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천국 > 2011.11.01.Vol.22 [웹링크], [PDF]
전 편집장, 편집위원의 영화잡지 제작 시절 회고담
이건 좋은 일이니까요 (정성일/ 전 <키노> 편집장 ·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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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나는 이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내 기억으로 그때는 문화의 백화제방이라고 부를 만한 시대였다. 그토록 짧았던 희망. 바보같이 모두들 그런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자본가들도 문화가 돈이 된다고 생각하고 문화의 담론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 시내에서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7만 명의 관객이 보았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를 15만 명이 보았다.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50만 명이 보았다. 보들리야르와 푸코의 철학이 어디서건 이야기되었다. 전투적 페미니즘의 담론이 퍼져나갔다. 그 즈음 커밍아웃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백가쟁명. 정확하게 그만큼 더 이상 레닌과 라틴아메리카의 종속이론을 사람들은 읽지 않았다. 주사파에 대한 팸플릿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何如歌)’가 실려 있는 그의 두 번째 앨범을 막 냈을 때의 일이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