음을 본다. 그것은 아버지가 밥과의 약속을 파기한 날 밥이 꿈꾼 광경 그대로였다. 브라이언을 꽉 껴안고, “이것을 잊지 말라”고 속삭이는 밥. 인생의 기쁨과 사랑에 둘러싸여 밥은 죽어간다.

죽음을 뛰어넘는 애잔하고 아름다운 이 사랑 이야기는 ‘사랑과 영혼’의 각본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브루스 조엘 루빈의 감독 데뷔작. ‘사랑과 영혼’에서도 보여준 애절한 사랑의 테마에 영원히 이어져가는 생명이라는 요소를 가미해 가슴이 아리도록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밥과 게일의 부부애. 빌과 밥, 그리고 브라이언까지 3대에 걸친 부자의 사랑과 굴레. 살아가는 의미와 기쁨, 그리고 면면히 이어져 가는 생명의 빛. 그러한 고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테마를 정면으로 도려낸 작품이다. 또한 소도구(비디오 카메라로 죽어가는 자신을 남긴다는 아이디어에서 영화가 탄생)와 오리엔탈리즘(중국 의사의 등장은 동양의 판타지라기보다 중국 한의학에 대한 구미의 관심 표명)이 현대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마이클 키튼의 연기는 출중하다. 몸이 쇠락해가는 한편으로 마음은 풍부해져간다는 복잡한 정황을 미묘한 표정으로 훌륭하게 표현한 것이다. ‘비틀쥬스’ ‘배트맨’이라는 약간 인간답지 않은(?) 캐릭터나 ‘퍼시픽 하이츠’ ‘헛소동’에서의 이상한 역이 인상적인 키튼이지만 이 작품에서 오랜만에 유머러스하고 온화함이 스며 있는 캐릭터를 표출해 신선함을 준다.

게일을 연기한 니콜 키드만 또한 연기에 눈을 뜬 느낌. 헐리우드 데뷔작 ‘천둥의 나날’에서 ‘파 엔드 어웨이’까지의 개성 강한 미녀라는 고정 이미지에서 탈피해 우아하고 애정이 넘치고 사려 깊은 아내를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