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정성일 평론가를 인터뷰 하다
글:유성관(한국영상자료원) / 2016-04-28 (기사링크)
#1.
1990년대에 영화의 매혹에 빠져들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정성일이라는 평론가를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내가 그를 인지하게 된 것은 잡지 「로드쇼」를 통해서였다. 잡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편집자들의 짧은 글이 사진과 함께 실렸는데, 늘 사진 속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편집 후기에서는 영화보다는 음악 이야기를 더 많이 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 남자가 정성일이었다. 90년대 초, 내가 다니던 근처의 대학에서 정성일 평론가가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몰려갔다. 강당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었고, 객석의 반응도 그닥 열광적이지 않았다. 강연의 마지막 즈음 U2의 어떤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며 독특한 영상기법을 설명하는 대목에서조차 반응이 없었다. 그때 정성일 평론가는 치욕적인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 오신 분들은 U2보다 김수희를 들으시나 봐요.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학생들은 그제야 쑥스럽게들 웃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날 밤은,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에 나왔던 롱테이크, 신성일이 누웠다가 일어나며 프레임에서 사라지다 들어오길 반복하는 그 장면을 충격적으로 목격한 날이기도 했다. 그 강연 이후, 몇몇 학생들은 정성일 평론가와의 뒤풀이 자리에 갔다고들 했는데 소심했던 난 그냥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 후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이 있었고 ‘키노’가 있었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해 화질이 엉망인 VHS를 보며 영화에 대한 갈증을 채우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에 2만 5천 명의 관객이 들고, 영화 전문 잡지가 계속 쏟아져 나오던 그때로 시간은 마냥 흘러갔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