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 Divine Bow
글:정성일(영화평론가) / 2016-03-10 (기사링크)
몹시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신궁>을 보러 간 날을 기억한다. 날짜는 떠오르지 않지만 그날의 날씨는 어제처럼 생생하다. 바람이 몹시 차갑고 메마른 하늘. 알 수 없게 스산한 공기. 애매하게 늦은 겨울 저녁. 그해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박정희는 서울 종로구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경호실장 차지철을 대동하고 술을 마시다가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갑자기 모든 학교는 휴교를 했고 처음에는 모두들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우리들은 다방에서 만나 한가하게 음악도 듣고 줄곧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죽이다가 헤어졌다. 통행금지가 있었고 이듬해 정치의 봄이 올 때까지 서울은 조용했다. 갑자기 서둘러 시작된 겨울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고 미아 삼거리에 있던 대지극장에 가서 <신궁>을 보았다. 나는 그해 봄에 ‘林權澤’을 발견했다. <족보>를 본 다음부터 이 이름의 ‘監督’ 영화를 모두 보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내 결심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아직 비디오나 DVD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셈에 포함시켜 주시기 바란다. 영상자료원은 영화진흥공사 산하 기구였으며 단지 필름을 ‘보관’만 했고 (지금과 달리) 어떤 영화도 상영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만을 방영했다. <신궁>은 내가 <족보> 다음에 본 임권택의 ‘두 번째’ 영화였다. 그래서 <신궁>이 개봉했다는 소식에 조금 흥분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