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가 낳고 키운 ‘사람의 도리’…산 자는 어디에 있던가 (기사 원문링크)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62)씨받이 감독 임권택(1987년)
조선시대가 끝나긴 했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선은 우리 곁에 머물면서, 때로는 우리 위에서 내리누르고, 그리고 종종 우리 아래를 떠받치고 있다. 무엇을 물려받았고, 무엇을 숨겨놓은 것일까. 우리 안의 그들. 근대 안의 조선시대. 한국 영화는 계속해서 조선시대를 건드렸다. 누군가는 조선시대에서 민족을 찾았고, 누군가는 영웅을 찾았으며, 누군가는 민중을 찾았고, 누군가는 왕을 찾았고, 누군가는 색(色)을 찾았으며, 누군가는 전쟁을 찾았으며(…) 임권택은 유교를 찍었다. (후략)
고향 잃은 소리꾼 가족의 귀향, 굴곡진 한 풀어내는 흥의 가락 (기사 원문링크)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57)서편제 감독 임권택(1993년)
1992년 11월 18일 오전 9시 20분, 전라남도 완도에서도 멀리 떨어진 청산도. 씬 41. 장면의 지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멀리서 진도 아리랑을 주고받으며 송화와 유봉이 걸어온다. 동호도 흥이 나서 매고 있던 북을 친다” 정일성은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았다. 모두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세 배우, 김명곤, 오정해, 김규철을 바라보았다. 노래 부르고 장단 맞춰 춤을 추며 그들이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리 아리링,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번역할 수 없는 후렴구.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따라 부를 수 있는 흥. 이 장면은 세 번째 촬영에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상영시간 5분40초. 한국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롱 테이크. 아마 그 말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의 하나, 라고 살짝 바꾸어도 괜찮을 것 같다. (후략)
10/3~10/12 동안 진행하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중 10/6(일) 16:30 에 정성일, 듀나, 김홍준 시네필 3인의 GV(듀나는 온라인 채팅)가 있는 블라인드 영화제 “정듀홍영화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019 커뮤니티비프 : 관객이 만드는 영화제 속의 영화제
커뮤니티비프(Community BIFF)는 관객이 직접 만드는, 영화제 안의 영화제입니다. 지난해 프리페스티벌의 성과를 기반으로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7일간의 확대된 일정으로 본격 출범을 알릴 예정입니다.
주요 섹션으로는 관객이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리퀘스트시네마: 신청하는 영화관’을 비롯하여, ‘리액션시네마: 반응하는 영화관’, ‘리스펙트시네마: 애증하는 영화관’ 등이 있습니다. 이 섹션들을 중심으로 원도심 시민사회와 깊이 결합하고 자율적인 참여의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관객을 위한, 관객에 의한, 관객의 커뮤니티비프가 되고자 합니다.
리스펙트시네마: 애증하는 영화관 | Respect Cinema : 영화애호가, 영화학도, 영화인 등 시네필만의 감수성과 유대감이 충만한, 영화를 향한 애증과 경의(homage)를 공유하는 프로그램
정듀홍영화제 : 정성일, 듀나, 김홍준 등 레전드 시네필 3인의 GV(듀나는 온라인 채팅)가 있는 블라인드 영화제
일시 : 2019년 10월 6일(일) 16:30~19:30
장소 : 롯데시네마 대영
+. 정성일 평론가의 선정작은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안마와 여자'(1938) 이었습니다.
동명의 소설서 얼개만 가져와…이만희가 직조한 ‘길 위의 영화’ (기사 원문링크)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55)삼포 가는 길 감독 이만희(1975년)
1975년 4월13일, 영화감독 이만희가 죽었다. 그때 그는 〈삼포 가는 길〉의 편집을 아직 마치지 못했다. 한번 더 불러보고 싶다. 이만희. 나는 전혀 다른 자리에서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하길종으로부터 직접 그 이름을 들었다. 누군가는 감탄을, 누군가는 탄식을,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똑같은 조건의 한국영화라는 상황에서 이만희는 마치 다른 우월한 예술가인 것만 같은 장면을 연출해냈고, 그렇게 하고만 싶으면 일찍이 한국영화가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을 창조해냈다. 물론 항상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단 해내기만 하면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누구도 가닿아보지 못한 세상과의 감응을 펼쳐 보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후략)
“선생님, 추워요” 신파 섞인 유언 얼어붙은 1970년대의 ‘구조요청’ (기사 원문링크) [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49)별들의 고향 감독 이장호(1974년)
〈별들의 고향〉은 한국영화에 1945년 해방둥이 세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신 미국 기지촌 문화를 배웠으며, ‘엔카’(演歌) 대신 ‘팝송’을 불렀고, 고등학생으로서 4월19일 그해의 봄과, 그 이듬해 광화문에 탱크가 입성하는 5월16일을 지켜보았으며,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낸 경제적 근대화의 첫 수혜자가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는 슬픈 것일까. 그저 떠밀리듯 여기에 와버렸고, 표류하듯 두리번거리면서 떠돌고 있으며, 미래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박정희는 1974년 그해가 시작하자마자 긴급조치 1호, 2호, 3호, 4호를 연달아 선언했다. 그들은 서른살 어른이 되었을 때 그걸 그저 구경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세대이기도 했다. (후략)
1915년 11월 22일 : 사샤 기트리가 위대한 19세기의 예술가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우리 집의 그들〉을 공개하다 (원문링크)
사샤 기트리가 영화에 도착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샤 기트리는 프랑스영화의 위대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시네필들에게 잘 언급되지 않는 이름. 그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시네아스트들의 연옥(煉獄)의 왕자라고 불린 사람. 오손 웰즈, 알랭 레네, 프랑소와 트뤼포가 한결 같이 찬사를 바쳤던 감독. 아마 나는 이 연재를 하면서 몇 번이고 그를 이 자리에 다시 초대할 것이다. (후략)