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 1994.07.작품

영화감상/ 길버트 그레이프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때로 너무나 무겁다. 더구나 자기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무거운 짐을 자기 혼자 떠맡을 때 세상의 무게는 너무 벅차서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하게 만든다.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길버트 그레이프’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 영화의 원제 ‘왓스 이팅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이다. 직역하면 ‘무엇이 그렇게 길버트 그레이프를 괴롭히는가’이다.

영화의 배경은 인구 1,091명밖에 안되는 아이오아주의 엔도라라는 작은 마을. 이 마을에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착한’ 소년이 살고 있다. 그는 작은 슈퍼마켓에서 일하면서 아무런 꿈도 없이 매일매일 버틴다. 길버트 그레이프가 꿈이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길버트의 아버지는 어느 날 가족들을 부양하며 사는 것이 싫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쇼크를 받고 그때부터 집을 나가기를 거부하고 거식증에 빠져든다. 그래서 몸무게가 210kg이나 되는 뚱보가 되고, 이 작은 마을의 공공연한 놀림감이 된다. 어머니의 별명은 ‘고래 아줌마’이고, 그녀는 길버트의 커다란 짐이다. 그뿐이 아니다. 남동생 어니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박약아여서 형 길버트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한다. 걸핏하면 높은 데로 올라가 말썽을 일으키고, 동네 경찰들은 어니라면 고개를 흔든다. 의사는 어니가 18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이제 어니는 열 여덟번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길버트의 누나는 34살인데도 시집갈 생각은 안하고 집안 뒤치다꺼리가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막내 여동생 엘렌은 16살이 되면서 가족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저 멋내기에만 열심이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그저 이것이 자기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살아간다. 가끔은 너무나 짜증스러워져 화도 내보지만 마음 약한 길버트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른다.

그런 길버트 앞에 미시간 출신의 소녀 베키가 나타난다.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여행용 버스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녀는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난다. 그녀를 만나자 길버트는 갑자기 무기력하고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에게 첫사랑은 절망과 좌절로 찾아온다.

하지만 길버트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를 모른다. 천사 같은 베키가 ‘너의 꿈은 어떤 거야’라고 물어도 길버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저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할 뿐이다.

그런 길버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니의 열 여덟번째 생일이 무사히 지나자 비로소 안심한 어머니는 숨을 거둔다. 온 가족이 모여 어떻게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를 고민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가 마을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200kg이 넘는 어머니를 집에서 끌어내기 위해서는 크레인이라도 필요한 판국이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은 어머니와 함께 집을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집을 보면서 길버트는 비로소 저 무거운 가족의 무게로부터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는 이제 어디로든지 갈 수 있다. 세상 어디로든지.

스웨덴 감독인 라세 할스트롬은 끔찍하리 만큼 가혹한 이야기를 마치 동화처럼 그려나간다. 그는 출구가 막힌 20대 청년의 아무런 희망도 없는 나날의 무기력함 속에서 일종의 휴머니즘의 희망을 보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자신의 주인공에게 희망을 거두어 감으로써 거꾸로 우리에게 여전히 세상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살아갈 만한 희망이 있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미 그는 전세계 16개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낸 ‘개같은 내 인생’에서도 ‘거의’ 버림받은 한 소년의 고독한 어린 시절을 마치 우화처럼 그려내어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라세 할스트롬은 세상을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의 주인공들이 마주치는 것은 가난함의 굴레이다. 그 굴레는 마치 사슬처럼 얽혀 있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기다린다. 마치 마법에 의해 저주가 풀리기를 기다리듯 무한정 기다린다.

그리고 동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그 저주가 풀린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라세 할스트롬이 진정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대목이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이제 홀가분하게 가족과 작별을 하고 떠난다. 그러나 그는 행복한 것일까? 그 작별은 길버트 그레이프가 이제 집 없는 떠돌이(Homeless)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진정 가혹한 운명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길버트 그레이프’는 90년대 미국에 대한 어두운 비전이며 기형적으로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의 동화이다. 라세 할스트롬은 헐리우드에 와서 영화를 만들면서 이 거대한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