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가을.Vol11. [PDF링크]
기억의 거짓말, 당신에게 건네는 하나의 질문 (네이버 공식블로그 글 링크)
처음에는 다소 방심했다. 무심코 메일을 열었고 원고 청탁서를 확인했다. 나를 당황시킨 것은 이번 호의 주제였다. 아아, 시간과 인간이라니. 나는 약간 비명을 지르는 심정이 되었다. 이건 하이데거(를 연구하는 철학과 학생이)나 쓸 수 있는 청탁이 아닌가요. 며칠을 전전긍긍하다시피 했다. 나는 여기서 잠시 슬라보예 지젝이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의 인접성에 관한 논제를 다루면서 참을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다섯 가지 단계를 흉내내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제일 먼저 부정하는 것이다. 시간은 무슨?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걸. 그런 다음 분노를 터트린다. 제기랄, 얼마나 무시무시한 곤경에 빠져있는가! 하이데거조차 《존재와 시간》을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리고 타협으로 이어진다. 좋아, 하지만 본론은 철학자들이나 쓰라구. 난 영화와 시간에 대해서만 떠들면 되니까. 그런 다음 우울증에 빠진다. 어차피 영화는 상영시간 동안 보는 거잖아, 그러니 내가 그걸 설명하지 않을 도리가 없잖아. 마침내는 청탁을 받아들인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