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L Cinema Club』 2002.07.12.Tip

영화교실

實踐的 깐느 映畵祭 旅行 가이드 북, 두번째 이야기

여차저차하고 저차여차해서 하여튼 깐느 영화제에 오면 당신이 제일 먼저 가야 할 곳은 아크레디따시옹 카드를 발급받는 곳이다. 크게 ''Accreditation''이라고 써 있는 건물을 찾으면 된다. 우선 당신이 해변을 바라보고 가장 큰 건물이 뤼미에르 극장이다. 이 곳은 공식상영극장이며, 그 오른쪽이 그랑 빨레 이다. 그리고 그 오른 쪽이 클로드 드뷔시 극장이다. 그 사이에 여행 가이드 센터가 있다. 드뷔시 극장 오른 쪽을 보면 거기에 아크레디따시옹 발급 사무실이 있다.

거기서 카드와 함께 가방을 줄 것이다. (머, 좋은 가방은 아니고 그냥 홑 비닐 천으로 된 가벼운 가방이다) 그 가방 안에 영화제 공식 캐털로그와 상영작들의 상영극장 일정표와 장소가 적힌 가이드가 들어 있다. 이걸 잃어버리면 다시 주지 않으니까 잘 보관해야 한다. 한가지 당부의 말씀. 깐느 영화제는 도둑들과 소매치기들의 천국이다. 아차 하면 가방 잃어버렸다는 사람은 부지기수이고, 지갑 도둑 맞은 사람은 아침 인사 뉴스이며, 심지어 프레스 센터에서 노트북으로 원고 쓰다가 커피 마시러 15초 자리 비웠다가 돌아오니 이미 도둑 맞은 다음이라는 이야기는 단골 메뉴이다. 그러니 단 일분이라도 가방을 몸에서 떼어놓으면 그건 그 가방을 버리겠다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가방을 의자 아래 두었다가 잃어버렸다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게다가 가방을 뒤로 차거나, 아니면 뒤로 매는 가방을 하는 것은 지갑을 도둑맞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잃어버리고 나서 당신이 울고 있어도 옆의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그저 위로하는 것뿐이다. (나는 잃어버린 가방을 다시 찾았다는 사람은 그 많은 사례 중에서 단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러니 항상 정신을 바짝 차리실 것. 가장 심한 사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가 잠깐 졸았는데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이 없어진 경우도 있다. 이런!

이제 그 카드와 가방을 받고 난 다음 막막하면 우선 깐느 영화제에 차려놓은 한국영화 진흥위원회 부츠를 찾아가서 무조건 물어보는 게 최고다. (물론 당신이 유창하게 불어를 한다면 그냥 다니면서 영화제 가이드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이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한다. 그리고 물어본다고 해서 이 가이드들이 항상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도 않는다. 정말 최소한의 정보만 알려준다. 그 다음은 네가 알아서 하려무나, 라는 태도는 프랑스 사람들의 당신에 대한 인격 존중 방식이다. 그 놀라운 앵디비뒤알리즘(個人尊重主義)이라니.) 부츠는 영화제 뒤편의 깐느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는 카드 없이는 들어갈 수 없으니 일단 카드를 받아야 한다. 별로 찾기 어렵지 않은데, 찾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단 그랑 빨레 안에 들어가서 지도를 보는 것이다. 그러면 Pavillion 이라는 장소가 있다. 거기 근처만 가면 무조건 찾을 수 있다. 그게 자신이 없으면 일단 그랑 빨레 안으로 들어가서 마켓 부츠를 찾아가 그냥 헤매면 한국 부츠가 눈에 띄거나 한국인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물어 보라. (영진위 말에 의하면) 이 장소를 장기 임대했으니 이 글을 당신이 5년 후에 읽어도 이변이 없는 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사람들은 외국에서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도 그렇게 친절해질 수가 없다. 단일민족의 정서?) 게다가 여기에 가면 음료수와 물을 ‘공짜’ 로 마실 수 있다. (이게 뭐 중요하냐구? 하루에 80센트 정도 되는 물을 세 통씩 마시면서 매번 1 유로가 잔돈이 되기 시작하면 이게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불현듯 떠올릴 것이다) 프랑스는 이번에 유로가 되면서 처음 가보았는데(이제는 프랑스 프랑을 사용하지 못하는 가게가 많다) 물가가 정말 살인적이다. 그래서 나만 그렇게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 친구의 이야기인 즉 실제로 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프랑스 프랑을 유로로 바꾸는 과정에서 (예를 들면) 10 프랑이 유로로 바뀌면서 영점 구십팔점 얼마 유로가 되면 그냥 모두 반올림해서 일 유로 하는 식이 되었으니 물가 전체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게다가 유로가 프랑스 프랑의 열 배 단위여서 이제 백 프랑이었던 것이 십 유로 전후가 되면서 사람들은 쉽게 손이 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전이면 비싸다고 생각한 것이 갑자기 싸게 느껴지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가 전반적으로 불경기이다. 이건 깐느에서 막연하게 느끼던 것을 파리에 오니 거의 피부로 느낄 정도이다. (정말 이 년전에 왔을 때와는 천양지차이다. 그때는 겨울이었는데도 활기찼던 것에 비해 지금은 파리에서 가장 날씨가 좋다는 초여름인데도 사람들은 어둡게 느껴진다. 그저 하루 이틀이 아니라 벌써 이주일째 파리에 머무는 중이다) 깐느에서(건 파리에서건) 기다란 막대 빵에 이거저거 집어넣은 빠니니라는 간단한 요기 거리가 보통 3 유로에서 4 유로 사이이다. 음식점에 들어가면 기본적으로 10 유로(일만이천원 정도?) 이상을 각오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쓰는 이유. 당신이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아니라면 떠나기 전에 우선 가계부를 쓰고 떠나야 한다. 가능하면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고 현찰은 만일 위해서 항상 여유 있게 갖고 있는 것이 좋다. 한가지 더 참고로. 지금 파리에서 영화 값은 막 개봉한 화제의 신작들은 8유로 정도이고, 소위 아트 하우스에서 하는 ‘철 지난’ 영화들은 6 유로 전후이다. 그리고 지하철 표는 1.4 유로이고, 10장을 단위로 사는 까르네(carnet)는 7.5 유로이다. (이 정보는 지금 어떤 여행 가이드북에도 없다. 아직 유로 이후의 프랑스 여행 개정판이 한국 어느 출판사에서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버스는 1.2 유로이고, 거리에 따라서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깐느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깐느 영화제의 부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깐느에는 크게 네 가지 부문이 있다. 경쟁부분과 주목할만한 시선, 그리고 감독 주간과 비평가 주간이다. 중요도는 이 순서대로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깐느의 공식 부문은 경쟁부문과 주목할만한 시선이다. 감독 주간과 비평가 주간은 서로 프로그래머도 다르고, 상영하는 극장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중에서 비평가 주간은 거의 ‘찬 밥’ 이다. 여기 온 기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정말 시간이 남거나 너무 앉아 있어서 운동을 하고 싶다면 다녀오라고 말할 정도이다. 매일 하루 두 차례 정도 그랑 빨레에서 왼편에 자리 잡은 3,000석 규모의 뤼미에르 극장에서 감독과 함께 공식 상영을 한다. 이건 표와 턱시도, 둘 다를 갖추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개막식과 폐막식도 모두 여기서 한다. 아침에는 기자들을 위한 시사를 한다. 그리고 그랑 빨레 오른 쪽의 드뷔시 극장에서는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의 공식 시사를 한다. 여기서는 표와 턱시도가 필요 없다. 카드의 등급에 따라 순서대로 들어가면 된다. 그랑 빨레 안에는 두 개의 별도 시사실이 있다. 3층에 살 드 바쟁(Salle de Bazin)이 있고, 5층에 살 드 부뉴엘(Salle de Bunuel)이 있다. 두 군데에서는 경쟁부문과 주목할만한 시선, 그리고 특별회고 상영작들을 기자들을 위해 시사한다. 살 드 부뉴엘에는 디지털 시사 시설이 있기 때문에 디지털로 온 영화들은 여기서 상영한다. (올해 깐느에는 디지털로 작업한 영화가 모두 네 편 경쟁 부문에 들어왔다. 마이클 윈터 바텀의 <24시간 파티 피플>과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 알렉산더 소쿨로프의 <러시아의 방주>, 그리고 지아장커의 <임소요/알려지지 않은 쾌락>이 그 영화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디지털로 작업했다는 것이며, 뤼미에르 극장에서 상영된 것은 그것을 다시 필름으로 옮긴 것이다. 이 영화들에 대해서는 일기의 다음 장에서 다시 이야기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분홍 카드가 우선이며, 파란 카드는 그들이 모두 입장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카드가 없으면 아무리 줄을 서 있어봐야 그냥 서 있다는 의의에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카드가 없으면 여기 그랑 빨레 자체에 입장이 안 된다) 이 두 군데 모두 좌석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빨리 줄을 서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 삼아서 나도 한번 짤렸다! ㅠ.ㅠ 결국 키아로스타미의 <10>을 보기 위해서 나는 다음날 다시 그 앞에서 줄을 서야만 했다) 한가지 깐느 영화제에 제법 여러 번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점. 마지막 날, 그러니까 수상작 발표와 함께 폐막식이 있는 날 아침부터 경쟁부분 전 작품을 다시 한번 상영한다. 그 스케줄은 마지막 날 전날 발표되고 비교적 이 날은 별로 경쟁 없이 볼 수 있다. 카드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러나 이미 많은 기자들과 마켓 담당자들이 깐느를 떠났기 때문에 오직 영화를 보는 것이 목표라면 차라리 후반에 가서 영화를 보고 앞부분에 놓친 영화들을 골라서 마지막 날에 몰아서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여기서 놓친 주목할만한 시선과 감독주간 전 작품은 바로 파리로 올라오면 일주일 후에 모두 다시 상영한다. 이 시사는 카드가 필요 없으며, 대신 입장료를 내야 한다. 다만 염두에 두어야 할 점. 폐막식 날 경쟁부문 상영작과 파리에서의 두 부분의 시사는 영어 자막이 없다. 그러니까 불어 자막만 있다는 이야기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 이 시사는 프랑스 기자들을 위한 것이지만, 일단 불어권 기자들에게도 열어 놓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경쟁부분과 주목할만한 시선을 버리고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의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입장은 훨씬 쉬어진다. 그러나 역시 카드가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감독주간의 영화들은 깐느 해변가를 등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가면 어마어마한 호텔들이 펼쳐진다. 여기에는 할리우드 영화사들과 국제적인 배급사들, 그리고 대형 스타들이 머문다고 한다. 그랑 빨레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으면 노가 힐튼이라는 호텔이 보인다. 이 호텔 지하에 자리한 상영관에서 감독 주간에 선정된 작품들을 한다. 여기서 상영하는 어떤 영화도 당신에게 턱시도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는 깐느의 공식부문에서는 일체 하지 않는 감독과의 대화가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가 관객들에게 “여러분은 여기 오실 때 턱시도가 없어도 감독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감독 주간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라고 외치자 일제히 관객들이 발을 굴러 환호하는 것은 공식 부문의 영화들만 보다가 여기에 오는 순간 느껴지는 이상한 행복감이다. 일종의 깐느의 해방구? 비평가 주간은 다시 여기서 5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더 걸어가면 보이는 마르티네즈라는 호텔에서 열린다. 이 두 개의 부문을 모두 무시할 수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거의 관심 바깥에 놓여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당신이 생각해 볼 만한 점. 깐느는 이 두 개의 부문이 갖는 상대적 소외감 때문에 신인감독의 데뷔작에 주어지는 황금 카메라상을 전 부문을 망라해서 그 해 깐느에 온 모든 데뷔작을 그 대상으로 하는데 주목할만한 시선보다는 감독 주간이나 비평가 주간에서 더 많은 수상작들이 나온 것은 결코 이 두 개 부문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멀리 한국에서 간 기자들에게 여기까지 관심을 가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일단 물리적으로 너무 멀다!

이렇게 장황하게 깐느 영화제에 관한 가이드를 늘어놓는 이유. 그건 어찌되었건 당신께서 한번 ‘직접’ 다녀오시라는 권유에서이다. 한국영화는 깐느 영화제에 대한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 이건 머리로는 되는데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는다. 물론 깐느 영화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제이다. 이 영화제가 만들어낸 신화는 국제적인 네트웍을 갖고 있다. 여기서 상을 받으면 (미국 전체는 아니지만 미국의 아트 하우스 문화를 이끄는) 뉴욕에서도 영향력을 지닌다. 또는 유럽 전체의 아트 하우스에서 배급될 가능성을 갖는다. 게다가 여러 영화제에 초대되면서 영화와 감독을 알리고 그 나라에서 배급될 기회를 갖는다. 물론 영화 안에 담긴 문화와 그 토대가 된 (영화를 만든 나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역의 역사(에 대한 그 나라)의 시선을 알려주는 채널의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신화의 재생산과 그 구조라는 인과관계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깐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니다. 깐느는 자기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 안에서 서방세계를 세계라는 이름으로 확대재생산한다. 이런 건 사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직접 가서 깐느 영화제를 보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화제를 앞에 내세우고 그 뒤편에 펼쳐진 거대한 마켓을 보아야 한다. 이건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의 시장 바닥이다. 펄럭이는 여러 나라의 깃발들. 그건 경쟁부문에 들어야만 그 나라의 깃발을 펄럭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바로 아래에서 영화를 파는 장삿꾼들은 하늘을 향해 눈길 한번 돌리지 않는다. 그것도 수십억원이 오가는 깐느는 결국(!) 시장이다. 가장 아름다운 해변가에는 새로운 영화를 팔려는 장사꾼들의 부츠 수 백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깐느에 조지 루카스가 <스타 워즈 2; 클론의 복수>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설명하기 위해 오는 것은 아카데믹한 학술이나 새로운 정보의 공유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여기가 유럽의 중요한 시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깐느는 앞에 예술을 내세우고 뒤에서는 결국 영화란 자본의 전쟁터이며, 그 안에서 팔리는 영화를 만들어야 살아 남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축제이다. 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진실은 영화라는 예술에 홀린 영혼들을 일깨워 줄 것이다. 저 약육강식의 잔인함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광과 매스컴들의 찬사와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가면을 쓰고 웃고 있을 때, 그 안을 거닐면서 우리들이 경쟁부문이라고 알고 있는 그 주옥같은 영화들은 그저 장식품에 불과함을 보아야 한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결국 사기인가? 그렇지 않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런 사기극을 위해 취재 경쟁을 벌이고, 그들의 ‘타협한’ 영화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는 것이 아니다. 경쟁부문의 스물 세 편의 자리에 오른 영화들은 바로 이 시장바닥에서 장사꾼들의 돈을 갖고 기어이 영화를 예술에로까지 끌어올린 자들의 명예의 전당인 것이다. 영화는 정말 예술이 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광학 기계장치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자꾸만 휘황찬란한 구경거리를 보고 싶어하고, 거기에 자꾸만 돈이 들어가고, 그 돈을 들고 장사꾼들이 끼어 들고, 매스컴은 떠들썩한 화제 거리를 요구한다. 그렇다. 그 안에서 예술가들은 피를 흘리며,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대해 그 어떤 의미 있는 형상과 윤곽을 만들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경쟁부문에 올라온 모든 영화를 존중한다. 거기서 몇몇은 물론 가짜이다. 또 몇몇은 동시대의 요구로 인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서둘러 매스컴들은 흥분할지도 모른다. 사실 영화제는 진정한 걸작을 놓치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그 집단적인 흥분. 게다가 몇몇 저널들과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의 글이 우리를 홀린다. (모두들 매일 아침이면 저널들 뒤에 실린 별점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또는 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일곱 편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앞에 본 영화들과 뒤에 본 영화들이 서로 뒤섞이기 시작한다. 거기에 체력의 한계가 더해진다. 잠이 부족하고,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면(이건 영화가 어려워서라기 보다는 영화를 보는 사람의 무식함 때문일 때가 많다. 사실 아랍어권 영화들과 아프리카 영화들은 우리가 뒤따르기에는 아는 게 너무 없다. 또는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의 영화. 사실 우리는 미국과 유럽, 극동 아시아에서 한 걸음만 나가면 잘 모른다) 이제는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밀려오는 잠과 싸워야 한다. (영화제를 가 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잠과 싸우면서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인 것을. 옛 어른들의 말씀. 자기와 싸움이 가장 어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그 가짜에조차 이르지 못한다. 또는 자기의 동시대로부터 너무 멀리 나아가서 사실상 우리들과 아무 상관없는 영화를 만들고 혼자 좋아한다.

영화의 영원한 모순. 그 시장과 예술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모습을 당신은 깐느에서 보고 경험해야 한다. 당신은 깐느에 한번 다녀오고 나면 영화에 대해서 당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갖게 무장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영화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들을 경멸하지만, 동시에 영화를 오직 예술로 다루려는 견해에 대해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또는 영화를 시장의 틀 안에서 다루는 자들을 증오하지만, 영화를 문화의 취향으로 생각하는 이들을 경계한다. 나는 정말 머리로는 그걸 말하면서도 깐느에서 그걸 눈으로 보고, 발로 생각하고, 머리로 부딪쳐보기 전에는 마음 한구석에 이상한 예술지상주의의 결벽증이 있었다. 나는 그 귀신을 깐느에서 쫓아냈다. 깐느가 자리한 코트 다 쥐르의 아름다운 해변가에 심금을 울리는 저녁 석양이 질 때 나는 여기서 브레히트의 말을 떠올렸다. 예술은 영화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영화는 예술을 필요로 한다.

추신; 이 글에 이어 깐느에서 본 영화들과 파리에서 본 영화들에 대한 일기를 공개할 생각이다. 물론 수상작들이야 잘 알고 계실 것이며, 만일 아직도 모르는 분들은 깐느 사이트나 씨네 21(http://cine21.hani.co.kr)에 접속해보시기 바란다. 한가지 더. 다시 한번 부탁드리지만 당신께서 내년에는 꼭 깐느 영화제에 가셔서 이 모든 것들을 체험하고 무장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