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에 관한 글을 검색하다보니 아래와 같은 글이 빼곡한 사이트가 있더군요. 영화이론을 정립한다고 하는데 제가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인지 이론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올라와 있는 글들이 장난이 아니데요. 한번 가서 읽어보세요(
http://www.movism.co.kr/). 아래의 글은 그 사이트에 있는 글 중 좀 심하다 싶은 글입니다. 어찌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암튼 글 쓴 사람 보통내기는 아닌 듯 합니다. 약간 또라이 파...?
칸느의 오줌
얼마전에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계에서는 이를 경사로 받아들였다. 아마 국민 대부분이 그러했을 것이다. 전도연의 연기력에 관해서는 찬양 일색이었다. 이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은 인터넷에서도 단 한 줄 발견하지 못했다.
의사 부모가 자식을 대학에 부정입학 시키는 애틋한 심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자식에게 진정한 실력이 있건 없건 부모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요는 상을 타오느냐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타 왔으면 된 것이다. 너는 나의 소중한 딸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국민 여동생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하지만 영화 비평을 하는 사람은 - 국민들에겐 죄송하지만 - 그 딸이 진정 자기 실력으로 상을 받아왔는가를 문제삼는다. 그래서 부정행위가 발각이 되면 이를 인터넷에 폭로한다. 이렇게 되면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이 경우 그 두가지 가능성 중 영화평론가 스스로가 퇴출이 되는 케이스가 거의 99%다. 이것이 한국 사회이며 영화판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전도연의 연기의 문제점에 관하여 입 벙긋하지 못한다. 물론 찬양은 한다. 그런데 찬양하는 내용을 죽 읽어 보면 이건 무슨 기독교 찬송가 가사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데 훌륭했기 때문에 훌륭했다는 것 뿐이다.
글은 상대방이 읽고 이해하라고 쓰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전도연의 연기력에 관하여 그것이 훌륭한 점이 있다면 왜 훌륭한 것인지 국민이 읽고서 아하하며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이나 영화감독 내지 평론가 정도에게는 그 뜻이 와 닿아야 한다. 하지만 내용이 없다. 제목은 전도연의 연기력인데 내용은 찬송가 외에는 없다.
한국 평론가들은 연기가 리얼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신이 울어야 할 때 마음만 먹으면 저절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것이 연기자의 무슨 대단한 능력인 것마냥 착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의 연기자들 수준은 대략 그 정도 레벨이다. 이 레벨에서 배우도 감독도 평론가도 나아가 대학교수도 한 통속으로 서로 얽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한국의 영화계다. 그래서 전도연이 울어야 할 장면에서 그런대로 울었으면 전도연은 연기를 잘 한 것이고 칸느도 거기에 상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칸느가 전도연에게 상을 준 것은 전도연이 이창동 감독의 명령을 받들어 네 하고 엎드려 울었기 때문이 아니다. 칸느는 세계 12대 경제 국가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여우주연상을 준 것일 뿐이다. 만약 정말 연기력으로 상 받을 자격이 있었던 밀양의 연기자를 꼽으라면 송강호는 차치하고라도 가정예배 장면에서 전도연이 이제 하나님에게로 온 것을 엄숙히 맞이하는 장면을 연기한 어느 여자 단역 연기자일 것이다. 전도연의 연기력 수준은 그 단역만도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전도연은 상을 받아왔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전도연이 칸느에 다녀오기 전까지 전도연의 연기력을 그렇게까지 칭찬한 평론가는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두가지 추론이 가능해진다.
하나는 전도연이 밀양을 찍는 순간부터 갑자기 신의 은총을 받아 연기력이 급상승했다는 가설이 있을 수 있겠다. 그랬다면 일단 말은 된다. 전도연의 연기력이 갑자기 급상승한 것이 되고 한국의 평론가들의 평론 수준에도 들통날 것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도 비슷한 가설인데 그것은 전도연이 칸느 영화제에 참석에게 되는 시점부터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한국의 평론가들에게 은총을 내리사 그들의 연기력을 보는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가설이다. 이 경우에는 전도연의 연기력은 원래부터 훌륭했던 것이 되고 한국의 평론가들은 회개를 한 셈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영화계는 2008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칸느가 의도했던 대로 한국의 영화시장이 좀 더 유럽 친근적으로 바뀔지는 의문이지만 칸느의 감투 전략은 어느 정도는 효용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많은 연기자들이 나도 그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인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에 관하여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나도 전도연 정도의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맞다. 배우 지망생이라면 그 정도 연기 못할 까닭이 없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일반적으로 가능한 연기력일 뿐이다. 나아가 전도연의 얼굴이 특별히 반반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그러한 자신감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므로 나도 칸느에서 주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전도연이 그 동안 영화계에서 쌓아 온 인생역정을 극복해야 한다. 충무로는 무소불위의 감독들이 득실거리는 영화계의 588이다. 따라서 가급적 여자 감독과 인연을 맺는 것이 좋다.
물론 그 정도의 인생역정은 나도 감수할 수 있다고 각오할 정신력을 지닌 배우 지망생들도 있을 수 있다. 오히려 그 생활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좋다. 그렇다면 이제는 상 받을 준비가 다 된 것일까?
칸느가 상 주는 이유는 딱 두가지이다. 하나는 일반 전형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 전형이다. 먼저 일반 전형은 진정한 실력에 입각해서 상을 주는 경우인데 예를 들자면 엠마 톰슨이나 릴리 테일러 같은 진정한 연기파에게 주는 상이다. 뭐 이렇게 받는 상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므로 다음의 특별 전형에 관해서 알아보자.
강한섭 교수가 지적했듯이 칸느도 자본의 위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곳이다. 칸느는 현재 헐리우드라는 천적의 존재 앞에서 그의 비굴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비굴함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 공교롭게도 이번의 여우주연상 수상이다. 세계 제12대 경제국가를 자신의 편으로 그러 안아야 한다. 이는 절대적이다. 한국이란 의사 아버지는 칸느에 특별 전형을 신청했고 칸느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상을 수여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상 받은 사람이 한국에는 몇 명 있다. 예를 들자면 이창동 감독도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베니스나 베를린도 칸느와 큰 차이는 없는 곳이다.
하지만 상은 한번뿐이다. 두번은 주지 않는다. 칸느도 자존심은 있다. 그러다가는 학교가 특별전형 출신 학생들로만 가득차게 된다. 따라서 칸느의 권위에 큰 흠집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줄 수 있게 된다. 그런 계산 하에서 칸느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순방하며 감투를 하나씩 안겨 주면서 자신의 나와바리를 점검하는 것이다. 이는 개들이 전봇대에 오줌을 적절히 안분하여 싸고 다니는 것과 같다. 요컨대 이번의 여우주연상이란 한국이란 전봇대에 갈겨진 오줌 한 방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좋아라 하며 난리들이다. 평론가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오줌을 하나님의 성수로 착각하고 입을 아 하고 벌려서 맛있게 받아먹었고 결국 국민들의 입까지도 벌려버렸다. 그래서 밀양의 박스오피스는 제법 인파로 북적였다.
지금까지의 이 글의 내용에 대한 한국 평론가들의 반박이 있기를 기대한다. 단 그에 앞서 전도연의 연기에 있어서 어떤 점이 뛰어났는지에 관한 "내용"있는 의견 제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내용 없는 단순한 울분은 접수하지 않는다.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인지...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