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MOVIE』 1995.04.작품

IQ 75 깡패와 바람둥이와 협장꾼의 탈옥수,

또는 올해의 오스카 주인공들

영화광들의 즐거운 '게임의 계절'이 왔다. 매년 아카데미 후보작들이 발표되고 나면 이제 한달동안 수상작을 놓고 내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년간 게임값을 문 경험(!)의 노하우가 동원된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실력있는 영화평들도 나침반 노릇을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것을 비판하려는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런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야말로 아카데미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고, 더 나아가 헐리우드의 계략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정부분 이러한 비판은 여전히(그리고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아카데미 후보들을 놓고 정답을 맞추려는 예상답안지(?) 작성보다는 올해 아카데미 위원들의 시대정신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따져보기로 하자. 그러기 위한 첫번째 질문, 정말 아카데미상은 헐리우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짐 호버만이 명쾌하게 대답한다. 아카데미상이란 헐리우드 상업주의에 대한 '정신적' 면죄부이며, 일년 내내 돈 벌 궁리를 하던 제작자들과 스타들과 감독들이 '딱 하루만' 이라는 조건을 걸고 진지해지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카데미상은 사실 헐리우드의 대외 홍보용 선전의 장이며, 또 한편으로는 헐리우드에서도 심각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일종의 푸닥거리와도 같은 제의식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으로 아카데미상에서 수상 후보작이라고 올려놓는 작품들은 또 다른 말로는 헐리우드 방식으로 걱정하는 우리 시대에 관한 근심인 셈이다.

그렇다면 두번째 질문, 헐리우드는 단지 과시용으로만 아카데미상을 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아카데미가 돈을 벌어주지 않는다면 이토록 거창하고 심각한(한번 생각해보라. 일년 내내 만드는 영화들에 비해 이날 하루는 얼마나 진지한지!) 영화수상식을 벌일 이유가 없다. 아카데미는 이미 흥행에 끝난 영화들이 비디오로 출시되기 직전에(또는 직후에) 벌이는 대대적인 홍보행사이다. 사람들은 후보에 오르면 '놓친 영화'를 보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른다. 이보다 더 확실한 리바이벌 행사가 또 어디에 있을까? 게다가 전세계에 뻗어나간 헐리우드영화의 위력을 앞세워서 전지구적 영화 세일에 나선 직배사들의 주가를 한층 올려준다.

그러니까 아카데미상은 한편으로는 헐리우드 영화에 대한 성찰이며 또 한편으로는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파격적인 돌파구이다. 이제 남은 일은 어떻게 그 성찰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돌파구를 막다른 골목으로 만드는가라는 의무가 우리에게 남는 것이다.

아카데미를 위해 준비한 기성복,

<포레스트 검프>

올해 아카데미 후보 중에서 가장 많은 부문에 오른 영화는 로버트 저멕키스의 <포레스트 검프>이다. 인생이란 초콜렛 상자 속의 초콜렛 같다고 믿는 IQ 75의 포레스트 검프가 한국전 이후 베트남을 거쳐 90년대로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려낸 자서전이기도 한 이 영화는 이미 3억불 흥행수익을 넘어선지 오래이다.

자, 이 영화가 놀랄만한 상업영화인 것은 입증되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그런데 정말 좋은 영화이기도 한 것일까?

여기서 아카데미의 '좋은' 영화에 대한 기준이 그 어느 영화에서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헐리우드에서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하는 10계명이 있다. 그 첫번째, 주인공이 착하고 선량하며 여자들에게 친절한 백인 중산층 '기독교' 신자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WASP(White Anglo Saxon Protestant)의 이상형 남자(여자라면 거의 그 꿈을 이루기 어려움)여야 한다. 두번째, 대사가 좋아야 한다. 다른 말로는 욕설(fuck, shit etc)이 나와서는 고상하지가 않다. 세번째, 누구나 보고(세살부터 여든까지?)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네번째, 피를 보고 싶지 않다. 본다 하더라도 주인공이서는 안된다. 다섯번째, 영화의 중심에는 로맨스가 있어야하며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가치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여섯번째, 히트곡이 나오거나 올드 팝이 나와야 한다. 입장료가 비싼데도 오신 영화팬들에 대한 서비스. 일곱번째, 악당이 나오지 않거나 나오더라도 중간에 개과천선하면 용서한다. 악당이 끝까지 악당이어서 죽는 것은 '천박한 상업영화'의 끝이다. 여덟번째, 여자는 주인공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아홉번째, 철학적 대사는 적을수록 좋다. 열번째, 해피엔딩을 암시하며 '은근하게' 끝내는 것이 좋다.

<포레스트 검프>는 아주 오랜만에 이 모든 게임의 규칙을 지킨 영화이며(사실 프랭크 카프라의 홈 드라마 이후 거의 사라진 전통이다), 아카데미의 노인들은 아주 흡족하게 이 영화에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꾸로 <포레스트 검프>에는 의심도 있다. 잘 알려진 이데올로기 영화비평의 틀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혹시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아카데미의 입맛에 맞게 '조작된' 영화는 아닐까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포레스트 검프>를 보고 있노라면 기성복 옷을 입은 기분이 자꾸만 든다.

헐리우드 올드 클래식에 대한 오마쥬, <펄프 픽션>

올해 아카데미상의 파격은 켄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을 올려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영화악동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단숨에 깐느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올리버 스톤과 토니 스코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써주었고, 최근 소식에 의하면 프로듀서까지 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쯤되면 90년대의 분더킨트(신동!)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그의 전작 <저수지의 개들>에는 눈길 한번 안주던 아카데미가 갑자기 <펄프 픽션>을 응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세에 밀려서 마지못한 선택이라고? 그렇지 않다. <저수지의 개들>이 지나칠 정도로 유럽 아트 필름의 패로디에서 출발한 영화적 사고의 편견이라면, <펄프 픽션>은 헐리우드 올드 클래식에 대한 오마쥬이다. 말하자면 두편의 영화는 전혀 다른 전통에서 타란티노 스타일의 웃음과 폭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펄프 픽션>의 파격적인 시간적 배열을 예외로 하면, 그 대부분의 것들은 헐리우드의 선배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는 이 영화를 니콜라스 레이와 더글라스 서크와 하워드 혹스와 돈 시겔의 비빔밥으로 만들어놓은 다음 단숨에 타란티노식 소스를 뿌려서 마치 새로운 요리인 것처럼 우리에게 들이민다. 이것은 모르는 척 속아주면서 먹어야 할 '맛있는' 만찬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긴 하지만 <펄프 픽션>은 아카데미의 원로회의를 소란스럽게 만들 많은 여지를 갖고 있다. 우선 지금까지 타부시 되었던 소란스러운 게이의 베드사이드 매너가 등장하고, 화면은 폭설이 난무하고, 걸핏하면 총을 휘둘러 느닷없이 시체가 줄을 이어 나아가고, 게다가 이야기도 터무니 없다. <펄프 픽션>은 타란티노가 거의 천재적으로 헐리우드의 과거의 꿈과 미래의 영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어놓은 고리이다. 그건 언제 풀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고리이다.

영국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영화로 전향한 시나리오 작가겸 감독인 마이크 뉴웰의 <네번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은 영국적 유우머를 지닌 헐리우드 30년대 소프 오페라풍의 코미디의 재판이다.

영국의 전통안에서 연주되는 헐리우드 필름 시스템, <네번 결혼식과…>

언제나 결혼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결혼이 이 영화에는 무려 네번이나 등장한다. 마이크 뉴웰은 에른스트 루빗치와 빌리 와일더의 코미디 시츄에이션을 여기서 절묘하게 패로디한다. 겉보기에는 영국 남자와 미국 여자 사이의 결혼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전통 속에서 어른이 된 두 사람이 단지 사랑만으로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가 궁금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여기서 그런 심각한 전통의 차이와 충돌같은 것은 없다. 그 대신 마이크 뉴웰은 놀랄 만한 발상의 전환을 이룬다. 이 이야기는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다시 만나는 내러티브의 반복이다. 그것을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그대로 다시 만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 영화는 재치있게 다룬다. 그러니까 마이크 뉴웰은 영국의 전통 안에서 헐리우드의 필름 시스템(film system)이라고 불리우는 영화적 구성체를 연주한다. 이제 영국 내에서조차 영국영화의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닐 것이다. 헐리우드의 아카데미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 쇼>는 누구나 아카데미 후보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또한 모든 사람이 결코 수상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 영화이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미 영화감독으로서도 헐리우드에서 가장 진지하고 진보적인 영화인의 대열에 올라섰다. 바로 그 점이 아카데미상의 집행부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음이 틀림없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솜사탕 이미지로 잘 알려진 스타였었다. 모두가 사회비판적인 내용에 열중하며 베트남 반전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에도 로버트 레드포드는 마치 로맨스에 열중한 귀공자처럼 보이는 배역만을 골라서 출연했었다. 그의 이름을 만천하에 알린 <내일을 향해 쏴라>는 모든 아메리칸 뉴 시네마 영화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노선을 지키고 있었다. '사이비' 반전영화 <우리들이 갔던 길(흔히 <추억>이라고 알려진 영화)>에서조차 그는 진보적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는 반대되는 이미지로 나약하고 안일한 해군장교로 나온다.

그런데 감독이 된 로버트 레드포드는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중산층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퀴즈쇼>는 '바보상자' 텔리비전에 빠져든 미국인들의 속물근성처럼 보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속속들이 파헤치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솜씨를 눈부시게 펼쳐보이는 영화이다. 때로는 깜짝 놀랄만큼 명민하게 핵심을 찌르기도 하고(대부분 그런 장면은 배우출신답게 존 터투로와 랄프 피네스가 혼신의 연기를 펼쳐보이는 대목이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과장된 제스추어로 화면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촬영감독, 마이클 발하우스를 너무 믿은 탓일까?), 그러나 로버트 레드포드는 이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지루한 정도로 이어지는 청문회 장면은 지금까지 전개되던 선악의 이분법을 일시에 포기하고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을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집단공범의 분위기로 이끌고 간다. 몇몇 아카데미 회원들은 텔레비전을 향해 통열하게 비웃음 솜씨에 박수를 치겠지만, 그러나 너도 잘못이 있지라고 뒤이어 받아치는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상을 안겨줄 만큼 오스카가 관대할 것 같지는 않다. 어찌되었건 뚜껑을 열어보면 알 수 있겠지.

# 독단과 편견으로 뽑은 1995년 오스카 리스트

작품상 · <펄프 픽션>

-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포레스트 검프>라고 우기고 있음. 그러나 <양들의 침묵>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더구나 작년에는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에 몰아 주었음. 그리고 올해에는 그 제자에게 상을 또 주겠다고? 스필버그는 <칼라 퍼플>로 12개 부문 노미네이션에 전부문 탈락한 적도 있음. 누가 아나. 뭐. <포레스트 검프>가 이 부문에서 신기록을 세우게 될는지.

감독상 · <펄프 픽션>

- 우선 두사람은 틀렸다. 아마도 아카데미 회원 중의 상당수는 <레드>의 크쥐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를 발음조차 못할 것이다. 그런 판국에 어떻게 투표용지에 기입할 것인가? <브로드웨이로 날아간 총탄>의 우디 알렌은 물론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날에도 뉴욕의 재즈 카페에서 열심히 무명의 뮤지션들과 연주에 심취해 있을 것이다. 오지도 않는데 상은 뭐하러 주겠어?

로버트 레드포드는 복병(!)이다. 그가 <퀴즈쇼>로 작품상을 놓친 것은 확실하지만 감독상은 종종 이변이 벌어지곤 했었다. <JFK>로 작품상을 놓친 올리버 스톤은 감독상을 받은 적이 있다. 만일 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을 받는다면 이제 그는 아카데미 회원들을 친구로 두었을 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은 사람은 이번에도 두명이다. <펄프 픽션>의 켄틴 타란티노와 <포레스트 검프>의 로버트 저멕키스이다. 그러나 분명 미국의 매스컴들은 화제거리를 몰고 다니는 타란티노를 더 밀고 있다. 감히 헐리우드가 매스컴의 추천을 거절할 수 있을까?

남우주연상 · 존 트라볼타 <펄프 픽션>

- 너무 <펄프 픽션>을 미는 게 아니냐구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선 명단을 훑어봅시다.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는 작년에 수상했는데 올해 또 받기란 일종의 기적을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필라델피아>로 심각한 연기를 했던 톰 행크스의 발 빠른 변신에 의외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는 아셔야지.

<조지왕의 광기>의 나이젤 호돈과 <노바리스 풀>의 폴 뉴만 중의 한명이 받는다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공감을 표시할 사람도 별로없을 것이다. <쇼생크 탈출>의 흑인 모건 프리먼은 그저 웃자고 올려놓은 후보이다. 헐리우드에서 가장 인종편견 심하기로 소문난 아카데미 회원들이 올해 일치 단결하여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남은 사람인 <펄프 픽션>의 존 트라볼타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잊혀질만하면 다시 돌아와서 안간힘을 쓰며 다시 정상으로 올라오곤 하였다. 심지어 이번에는 맨발로 무대에 올라 춤까지 춘다. 언제나 아카데미 회원들은 회원들은 칠전팔기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약하다.

여우주연상 · 제시카 랜지 <블루스카이>

- 가장 알쏭달쏭한 선택. 다른 말로는 그만큼 올해에는 출중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은 아씨들>의 위노라 라이더까지 올라올 것은 정말 후보자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톰과 비브>의 미란다 리차드슨은 조연을 맡기만 하면 당대에 따라올 사람이 없는데도 주연만 하면 가까스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별일이다.

이제 세 명의 각축전인데 수잔 서랜든은 영화를 잘못 택한 것 같다. <의뢰인>은 평이 나쁘기 때문에 그녀의 명연 상당 부분에 흠집을 내고 있다. <넬>의 조디 포스터는 이미 두차례(<피고인>과 <양들의 침묵>)나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니 이번에 놓치더라도 그렇게 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시카 랜지는 이번에도 떨어지면 벌써 세 번째이다. 만일 '도토리 키재기'라면 동정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면 받고나서도 썰렁하겠지?

<퀴즈쇼>, 날카롭게 파헤쳐진 미국 중산층의 속물 근성

매년 아카데미상에는 느닷없는 영화가 끼어 들어서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올해에는 <쇼생크 탈출>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아끼는 팬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팀 로빈스는 <밥 로버츠> 이후 이제 이쯤에 이르러서는 절정기에 오른 것 같고, 모건 프리먼은 그 팀 로빈스를 제치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다. 드라마도 탄탄하고, 마지막 장면에는 감동도 있다.

그러나 도대체 뭘 어쩌자는 말인가? <쇼생크 탈출>은 거의 다른 말을 할 것이 남아있지 않은 영화이다. 잘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으며, 건전하고, 그리고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이다. 그것을 기어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피터 트래비스는 94년 헐리우드 영화를 정리하면서 '올해처럼 볼만한 영화가 없었던 해가 없었다'라고 탄식한다. 심지어 그는 헐리우드가 이제 관객을 기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언성을 높인다. 도대체 세상에 입장료는 계속 오르는데 영화는 갈수록 형편 없어지니 헐리우드 말고 그런 몰상식한 장삿꾼이 있으면 나와보라는 것이다.

바로 그 말처럼 올해 아카데미상은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 잔치이다. 그 어느 쪽이 받더라도 그 누구도 거기에 항변할 자격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시인의 말처럼 이제 잔치는 끝난 것일까?

그러나 올 여름을 위해 헐리우드는 이미 인디언 소녀의 모험담을 그려낸 월트 디즈니의 <호카 폰타스>,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 1억 5천만불이 들어간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워터 월드>, 브루스 윌리스가 옛 컴비와 등장하는 <다이 하드 3>, 그리고 폴 바호벤이 준비한 비장의 시나리오로 완성한 <쇼걸>이 차례로 선보일 것이다. 물론 내년 아카데미 상과는 거리가 먼 영화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