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화 장희빈 Femme Fatale, Jang Hee-bin
글:정성일(영화평론가) / 2016-02-16 (기사링크)
“나는 그렇게 일찍 ‘입봉’할 생각이 없었어요. 이게 내가 먹고사는 유일한 방법인데 조감독을 하면 그냥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잖아요. 그때만 해도 내가 충무로에서는 꽤 똘똘한 조감독이어서 사람들이 권택이, 권택이 그러면서 나를 찾았으니까요. 그런데 감독 한번 해서 망하면 그걸 누가 다시 연출부로 데려다 쓰냐구요. 그때도 영화 한 편 찍고 사라진 사람들을 많이 봤으니까요. 나는 정창화 감독만 모시고 했잖아요. 여기저기 다니는 게 나한테 맞지도 않고. 그런데 <장희빈>을 찍을 때였어요. 그걸 창경궁에서 찍고 있는데 일정이 촉박해서 심지어 연출부들이 그때 막 궁궐 안에서 잠을 자면서까지 영화를 찍었어요. 장면을 찍는데 참, 이건 내가 잘못한 건데, 거기서 나와야 할 일정이 다 되어서 이제 떠나야 할 판국인데, 창경궁 바깥으로 일단 나가면 세트를 세울 수도 없고 도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날 분량을 다 못 찍고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니까 갑자기 정창화 감독이 막 찍기 시작하는 거야. 동선도 안 맞고, 시선도 틀리고, 그래서 내가 이건 잘못된 겁니다, 라고 말을 했는데, 거기 배우들도 있고, 스태프들도 있고, 사실 정창화 감독도 다 알면서도 그러는 건데, 그래서 속에 불이 나고 있는데, 거기다가 다 알고 있을 법한 조감독이란 놈이 그러니까 다 있는 앞에서 나한테 갑자기 화를 내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맞는 데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그만두겠다, 이러고 나온 거지, 그런데 내가 다른 감독 밑에서 해본 적도 없고 머리가 컸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감독들도 나를 안 부르는 거야, 그때 조감독 하던 나를 유심히 바라보던 제작자가 그러지 말고 그냥 ‘입봉’을 해라, 해서 감독이 된 거예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