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의 숭고한 영화들-‘산딸기’ ‘아이즈 와이드 셧’
생산인구가 모두 일을 하고 있는 한적한 시간에 지하철을 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끔씩 노인 분들이 전도를 하실 때가 있다. “내 말들 들어. 예수 믿어. 안 그러면 지옥 가‘ 대부분의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전도는 이 정도의 말투이다. 그리고, 그 분들은 그 말을 반복적으로 되내이며 빠른 속도로 통로를 지나가신다. 대부분의 전도는, 혹은 거리 선전이라는 것은 그 예견되는 상황, 진실을 알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계몽적 의지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분들의 전도에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분들은 절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려 하지도 않고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그 말을 하실 뿐이며 누구도 자신에게 물어보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통로를 지나가신다. 쑥스러움을 많이 느끼거나, 전도를 하기에는 말솜씨나 내공이 부족하신 분도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서울역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분들이나 지하철에서 지나가시는 노인 분들의 전도는 스스로의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한 독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구원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머리를 떠나지 않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러한 전도의 방식은 공포가 자신의 종교적 확신을 넘어설 때 나오는 강박적인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성이 파괴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이성이라는 것이 어떤 절대적인 정신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스스로를 지탱시키던 세상에 대한 균형감각정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병이 심하게 들었다거나, 이성(異性)에게 심하게 버림받았다거나, 혹은 외부인이나 조직에 굴복을 했을 경우에는 인간의 이성은 심한 상처를 입는다. 왜냐하면 그 이성적 판단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자신의 균형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결정적으로 무너져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떤 맹목적인 의지나 신에 대한 믿음, 물욕이 무너진 이성의 자리를 대신한다. 우리의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모조리 망쳐버리는 많은 강적들은 그 자리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맹목적인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가끔씩 L과 거장들의 실패작을 보며 이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은 것인가? 라고 안타까워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실패들은 단지 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과의 간극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실패하는 거장들은 몸에 맞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하거나, 쉽사리 이상한 감상주의에 빠지기도 한다. 스스로 어떤 강박관념에 빠져 버리게 되면서 그들은 일순간 무너지곤 한다.
내가 영화에서 본 가장 감동적인 장면들은 아무리 판단해도 신은 없기 때문에 신을 믿는 척 할 수 없는 자신을 쓸쓸하게 하지만 꾿꾿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장들의 모습이다. 이렇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 공포에 대해 아무런 해답 없이 오로지 죽어가고 있다는 것만 이야기하는 자신의 이성을 폐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것을 통해 서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거장들의 냉정한 시선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과연 내가 그 순간 그런 공포를 이겨 낼 수 있을까? 그에 흔들리지도 그렇다고 망각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을까?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 과 베르히만의 ‘산딸기’ 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큐브릭의 냉소적인 시선은 삶들 사이에 암초처럼 돌출되어 있는 죽음의 순간들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특유의 차가운 화면으로 그려낸다. 시체실에서 자신을 위해 죽은 여자의 시체를 바라보는 그의 카메라는 조금씩조금씩 다가서다 결국은 다시 물러선다. 베르히만의 ‘산딸기’ 에서 창 아래에서 잠시 길을 같이 했던 젊은이들은 다시 길을 떠나며 방안의 늙은 노인을 향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그런 장면에서 무엇이라 형언 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곤 한다. 아무렇게나 숭고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용서한다면 인간정신의 숭고함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히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유물론자이고 인간은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을 훨씬 더 쉽게 저지르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동물적 존재일 뿐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런 존재 자체로서 재미있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한다. 신체적 고통을 이겨내어 신념을 지키는 사람들 역시 내가 보기에는 숭고하다. 난 단 1분의 고문도 견뎌낼 자신이 없다. 또한 가끔 예술가들에게서 이런 정신의 위대함을 느끼기도 한다. 베르히만의 ‘산딸기’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 꼭 한 번 보시길 권해 드린다. 그들이야 말로 이성의 시대의 불행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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