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KMDb』2015.10.19. 복부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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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부인 Mrs. Speculator

글:정성일(영화평론가) / 2015-10-19 (기사링크)

종종 임권택을 공격하기 위해서 ‘따분한 계몽영화’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이 단정적인 범주와 싸우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그건 공격적인 지시어를 꺼내 든 쪽도 마찬가지이다. 계몽은 매우 긴 철학적 토론의 역사를 지닌 개념이기 때문이다. 계몽은 두 갈래 길의 교차로에 서 있다. 하나는 합리주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지식 사이에 스며든 권력 장치의 작동방식이다. 물론 여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칸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칸트는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 다음 1798년 다시 한 번 약간 질문을 바꾸어 혁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았다. 그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쓴 「계몽의 개념」에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계몽의 방식에 몸서리쳤다. 계몽이라는 이름의 후퇴. 이 역설적인 패배. 우리들이 계몽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꺼내 들 때 대부분은 이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글은 다른 단상들과 함께 1969년 4월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하지만 푸코는 이 말을 재치 있게 뒤틀었다. 그는 계몽주의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계몽이라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이 질문(을 빌린 대답)을 읽은 사람들은 그런 다음 푸코와 하버마스 사이에 있었던 지적인 불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는 이 논쟁을 다루기에 적절치 않다. 하지만 나는 ‘계몽영화’라는 개념 속에 서로 완전히 대립적인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는 것만은 환기시키고 싶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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