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PLAZA』 1994.02.작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케빈 코스트너,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라 던 주연

퍼펙트 월드
A Perfect World

'미국인의 몽상에서 실현된 완벽한 세상' 세상의 부조리와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굶주렸던 탈옥수와 그의 인질이 된 일곱살 소년. 이들이 세상의 편견을 뒤로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친구요, 아버지 그리고 아들이 된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작년 아카데미영화제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세계관이 깊숙히 녹아든 '퍼펙트 월드'에서 현재 미국인이 바라는 완벽한 세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헐리우드 영화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일종의 거대한 '미스테리'이다. 그는 올드 팬들에겐 그저 이탈리아 마카로니 웨스턴의 건맨('황야의 무법자')이 아니면, 샌프란시스코의 냉혹하고 외로운 형사('더티 하리')였었다. 그는 결코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였었던 적이 없다. 시사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정치에도 야심이 있는 배우이며, 그래서 '제2의 레이건'을 노리는 인물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영화비평지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의 입장은 다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야말로 90년대의 영화예술가이며 위대한 작가인 것이다. 그는 영화배우로 시작해서, 프로듀서를 거쳐서, 이제 영화감독의 자리에 오른 진정한 의미에서의 '거장(Master)'인 것이다. 그건 이유가 있는 칭찬이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데뷔해서 영화감독이 되었노라고 수다를 떠는 철부지 '천재소년'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그야말로 영화가 무엇인가(앙드레 바쟁의 그 유명한 질문)라는 물음에 대한 오랜 준비와 경험을 거쳐서 이 자리에 이른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주 신중하게 영화감독을 준비해 온 것 같다. 그는 이미 72년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로 감독에 데뷔하였다. 그후 코미디와 서부극, 전쟁영화, 뮤지컬, 멜로드라마, 전기영화 등 온갖 장르의 영화들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위대한 재능은 80년대에 들어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찰리 파커의 자서전적인 영화 '버드'와 포스트 모던 웨스턴인 '페안 라이더', 그리고 존 휴스턴 감독에게 바치는 '백인 사냥꾼, 흑인 심장(비디오 출시명 '사냥꾼의 심장')'은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겨누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 비하면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헐리우드영화사상 전인미답의 세계에로 들어선다. 바로 장르의 리얼리즘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것은 정말 몇명의 거장들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연출의 세계이다. 장르 속의 주인공이 바로 자기의 세계 속에서 변화하는 현실의 시간을 경험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시체를, 자기의 고해성사를 지켜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란 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 꿈 속에서 불현듯 깨어나서 그 꿈을 다시 천천히 기억해낸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바로 깨어 있는 몽상이다.

그것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38번째 주연영화이자 16번째 감독 작품인 '퍼펙트 월드'에서 한껏 끌어올린다.

이제 여기서는 영화와 현실, 역사와 주인공, 픽션과 리얼리즘, 장르와 진실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영화는 1963년 10월 31일 밤, 할로윈 데이에서 시작한다. 그날 밤 형무소에서는 버치 레인즈(케빈 코스트너)와 키쓰가 탈옥에 성공한다. 그들은 마을로 도망치다가 발각당하자 7살난 소년 필립을 인질로 유괴하여 달아난다.

배경은 텍사스. 이곳에서는 주지사 선거가 한창 진행되던 중이어서 이 사건은 커다란 파문을 불러 일으킨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한 주지사는 이 사건을 조속하게 마무리 지으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이런 수색의 전문가 레드가넷 보안관(클린트 이스트우드)이 심리학자 샐리(로라 던, '쥬라기 공원'에 나온 공룡전문가 여자 박사님)와, FBI에서 파견한 저격수와 한 팀이 되어 대대적인 추적을 시작한다.

이제부터 쫓기고 쫓는 추적극이 시작된 것인가? 만일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다. 이제 여기 어두운 과거가 드리워진다. 레드 가넷 보안관은 버치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버치가 청소년이었던 시절 경범으로 그를 체포했었던 일이 있었다. 버치가 그렇게 큰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만일 짧은 형기를 마치고 다시 결손 가정으로 돌아가면 더 큰 범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에게 중형을 선고받게 한다. 버치의 탈주극에서 레드 가넷 보안관은 결코 '무혐의' 가 아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 축. 버치는 일곱살 난 소년 필립을 유괴하고 도망치다가 서로 이상한 우정에 이끌린다. 필립은 아버지가 도망치고, 거의 종교 광신도인 여호와의 증인 교도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그는 교리에 따라서 솜사탕을 먹어본 적도 없고, 유원지에 간 적도 없으며, 그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탄 적도 없었다. 버치는 그 모든 것을 필립에게 베풀어주고 싶어한다.

이 얼마나 모순된 세상인가? 추적하는 자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도망치는 자는 자선사업이라도 베풀고 있는 것처럼 풍요로운 여행이 된다. 그들은 마치 두명의 아버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퍼펙트' 한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 그들의 희망은 세상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퍼펙트' 한 세상과 '퍼펙트' 한 아버지는 결코 한 자리에서 만나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 최선을 다하지만 더욱 잘못 될 뿐이다.

그 실패의 의미는 무엇일까?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바로 여기서 마술을 부린다. 이 영화는 1963년 10월 31일 할로윈 데이 성인의 날 전야에서 시작해서 11월 1일 성인의 날에 끝난다. 누가 어른이 되는가? 물론 일곱살 난 소년 필립이다. 그렇다면 버치가 필립을 이끌고 텍사스 북동부 국도를 따라서 알라스카로 도망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클린트 이스트우는 여기서 미국의 실패한 역사를 본다. 버치가 도망치는 텍사스 북동부 끝에있는 도시는 댈러스이다. 그리고 버치가 죽은 날로 부터 22일 후에 그 곳에서 존 F 케네디가 암살로 죽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패한 아버지, 실패한 설득, 실패한 도덕을 비스듬히 곡선을 그어 연관 짓는다. 케네디의 선거 공약 구호는 바로 '완전한 세상을 이루자(Let's make a Perfect Wrld)' 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그 죽음의 의미는 모든 실패의 시작이며, 잘못 나아간 미국의 출발점이었다.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지 않다. 그 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주 신중한 캐스팅을 한다. 'JFK' 에서 짐 개리슨검사(케빈 코스트너) 는 케네디의 암살을 밝혀내는데 실패하고 '사선에서'의 프랭크 경사(클린트 이스트우드) 는 그날 댈러스에서 케네디를 암살로 부터 경호하는데 실패한다. 그 두 주인공은 케네디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기서 다시 실패한다. 버치는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결국 필립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레드 가넷 보안관은 버치를 다시 한번 저격으로 부터 보호하지 못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예언된다.

결국 필립은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헬리콥터를 타고 고향으로 떠나간다. 그는 죽어가는 버치를 내려다 본다. 언젠가 버치는 이야기 했었다.

"너의 시대의 타임 머신은 헬리콥터지. 넌 그걸 타고 영웅이 될거야"

아, 우리는 댈러스에서 존 F 케네디가 죽고 나자마자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헬리콥터가 갖는 그 상징의 의미를, 리얼리티의 의미를 영화에서 수도 없이 보았었다.

그러나 아무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이렇게 영화와 역사, 주인공과 장르를 겹치면서 진실의 상징으로 까지 이끌어올린 그 짖궂은 유머와 우울한 이이러니로 헬리콥터를 본 적은 없었다. 때로는 아주 느리고, 부분적으로는 감상적으로 과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역사를 이야기하는 스타일이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거장의 고전적인 스타일들, 클린스 이스트우드는 보기 드물게 여기서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