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뢰검, 번개칼 A Precious Sword, A knife of Thunder (1969, 임권택) (2013-02-26) [기사링크]
“이 以上 더 재미있는 劍客映畵는 없다!” <뢰검, 번개칼> 의 포스터 맨 윗줄에 자리 잡은 단 한 줄의 영화 소개. 검객영화라는 자기 지시. 약간의 유머. 나는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가 떠올랐다. 무언가 여기에는 우리를 낭패스럽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둘 사이의 서로 피할 수 없는 관계. 검객영화라는 말. 검객영화로서의 <뢰검, 번개칼>. 두 말이 서로 딱 맞게 겹쳐지지 않을 때 나는 맞지 않는 그 모서리를 생각하는 중이다. 영화를 보여주기와 설명하기. 영화를 둘러싼 이미지와 문장. 이때 저 문장이 호금전의 <용문의 결투>를 설명할 때와 지금 임권택의 <뢰검, 번개칼>에 가서 달라붙었을 때의 차이를 생각하고 있다. 나는 단지 이쪽과 저쪽의 우열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나의 인용을 오해한 것이다. 왜 여기서는 저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까. 말하자면 저 문장의 세계를 이 영화가 담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여기 따라올 때 영화는 저 세계에 관한 만족할 만한 주석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두 개의 텍스트.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