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우리 손잡고 함께 가봅시다"
(중략)
지아 장커의 <임소요>, 우리가 이 영화를 개봉하고자 하는(서울 관객 최소 만 명 목표로!) 이유는 분명하다.
첫 번째 이유, 지아 장커의 <임소요>는 명백히 '90년대 아이들' 과 지금의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아니 대체 이렇게 가는 것이 맞기나 한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은 그래도 '자유' 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 란 곧 '고사'(말라죽는 것) 이다. 어디로든 갈 곳이 없는 그들은 말라죽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엿같아지는데, 아무도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외로이 '잘못' 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절규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돈놀음 속에서 묻혀질 뿐이다. 이제 겨우 열여덟인 아이들은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지만, '사랑' 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미화 1달러만도 못한 것이다. 지아 장커는 이 아이들의 고통스러움을 끝까지 지켜본다. 우리는 여기에서 질문한다. 대체 우리가 성장하던 시기에, 90년대에 십대와 20대 초반을 보내온 '90년대 아이들'에겐 누가 있었는가. 무엇이 그들을 끈덕지게 바라봐주었고, 위로해주었나. 하다못해 '너 똑바로 살아' 라고 말해준 이가 있던가.
90년대 아이들은 자본 앞에서 단지 '매력적인 소비층' 에 불과했다. 자본은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그들보다 앞서나간 80년대 학번들과 부모 세대는 그들에게 X세대, Z세대, N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팔아먹기' 일쑤였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아이들의 두 손에 돈을 쥐어주었으며, '꿇어야 산다' 고 가르쳐주었다. 그런 90년대 아이들에게는 대체 누가 있었는가. 구체적인 아이들의 삶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그들에게는 '신세대' 라는 코드와 그것에 대한 '문화분석' 만이 남았다. 아이들은 '코드화' 되었으며, 철저히 '물신화' 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 때 남한 영화는 헐리우드를 닮아가느라 아이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이 영화를 '아이들' 과 함께 보고싶다. <임소요>는 진정, 그들보다 약간 먼저 걸어가고 있는 한 '선배' 이자 '친구' 가 그들을 향해 바치는 마음이다. 고작 70년생인 지아 장커는, 부서져가는 아이들(정작 자신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는!)의 고통을 온 마음을 바쳐 담았다. 그리고 '울 줄도 모르는' 그들 대신, 외로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그의 이런 마음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영화를 시장에서 많은 관객들과 만나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이 통하지 않는 이 시대에,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결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는 그 자리에 계속 서있을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던 시간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아 장커는 정말 마음을 다해 이 영화를 완성했다. 이 영화는 중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지아 장커는 이 영화를 들고 국경을 넘어서 영화제로 갔다. 불행히도 그의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공식적인 장소는 국제 영화제 뿐이다. 지아 장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그는 그것이 자신의 '책임' 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무도 없었던 '90년대 아이들' 에게, 뒤늦게라도 그가 보여준 진심에 감사한다. 그의 <임소요>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가 함께 가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방황했을 것이다. 그의 <임소요>가 없었다면, 우리는 더이상 '영화' 라는 매체가 주는 '마음' 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임소요>에서 그가 보여준 마음에 보답하는 하나의 방법은, 이 영화를 지금 여기에서 상영하는 일이다. 결코 중국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지금 여기의 황량함을 함께 사유하고, 아이들에게 '여전히' 진심으로 세상을 대하는 이가 남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던 관객들에게 <임소요>의 상영운동을 제안한다. 그동안 만날 수 없었고, 그만큼 애타게 기다렸던 이 영화의 개봉을 위해 우리는 관객으로서 발 벗고 뛸 것이다. 영화를 진심으로 보고싶어하는 관객들이 상영의 주체가 되는 일은, 처음 시작하는 일인만큼 전략을 모색하고 움직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하는 (정말)지난한 과정을 함께 하며, 함께 움직일 '동료'를 만나고 싶다. 정말 지아 장커의 <임소요>를 보고싶고, 온 마음으로 기다려온 사람이나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임소요>를 본 이후 '징한' 마음을 느낀 사람이라면 좋겠다. '깡' 과 '끈기', 그리고 '체력' 은 그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임소요>와 세상에 대한 당신의 마음부터 만나고 싶다. '동료' 를 만날 수 있길 바라며. 함께 하고픈 이들은 absentia@dreamwiz.com으로 '당신의 소박한 러브 레터'를 보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