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를 쫓아라 Chase the Woman
글:정성일(영화평론가) / 2016-06-10 (기사링크)
1969년 1월 27일 한 남자가 어린 조카와 함께 여권을 위조해서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를 경유한 다음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서 미리 대기 중이었던 중앙정보국 직원들에게 체포되었고 서울로 송환되었다. 당시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한국은 이 나라에 파병 중이었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양국 간의 협력하에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이 남자의 이름은 이수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그는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극적으로 남한으로 귀순하였고 이 사건은 냉전 관계였던 남북한의 긴장 속에서 남한 체제의 우위에 대한 전리품처럼 보도되었다. 이수근은 귀순한 다음 중앙정보국 판단관 대우를 받으면서 반공강연과 북한체제 비판을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였다. 북한에 아내가 있었지만 새로 결혼을 했고 이 귀순은 대대적인 언론보도와 함께 거의 영웅적인 사건이 되었다. 하지만 이수근은 북한에 두고 온 아내의 조카 배경옥과 남한에서 탈출할 결심을 했고 하노이 공항에서 체포되었다. 중앙정보국은 이수근이 이중간첩이었으며 남한에 위장 귀순한 다음 고급정보를 북한에 전달하기 위해 출국 시도를 했다고 발표했다. 1969년 5월 10일 이수근은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이수근의 출국을 돕거나 관련된 자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수근은 판결에 대해 항소했지만 형이 확정되었고 그로부터 2개월만인 1969년 7월 2일 사형을 집행했다. 또한 이수근과 동행한 조카 배경옥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고 이에 항소하여 20년형으로 감형되었다. 한국사회는 간첩이라는 단어 앞에서 창백해졌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