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저는 잠자는 시간이 그렇게 아깝게 느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를 읽는 중에 다음날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하고,
그것도 모자라 잠이 든 지 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자마자 머리맡에 있는
책을 도로 들고는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고 난
뒤부터의 시간뿐이기 때문에, 이 책을 손에 넣은 지 꼭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페이지가 더디게 넘어가고 있습니다(참고로 전 밤 12시가 되면 집으로 향합니다).
읽는 속도가 지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임권택 감독의 초기 영화들, 아니 최근의
영화들 몇 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영화들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제부터는 책 뒤에 소개된 영화의 시놉시스를 함께 대조해가며 읽어가는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훨씬 더 수월하게 넘어가더군요.
제 직업은 보따리 장사입니다. 비보장, 비정규직, 그것도 계절적 실업자 신세인
시간강사, 그것도 지방대학들을 떠도는 시간강사랍니다. 어쩌다 보니 이번 학기엔
월요일에 강의가 몰려 있는데, 그것도 꽤 먼 이동거리를 자랑이라도 하듯(!)
여기저기 돌아다녀야만 하답니다. 그런데도 전 어제, 아니 오늘 새벽 늦은 시간까지
이 책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억지로 잠을 청하기 전에는 못 본 영화들로만
가득 찬 인터뷰가 가득한 1권에 질린 터라, 2권을 펴들고 제가 본 영화에 대한
내용이 담긴 대목을 기어이 보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바쁜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책을 읽는 건 근래에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