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PLAZA』 1994.03.작품

카프카

힘겨운 내기. 프란츠 카프카라는 소설가, 더 나아가 그의 소설, 소설의 시대 정신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1994년에 정말 의미있는 일일까? 만일 들어간다면 누구의 도움을, 어떤 안내판을 따라서 그 정처없는 미로 속으로 들어서야 할까? 프란츠 카프카를 반대한 게오르그 루카치와, 마지못해 칭찬한 발터 엔야민과, 같은 노선에 서겠다는 잔 들뢰즈 중 누가 맞은 것일까?

▲ 1919년의 프란츠카프카에서 소더버그의 '카프카'에로 옮겨가는 그 경계는 바로 문이다. 칼라와 흑백, 표현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계사이를 넘나들며, 소더버그는 이 문만 열면 모든 것이 뒤섞인다고 굳게 민든다. 그것은 역사의, 영화의, 더 나아가 거짓과 진짜의 뒤섞임이다. 그래서 이제 영화는 거짓mensonge과 진짜verite의 역사기술historlographique이라는 문제와 마주치는 셈이다. 신역사주의?

▲ 프라하의 거리에서 화면은 헐리우드의 셋트장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 셋트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화면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시간여행이다. 1919년 프라하에서 헐리우드 셋트장으로, 그 셋트장에서 표현주의 영화속으로 화면위에 화면을 겹쳐서 화면의 표면은 시간의 주름위에 얹힌다. 이것을 들뢰즈라면 일종의 도피선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시대를 빠져나가 표류하는 것이다. 그 표류는 시간으로부터, 사건바깥에 우리를 위치지으려는 장치이다.

▲ 표현주의 영화 - Expressionist Film

제1차세계대전이후 독일에서 시작된 영화사조. 처음에는 회화에서 시작되고 독일의 예술장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내면세계와 외부 환경을 연관지어 내면의 정신적 비전의 외부의 풍경을 뒤틀고 휘어놓는다. 1919년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로 시작되어, 그후 프릿츠랑,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게오르그 파프스트 등 거장감독들을 낳았다. 그 후 2차대전 당시의 나치즘 탄압으로 표현주의 감독들은 헐리우드로 향했고, 이것을 필름 느와르(film noir)의 바탕이 되었다. 그렇다면 홍콩느와르는 표현주의 영화의 외손자쯤 되는 셈이다.

▲ 대물렌즈와 접안레즈가 만들어내는 이 경이적인 클로즈 업의 이미지위에, 그 어떤 다른 작가가 아니라, 바로 프란츠 카프카가 올라선다. 부조리의 모더니즘으로, 글쓰기의 소수문학으로, 문학기계로서의 배치로, 신체의 방향감각을 말소시키려는 카프카가 보는 이미지는 절개된 인간의 뇌수와, 망막신경이 보이는 눈동자이다. 생각한다와 바라본다는 바로 소설과, 영화사이의 오랜 싸움이 아니었던가? 소더버그는 화해하는 대신 그것을 부숴버린다.

▲ 무르나우 박사와, 독일표현주의 영화의 거장 빌헬름 프리드리히 무르나우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또는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과, 개조되어 항상 웃는 얼굴의 살인마들은 어떤 계보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소더버그는 왜 표현주의 영화의 시대 속으로 깊이 잠수하는 것일까? 혹시나 그것이 소더버그가, 표현주의 시대의, 나치즘전야의 그 불안 Angst의 의식에 지나치게 매료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 프란츠 카프카, 자신의 텍스트가 자신이 죽은 후에 없어지기를 소망했던 작가, 아버지에 가위눌리고 세번의 약혼과 세번의 파혼, 그리고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영혼이 증발되고 있다고 푸념한, 모더니즘의 전장터에 선, 그 한 쪽 구석의 소설가. 결코 죠이스나 프루스트, 엘리어트, 울프와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끈질기게 토마스 만과 맞겨뤄온, 아래에서 위로, 사회의 권력을 낱낱이 해부해보인 소설해부학자. 그리고 지금 소더버그와, 데이비드 린치가 존경을 바치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이라고까지 고백한, 영화시대의, 시나리오를 쓴 적 없는, 컬트 영화의 메타 시나리오 작가?!

좀 더 명단을 열거해보자. 왜 카프카의 '성' 은 결코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무루나우에 의해서 착수되었다가 실패했으며, 오손 웰즈는 기어이 헐리우드 유니버셜 영화사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심판'을 만들었을까? 스스로 영화의 브레히트라고 생각하는 장 마리 쉬트라우프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 이 아니라 카프카의 '아메리카, 계급관계' 를 만들었을까? 데이비드 린치의 신작 카프카의 '변신'으로 결정된 것은 얼마나 가까우면서 또한 멀리 있는 것일까?

그리고 마지막 질문, 왜 스티븐 소더버그는 90년대에 카프카에 관한 가짜 전기영화를 만든 것일까? 이것은 그의 카프카에 관한 사랑일까, 모더니즘에의 경도일까, 영화사의 거장들을 만나려는 영화광의 철없는 프로젝트일까, 아니면 카프카를 포스트 모더니스트라고 부르고 싶었던 것일까? 그래서 감히 카프카가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선언하고 싶었던 것일까?

스티븐 소더버그는 잘 알려진대로 프로그레시브 그룹 예스의 MTV로 데뷔한 시네 아스트이다. 그는 여기서 사진적인 편광필터를 이용하여 뮤직 비디오를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카메라 옵스큐라적인 공간으로 다시 재구성 하였다. 소더버그는 영화 바깥에서 영화를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데뷔작이자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89년)' 에서 아주 효과적이고 새롭게 보여진다. 이 영화는 결코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영화를 사고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었다. 소더버그는 영화 화면을 비디오 브라운관의 문법으로 대치하여 영화와 텔리비전, 그리고 비디오의 경계를 시선이 아니라 사운드로 쫓아간다. 그래서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대사의 제스츄어, 대사의 매너리즘, 대사의 시점이 중요한 것으로 다루어진다. 물론 그것은 소더버그가 영화가 아니라 MTV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영화를 대사의 MTV로 찍어볼 수는 없을까라고 과감하게 제안한 것이다.

적어도 그런 시도에 비한다면 '카프카' 는 지나칠 정도로 영화적이다. 마치 자신이 반(反)영화적이라는 의심이라도 받고 있는 것을 털어 버리기라도 하듯이 영화에 관한 영화에 대한 영화('그 울림의 울림')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좀더 정확하게 그는 영화의 역사에 관한 영화의 미학으로 그려진 영화 스토리에로 뛰어든다. 그러니까 '카프카'는 영화의 역사와, 미학과, 스토리가 서로 겹쳐지고 때로는 서로 반대 진술을 하거나 심지어 배신하는 영화이다. 소더버그는 여기서 카드 놀이라도 즐기듯이, 자기의 카드를 숨기고 우리에게 끝내 보여주지 않는 카드를 열어보라고 부추긴다.

우선 '카프카'는 프란츠 카프카에 관한 자서전이며, 또는 자서전이 아니다. 이 영화는 카프카의 1919년 바르샤바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리고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이 실물이며 또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참조하지만, 이 영화 속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이다. 그러니까 구체적인 인물의 실제하는 시간에 관한 가짜 연대기이다. 두가지 질문, 그렇다면 1919년의 인물 중에서 왜 카프카인가, 또는 카프카의 시대 중에서 왜 1919년 인가라는 두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소더버그가 정말 관심갖는 것은 카프카일까, 1919년일까?

1919년은 카프카가 그의 '변신'을 스고 있을 시기이다. 그는 아버지와 헤어진 상태이고, 약혼자와는 파혼하고 노동자 재해보험협회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전 해에 일차대전이 끝났고, 이듬해인 20년에는 경제공황이 시작된다. 19년은 아주 미묘한 시기이다.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이 결성되고,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된다. 1919년으 세계사가 변화하고 있는 일종의 단절같은 공간을 제공한다.

카프카는 여기서 소설을 쓰는 일을 중단하고 본의 아니게 살인사건을 뒤쫓는 탐정이 된다. 소설가에서 탐정에로 '변신' 한 그는 사건을 추적하다가 이것은 미스테리한 '성'과 연관되었음을 알고 그 속에 들어가서 '계급관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 소더버그는 이 사건의 발전단계를 아주 미묘하면서도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는 카프카의 사건을 카프카의 소설 모티브에서 빌려와 그것을 하나의 프로젝트, 연결고리, 내러티브의 배치를 이룬다.

그렇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카프카에 의존하여 카프카의 내면세계를 뒤쫓는 영화일까? 소더버그는 여기서 내용과 형식을 서로 다른 게임의 규칙위에 올려 놓는다. 터브는 전적으로 카프카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소더버그는 '카프카' 의 형식을 이 영화의 무대가 된 1919년으로 되돌린다. 1919년은 최초의 표현주의 영화라고 알려진 로베르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 만들어진 해이다. 게다가 로베르트 비네는 카프카와 마찬가지로 체코에서 태어났으며, 독일에서 활동하였다. 카프카는 언제나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작품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털어놓곤 하였다.

소더버그는 이 영화가 1919년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1919년에 만들어진 영화처럼 보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사용된 시각적 모티브들은 거의 대부분 표현주의 영화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조명이다. 조명은 대부분 표현주의 영화의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명은 대부분 인물보다는 배경, 배경보다는 건물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니까 건물이 인물을 내리누르거나, 또는 카메라가 정상적인 높이보다 항상 다소 높거나 낮게 배치되어서 그것이 드러나 보이도록 설계되어있다. 이것은 종종 인물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무리할 정도로 화면의 비례를 만들어나간다.

그런데 이 원칙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기묘한 순간이 벌어진다. 그건 바로 카프카가, 그 자신의 소설 '성' 속에서는 주인공 요셉 K(바로 카프카 자신!)가 한번도 들어가보지 못했던, 신비한 성속으로 들어가면서 정반대의 방법으로 그려진 영화화술이 펼쳐진다. 소더버그는 이 장면을 갑자기 컬러로 찍고, 그리고 색채의 대조를 크게 두어서 노란색과 푸른색을 기본으로 색설계를 한다. 성의 주인은 무르나우박사(표현주의영화의 거장 빌헬름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패로디) 였고, 그는 인간을 개조하여 관리사회에 맞는 조종인형으로 만드는 수슬을 실험하고 있었다. 카프카는 무르나우 박사를 보고 경악한다. 자신은 소설로 현실을 개혁하고, 무르나우박사는 그 현실을 바꾼다.

소더버그 방식의 유우머, 그는 바로 여기서 소설과 영화의 만남과 헤어짐을 그려낸다. 소설은 세상을 해석할 뿐이다. 그러나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은 영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표현주의영화는 잘 알려진 것처럼 히틀러의 등장을 예언했으며, 칼라영화는 헐리우드의 발명품이었다. 히틀러와 헐리우드? 그 둘은 같은 말의 서로 다른 표현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소더버그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갑자기 영화와 역사, 영화 속의 영화를 논쟁적으로 제안하다가 망설인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폭파시키고 끝내버린다. 그것이 바로 소더버그의 비전이다. 그는 모더니즘과 표현주의의 갈등 사이에서 무정부주의적인 선택을 한다.

이것은 '카프카' 속의 카프카를 병들고 지치게 만든다. 그는 각혈을 하고 아버지에게 화해와, 패배의 편지를 쓴다. 이제 카프카는 아무런 비전도 없이 자기의 세계로 더 깊숙이 빠져든다.

마지막 질문, 그런데 '카프카' 의 칼라장면은 카프카의 상상일까, 아니면 허구로서의 카프카의 현실일까? 소더버그는 그것의 경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오히려 모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칼라의 기본정의, 흑백은 상상하는 것이고 칼라는 현실이라는 것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라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허구가 되어야 하고, 그것은 칼라를 흑백으로 보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소더버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열렬한 지지자로 나타난다. 그는 세상을 다른 것으로 바꿔서 다시 생각해보길 권한다. 일시적인 속임수라고? 그러나 소더버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리얼리스트는 아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