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1976)
글: 정성일(영화평론가) / 2014-08-26 (기사링크)
먼저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래야 할 것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안하였다. 1969년 9월 14일 다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3선 개헌안을 변칙 통과시킨 다음 7개월 만의 일이다. 그 해는 모든 것이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시인 김지하가 당시 재벌,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군 장성, 장차관을 (을사보호조약 당시의 매국노에 비유하며) 담시(譚詩) 형식을 빌려 풍자한 시 <五賊>을 발표하자 이 시가 실린 문학지 ‘사상계’ 시판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 6월 1일 자에 이 시를 다시 게재하자 미리 정보를 입수한 기관원들이 6월 2일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새벽 1시 50분에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종로경찰서 경찰이 인쇄소에 난입하여 인쇄한 10만 부 전량을 강제 회수하였으며, 6월 20일 시인 김지하와 사상계 대표, 편집장을 “계급의식을 조장하고 북한 선전 선동물 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하였다. 7월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었지만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 시다공’ 전태일은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다음 분신을 하였다. 그는 그날 저녁 숨을 거두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