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MDB > 영화지식 > 전문칼럼 > 임권택x101; 정성일, 임권택을 새로 쓰다 ]
장안명기 오백화 Obackhwa (1973, 임권택) (2013-02-06) [기사링크]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잡초>(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